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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뤼 Jul 10. 2018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모든 기억을 갖고 과거로 돌아가기를 고대하는 현대인들에게 고함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나만이 없는 거리>의 리뷰입니다.


#1. 루저 인생

나만이 없는 거리는 타임루프 능력을 지닌 주인공 사토루가 과거의 후회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서스펜스 타임루프 추리물이다. 만화가 원작인 이 작품은 일본에서 한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올 수 없는 탄탄한 스토리로 애니메이션을 이어 드라마 그리고 영화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필자도 우연찮게 넷플릭스 추천 큐레이션 서비스로 접한 이 작품은 그 자리에서 12회차의 시리즈 물을 정주행 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다른 수식어가 필요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의 재미는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 '후지누마 사토루'가 어린이 연쇄 납치 살인사건 용의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임루프를 하면서 전개된다. 그는 오랫동안 만화를 그리며 등단하려고 하나, 연이은 낙방으로 생계를 위해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찌보면 루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그에게 남들과 다른 점은 '리바이벌'이라 부르는 능력이다.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토루(왼쪽) / 사고 현장을 막기 위해 차량 동선을 저지하는 사토루(오른쪽)


사토루의 리바이벌은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순간의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가 뒤바뀌는 나비효과 시리즈이다.   

보통 1분에서 5분쯤 전으로 돌아가 같은 광경을 본다.항상 뭔가 안좋은 일이 벌어지기 직전이다. 꼭 누군가가 막으라고 강요한 것처럼 나는 위화감을 찾는다. 그 결과 몇 번이나 사고를 피했다. 그 대부분이 마이너스였던 게 플러스마이너스 제로가 될 뿐인 일로 가끔 이번처럼 나에게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 1화 '주마등'에서 사토루의 독백

아! 내가 지금 이 기억 모두 가지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 지경까지 되지 않았을텐데... 누구나 한번 쯤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었을 것이다. 술먹은 다음 날 이불킥을 하고 있거나 메신저에 온갖 짜증을 담아 분을 푸는데 실수로 그 대상에게 보내 안드로메다로 떠난 멘탈을 찾을 때. 수년간 노력하며 모은 돈을 사기당했을 때 등 우리는 늘 후회와 다른 선택을 했을 때에 대한 미래를 꿈꾸며 살아간다.

주인공 사토루는 남들이 부러워 할 엄청난 능력을 가졌다. 로또 번호를 외운 뒤 과거로 돌아가 억만장자가 된다거나, 본인에게 유리하게 능력을 이용하지 않고 만화를 그리고 피자배달을 하며 살아간다. 그가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는 대단한 철학이나 신념이 아니다. 단지 능력이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리바이벌되는 시간이 1~5분 사이이며, 개인 성격 또한 집요함이 없다는 점이 크다.

그런 주인공의 삶의 큰 전환점이 찾아온다. 그의 엄마 '후치누마 사치코'가 자택에서 칼에 찔려 죽고, 변사체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본 이웃이 그를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쫓기는 신세가 된것이다.  

자택에서 칼에 찔려 죽은 사토루의 모친, 후치누마 사치코(왼쪽) / 죽은 엄마를 발견한 사토루(오른쪽)


#2. 파란 나비, 돌이키고 싶던 기억 속으로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죽인 패륜 범죄자가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경찰의 추격을 피해 도주를 하게 되면서 능력이 발동된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능력이 발현될 때, 파란 나비가 등장한다. 나비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연출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된다.

리바이벌이 발현된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 파란 나비

주인공의 의식의 저변에 과거로 돌아가 후회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토루는 리바이벌 능력을 본인의 사욕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정의감에 의해 위기에 처한 주변 사람들을 도울 때 사용한다. 어찌보면 집요하지 못하다는 주변의 평가는 그의 어린시절 후회로 가득찬 기억 때문이다. 연쇄 납치 살인사건의 첫 번째 피해자인 '히나츠키 카요'를 구하지 못했다는 기억에서 부터 비롯된다. 히나츠키 카요를 포함하여 3명의 아이들이 연이어 납치/살해되는 사건은 그 지역을 들끊게 만들다.

납치범에 의해서 살해당한 3명의 피해자들

리바이벌 능력으로 과거로 돌아간 사토루는 그 동안 눈여겨보지 않던 카요에 대해서 눈여겨 보게 된다.  몸 곳곳에 멍과 타박상이 보이고, 상대방과 눈을 안마주치며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던 카요. 남들이 쉽게 말을 걸기 어려운 포스를 띄고 있지만 묘한 매력을 띄고 있다. 30대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토루는 넘치는 정의감으로 히나츠키 가요가 범죄의 대상으로 지목된 원인에 접근한다. 그러다가 반 친구들끼리 만든 문집 속 히나즈키 가요의 시를 통해서 애니메이션 제목이 등장한다.

히나즈키 가요의 나만이 없는 거리
<나만이 없는 거리>
지금보다 더 커서 혼자서 어디든 갈수 있게 되면 먼 나라에 가 보고 싶다. 먼 섬에 가 보고 싶다. 아무도 없는 섬에 가 보고 싶다.
힘든 일도 슬픈 일도 없는 섬에 가보고 싶다.
그 섬에서 나는 오르고 싶을 때 나무에 오르고
헤엄치고 싶을 때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고 싶을 때 잔다. 나는 나만이 없는 거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멀리, 저 멀리 가고 싶다.
2화 '손바닥'에서 히나즈키 가요의 문집


#3. Trigger, 학대받는 아이 '히나즈키 가요'


어린 카요는 가정폭력을 피해 이혼한 뒤, 낮선 남자와 동거중인 카요의 어머니 '히나즈키 아케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며 살고있다. 아케미는 가사에 지치면 어린 카요를 학대여 카요의 몸 구석 구석은 멍으로 가득하다. 어린 카요는 편안하고 쉼의 장소여야 할 집이 머물기 두려운 공간이었고, 이를 피하기 위해 늘 거리를 배회하며 밤 늦게 집에 들어간다. 이런 카요의 패턴은 범죄의 대상이 되기에 쉬웠고 사토루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번이고 리바이벌을 단행하며 문제의 실마리를 파헤쳐 나간다.

모친에게 구타당하는 카요(왼쪽) / 구타당한 뒤 추운 겨울, 속옷 차림으로 창고에 버려진 카요(오른쪽)

사토루와 그의 엄마 사치코의 활약으로 아케미가 가요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지청 아동 상담과 공무원들이 직접 목도시키는데 성공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카요의 할머니가 오게 하였고, 할머니는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여자 혼자 아이를 양육하는 것을 도와주지 못한 본인의 잘못이라고 위로를 한다. 카요 할머니와 카요 엄마 아케미가 얼싸안고 울며 카요의 학대 사건은 해결된다. 결국 카요는 보호소로 보내지게 되고 범죄의 위협에서 벗어난다. 아이를 낳기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행복하게 잘 클 수 있게 역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얼싸안고 울고 있는 갸요의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무심코 이를 지켜보는 가요


#4. 가면 속 이중성


사토루의 대활약으로 학대 문제가 해결되자, 사토루가 신뢰하던 담임 야시로 가쿠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한다.

네가 취한 용기있는 행동의 결말이 비극이면 안 되지. 가요는 이제 안전하다
- 9화 '종막'에서 야시로 카쿠의 대사

사토루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도 본 적 없는 아빠라는 존재를 투영시킨다. 그에게 있어 가쿠는 믿을 수 있는 대상이었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였다.

사토루와 함께 문제를 해결한 학교 담임선생 야시로 카쿠(왼쪽) / 문제해결을 위해 상담중인 사토루와 가쿠(오른쪽)

연이은 리바이벌을 통해 사토루가 깊게 신뢰했던 가쿠가 연쇄살인사건의 배후였던 것을 알게된다. 이 애니메이션을 본 분들이라면 공감테지만, 스토리 중반부 쯤 보다보면 아마 이 사람이 범인일텐데라고 짐작하게 된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봤을 때, 기존 인물 중에서 나올 것이고 학생들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추정가능하다. 눈치 빠른 사람은 미래 세계관에서 사치코를 죽인 후 스쳐가는 인물의 작화부터 방화사건, 사토루가 연행되는 장면, 카요가 버스 안에서 숨어있는 장면 등 곳곳에서 유추할 수 있다.

나만이 없는 거리의 또다른 재미가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사토루가 연쇄 납치 살인마를 찾아낼 것인가! 사건을 추리하는 흐름을 함께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 과정이 지겨울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사토루의 감정, 생각, 태도 등을 몰입감 있게 구성하여 다른 선택을 통해 받는 상황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18년 뒤 시의원이 되어 사토루를 위협하는 야시로 가쿠

세심한 성격에 인자한 모습의 담임 선생님 야시로 가쿠, 그는 자신의 숨겨진 욕망에 이끌려 약자를 짓밟는 살인마였던 것이다. 어린시절 부터 동물을 잔혹하게 죽이는 삐뚤어진 성격을 지닌 채로 성장하여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사냥감을 찾아 헤메는 범죄자가 되었다. 잔혹한 행위에서 살아남은 햄스터를 보면서 범죄 촉발요인(trigger)이 생성된다. 이 때부터 그는 욕망에 이끌려 사람을 죽이게 되는 사이코패스로 눈을 뜨게 된다.

어린시절 야시로 가쿠가 키우던 햄스터(왼쪽) / 과실주 가득 튼 통에서 홀로 살아남은 햄스터를 관찰하는 야시로 가쿠(오른쪽)
난 거미줄이라는 단편 소설을 떠올렸어. 알려나? 온갖 악행을 저질러 지옥에 떨어진 간다타라는 남자에게 거미 한마리를 구했다는 생전 유일한 선행을 봐서  석가모니가 극락에서 거미줄을 내려줬어. 간다타는 극락에 가려고 오리기 시작하는데 다른 망자들이 따라오자 모두 차서 떨어트렸어. 그러자 줄은 끊어졌고 간다타는 다시 지옥으로 떨어졌어. 이런 얘길 믿어 주진 않겠지만 말할게. 아니 너라면 알아줄지도 몰라. 스파이스(생존한 햄스터)와 만난 이후 내게는 거미줄이 보이기 시작했어.
- 11화 '미래'에서 야시로 가쿠의 독백

OCN 드라마 '보이스'의 모태구(김재욱 님)같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나 내면은 추악한 범죄자의 모습을 모른채 우리는 살아간다. 믿을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상실감은 상당하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를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는 여러 소재가 있지만, 큰 축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다룬다. 즉, 상대방에 대해서 무심한 주인공 사토루가 사건 해결을 위해 주변 인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쌓인 신뢰관계를 통해서 문제를 파헤쳐 나간다고 요약할 수 있다.



#5. 신뢰, 정의 실현을 위한 열쇠


앞서 리바이벌 능력은 1화에서 사토루의 독백처럼 마이너스 였던 상황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게 된다. 누군가에게 올 위기를 와해하거나 사토루가 짊어지게 된다. 사토루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가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모른다. 여러 위험 속에서 실제 목숨의 위협을 겪었던 적도 많다.

함정에 빠져 강물에 빠진 차(왼쪽) / 차에 묶여 수장될 위험에 빠진 사토루(오른쪽)
사고로 인해 15년 동안 코마 상태였다가 깨어난 사토루

애니메이션 초반에 일말의 정의감은 있지만,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던 그를 변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친 살해, 주택 방화 등 누명에 쫓기면서 그의 힘이 되어준 아이리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리바이벌로 트럭충돌 사고에서 아이를 구한 사토루 병문안온 아이리(왼쪽) /살인누명을 쓴 사토루의 도주를 돕는 아이리(오른쪽)

사토루는 경찰에게 붙잡혀 연행되는 순간에 아이리가 그를 믿고 지지해주는 것에 큰 힘을 얻는다. 연이은 히나츠키 가요 구조를 실패로 반 포기 상태였던 그의 심리에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모두 과정일 뿐이야. 결말은 훨씬 먼일이고 아직 아무도 몰라. 혼자싸우는건 힘들지 않아. 네가 믿어줘서 난 더 싸울 수 있어. 아이리...
- 7화 '폭주'에서 사토루의 독백

대부분의 타임루프 작품이 그러하지만, 결말은 늘 해피엔딩이다. 애니메이션 마지막 12화 전까지 제목 나만이 없는 거리의 의미가 어린 시절 반 친구들이 만든 문집에서 가요가 쓴 시를 따온 것이라 생각했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를 구축하는 애니메이션일 수 있다고 여겨졌으나, 15년간 코마 상태에 있던 사토루가 없던 시간을 뜻하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성장기를 친구들을 위해서 잃어버렸지만, 살해당할뻔 한 친구들을 구할 수 있었고 지울 수 없는 후회로 가득했던 기억 속에서 해방될 수 있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나는 11살부터 25살 까지의 인생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 잃은 시간 그 자체가 내 보물이다.
나만이 없어진 거리에서 친구들이 나를 위해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내주었다.
나만이 없는 거리, 나만이 없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내 보물이다.
- 12화 '보물'에서 사토루의 독백
사토루가 잠든 15년 간 추억을 만든 친구들

'나만이 없는 거리' 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만화,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접해볼 기회가 많다. 최근에 나오는 타임루프 장르의 작품들과 비교해볼 때 박진감 면에서는 떨어지는 점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한번 쯤은 하고 생각하는 '간절히 돌아가고 싶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나아가 좋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라는 우리의 바람을 비춰준다. 물론 현실 속에서는 약이란 존재하지 않다. 과거는 과거일뿐이고, 지금 이 순간에 더 충실해야 한다. 허나, 이 작품을 통해서 되돌이키고 싶던 그 순간을 생각하며 다른 결정을 했을 때 오는 결과에 대한 상상을 즐기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빡빡하고 지친 이 시대를 살아가며 삶의 위로가 되는 마취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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