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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윤 May 17. 2021

관계항 relatum

작업이야기 | 천지윤의 해금 : 관계항, 그 시작

1. 천지윤의 해금 : 관계항 (relatum)     

‘관계항 이라는 말, 좀 어렵다’ 는 반응을 접할 때가 있다. ‘항’이라는 말에 함수나 수학적인 어떤 것을 떠올릴 수도 있겠고, 그 자체로 아리송하고 난해할 수 있겠다. ‘관계항’은 이우환 작가의 작품명을 인용한 것이다. 아직 이우환 작가님을 뵌 적도 없고, 죄송하게도 이 인용에 대해 허락을 구하지도 못했다. 이 점을 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갤러리나 박물관 같은 공간을 거니는 것을 좋아한다. 미술이라는 장르와 미술작가에 대한 경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음악과 연극, 무용과 같은 공연예술 분야는 내가 자라왔고 살아가는 너른 뜰과 같은 곳이지만 문학과 미술은 내게 신비성을 간직한 미지의 세계로 여겨진다. 결혼 전 싱글로서 시간적 자유를 누릴 때는 시간 나는 대로 미술관에 다니기를 좋아했다. 해외로 연주 여행을 가서도 지칠 때까지 전시를 보고 도록을 사오고 모으는 일을 기쁨으로 여겼다. 



20대에 접한 천경자 화백의 작품과 산문집을 보고 예술가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동경과 열정을 갖게 되기도 했다. 이우환 화백도 그러한 맥락 안에서 내게 다가왔다. 이우환 화백은 극도로 미니멀한 선과 점, 절제된 색채를 사용하여 여백이 많은 그림을 그려낸다. 천경자 화백의 화려한 색채와 빈틈없는 캔버스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이우환의 세계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극도로 뜨거운 것과 극도로 차가운 것.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였나? 나는 이 두 세계 모두에 이끌렸다. 


천경자의 글에서는 정념(情念)에 불타오르는 듯 무당의 공수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맛이 있다면, 이우환은 무엇과도 지극한 거리를 두고 차갑게 사고하여 중용적인 글을 쓴다. 이우환 화백의 산문집 <시간의 여울>과 대담집 <양의의 예술>을 보고 정제와 절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발산보다 응축의 힘을, 화려함보다 간소함에서 오는 힘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 맞다고 할 수 는 없으나 그때의 나는 그러한 미니멀리즘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이우환 화백의 <관계항>은 설치 작품으로 돌과 철판이 무심히 마주하고 있다. 돌은 자연적인 것이며 동양적인 것을 상징한다. 철판은 산업화 된 것이며 서구적인 것을 상징한다. 이 둘의 세계는 자연과 산업, 동양과 서양으로 대변할 수 있는 현상과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철저히 추려 정리하고 정제시켜서 극히 일부만 내 손을 거치도록 하여 숨결이 느껴지게 재제시 하는 작업입니다.”, “수렴”, “단순화”, “울림” “존재 보다 관계”와 같은 그의 말에 영감을 받았다. 무언가를 수렴하고 단순화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울림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텍스트(text)와 콘텍스트(context)를 소화한 후 뱉어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을 주기도 했다. 



관계항이라는 작품 속 돌은 나의 해금이며 나라는 존재 자체다. 철판은 나와 관계 맺는 또 다른 존재로 그것이 경기굿 일수도, 서구의 현대음악이나 재즈일수도 있다. ‘관계항’이라는 제목 덕분에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어떤 존재를 다른 항에 두어도 그 대상과 대화하며 새로운 맥락을 그려나갈 수 있다는 믿음과 자유로운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우환 선생님을 아직 뵙지 못 했지만 언젠가 꼭 만나 뵙고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특히 <시간의 여울>에서 무심한 듯 써낸 글 속에 와인과 요리, 음악에 대한 심미안을 발휘하는 대목은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한다. 지금 이순간도, ‘언제가 꼭!’을 되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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