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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방울 Aug 26. 2021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1

평생 은둔하다 죽은 사진작가를 이 세상에 소환한 다큐멘터리 필름


평생 은둔하다 죽은 사진작가를 이 세상에 소환한 다큐멘터리 필름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어느 날 우연히 멋진 사진을 발견하고는 헐값에 사들였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데다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됐다. 주위를 살펴보니 가족도 친지도 없다. 그나저나 사진 이미지는 나만 좋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반응이 엄청나다. 사진 전문가도 문외한도 한결같이 열광한다. 보물을 찾았다고 쾌재를 부르면서 내가 이 사진을 마음대로 전시하고 판매해도 되는 걸까?


바로 이와 같은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무명의 아마추어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와 그녀의 사진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존 말루프(John Maloof)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금전적 이익과 얽힌 저작권 소송의 난타전이 이어졌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스틸컷



존 말루프: 우연히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낸 남자


시카고의 한 동네 창고 경매에서 산 네거티브 필름 뭉치. 대부분 거리에서 찍은 인물사진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비비안 마이어이다. 구매자인 존 말루프는 심미안이 있었다. 필름을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리자 찬사가 잇달았다. 이렇게 멋진 사진을 찍은 사람이라면 무언가 기록이 있을 법한데, 인터넷 검색을 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저널리스트나 전문 사진작가는 아니었던 것이다. 마침내 딱 한 개의 검색 결과가 나왔다. 비비안 마이어의 부고 기사.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은 것일까?  궁금증이 도진다. 부고를 낸 사람을 찾아가 비비안의 유품을 몽땅 가지고 왔다. 15만 장에 달하는 필름 뭉치와 별별 잡동사니가 다 있었다. 필시 수집광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존은 기지를 발휘한다. 비비안의 유품에 들어있던 영수증에서 전화번호를 찾아 이리저리 전화해 본 끝에 그녀가 아이돌보미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녀를 고용했던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그들도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굉장히 비밀스러웠던 사람으로 친구나 가족과도 전혀 왕래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숨어서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마이어’라는 스펠링도 쓸 때마다 매번 다르게 쓰거나 이름을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스틸컷



비비안 마이어: 길거리 인물사진에 진심이었던 여인


그녀를 알았던 한 사람은 유행과는 상관없이 항상 온몸을 다 가리는 긴 코트를 입고 챙이 큰 모자를 쓴 비비안이 마치 소련 군인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게다가 독특한 영어 억양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를 프랑스에서 온 이민자라고 여겼다. 하지만, 존의 집요한 조사 끝에 비비안은 뉴욕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프랑스인이며 유소년기를 프랑스에서 보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녀의 가족 역시 그녀만큼이나 족적을 남기지 않아서 그녀가 어떻게 외톨이로 남겨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비비안은 스틸 사진만 찍은 것이 아니라 짧은 영상물도 찍었다. 주로 본인이 돌봤던 아이들의 영상이지만, 슈퍼마켓에서 사람들에게 시사적인 질문을 던지고 녹화한 영상도 남아있다. 신문과 뉴스에 탐닉한 지적이고 의식 있는 여성의 면모가 보인다. 아마도 여건이 되었다면 뛰어난 저널리스트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해외에서 찍은 사진도 발견되었다. 그녀가 보모 일을 8개월간 쉬고 중동, 유럽,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이었다. 엄청난 열정이다. 그녀는 타고난 사진작가임이 분명하다. 


존은 비비안이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찍은 사진 중에서 똑같은 프랑스 시골 풍경을 보고는 인터넷으로 비슷한 풍경을 검색해서 마침내 그 마을을 찾아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기억했다. 그 당시에는 일상에서 사진을 찍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항상 사진기를 목에 메고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찍던 비비안이 아주 특이한 사람으로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 마을에는 사진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인화한 사진이 마음에 들었던 비비안은 주인에게 편지를 보내 협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전문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싶었던 것일까?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스틸컷



뛰어난 사진작가로 재탄생한 비비안 마이어


존은 비비안의 사진 전시를 개최했다. 전시는 대성공을 거둔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독일, 덴마크, 프랑스에서도 전시를 진행했다. 생전의 비비안을 알았던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다. 그녀의 성격 상 이렇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테니 차라리 죽은 뒤에 유명해져서 잘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전문 사진작가가 되었다면 풍족한 삶을 살았을 텐데 죽을 때까지 고생을 한 삶이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었다. 


사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비비안의 뛰어난 사진을 칭찬한다. 인물의 개성을 포착해 내는 비비안의 사진을 보면, 그녀에게는 불쑥 낯선 대상에게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작가로서의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타인이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폐쇄적인 태도를 보였던 비비안은 사진작가로 활동할 때면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했던 것일까? 


고단한 현실에서 사진기를 통해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비비안이 유일하게 즐긴 취미였다. 도대체 왜 그녀는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은 것일까? 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간직한 것일까??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궁금증은 덮어두고 그녀가 이 세상에 남긴 신비한 이야기와 환상적인 사진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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