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에 관하여 | 천지윤의 해금이야기
絲
줄 그리고 굳은살
손이 아프지 않느냐고? 당연히 아프다. 아니, 아팠다. 지금은 오래된 굳은살이 겹겹이 버티고 있으니 아프지 않다. 십대 시절에는 연습량이 늘수록 살이 흐물흐물해졌다가 굳은살이 앉기를 반복했다. 굳은살은 연습량에 따라 그 두께를 달리했고, 해금에 마음이 영 떠나 있을 때는 말랑해졌다가, 다시 연습을 불태우는 시기에는 굳건해지기를 반복했다. 엄지를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 두 번째 마디 피부 표면이 투명하게 부풀어 속살이 비친다. 피가 맺혀 붉고 푸르스름하다. 손가락이 줄에 닿으면 머리끝이 저릿할 정도로 아픈데 연습을 지속해야 했다. 고통이 익숙해질 때 즈음 흐물흐물하고 투명하던 피부에 굳은살이 잡힌다.
굳은살의 자리는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손가락 마디 선을 따라 잡힌 적도 있었고, 마디 선 아래로, 때로는 마디 선 위로 굳은살의 위치와 넓이가 달라졌다. 굳은살의 위치와 넓이는 줄을 잡고 힘을 주는 손가락의 힘점을 반영한다. 힘을 어디에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음색과 농현법 등 왼손 주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손가락의 어느 부분으로 줄을 잡느냐는 중요하다. 이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바로 굳은살의 위치다.
여태껏 여러 스승님들께 배우며 기본기를 갖춰왔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만큼 굳은살의 변천과정을 겪어온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굳은살이 생길 때의 고통의 감각은 희미해졌다. 손가락 모양 자체가 변형되어 두 번째 마디의 피부가 오리발처럼 넓어졌다. 여린 피부가 변형되어 굳은살 자체가 내 것이 되었다. 해금을 위한 몸의 진화다.
힘을 나눠 쓰는 법을 터득했기에 손가락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다. 힘을 빼고 줄을 대할 때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어준다는 것을 알기에 손끝은 세월의 흐름만큼 가벼워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기는 하체의 힘으로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지구력을 뜻하기도 하고, 실제 물리적인 힘을 뜻하기도 한다. 힘의 점이 하체로 가기까지 내 손가락은 그 힘을 감당하느라 애썼다.
굳은살의 역사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후퇴와 전진을 뜻한다. 한참을 애를 썼는데 ‘그거 아닌데?’라고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순순히 ‘아아, 다른 길, 다른 길...’ 하며 줄과 몸의 감각을 다시, 더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