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

by 브리짓 퀸

by 봄봄


‘페미니즘’이 반영된 미술책과 미술품은 보통 극단적인 감정과 평가를 불러일으킨다. 이를 옹호하는 사람에게는 열정과 전투의식을 고취시키지만, 이 단어와 관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예 보지도 읽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다. 주변적인 사조로 인식되기도 하고, 의식 있는 척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왜 그 긴 인류의 역사에 남은 여성은 열손가락으로 꼽힐 만큼 적은지, 왜 유명한 여성 대부분은 남자를 유혹하거나 남자를 이용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는지, 한 인격체가 아니라 집안의 재산 또는 부채로 여겨진 여성은 정말 자신의 생각이 하나도 없이 당시의 관습에 순응하고 세상을 살아갔는지 등등.



미술사 연구에서도 페미니즘 운동과 맞물려 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 미술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스웨덴의 힐마 아프 클린트나 핀란드의 헬렌 쉐르벡 같은 여성 미술가는 죽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이 세상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인기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는 학부생으로 미술사를 전공했던 저자가 그 당시부터 가졌던 의문을 풀고자 긴 세월의 리서치를 통해 미술계의 조명을 받지 못했던 여성 미술가 열다섯 명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인 브리짓 퀸은 대학교 시절인 1980년대 후반 800쪽에 달하는 미술사 교과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미술사에 기록된 여성을 찾아보았다. 미술사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남자인데, 그러면 도대체 여성 미술가는 없었던 것일까? 그녀가 미술사 수업을 들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진 이유였다. 브리짓 퀸이 찾아낸 여성은 고작 열여섯 명이었다. 그것도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첫 여성 미술가가 등장했다. 그 당시 중년이었던 미술사 담당 교수는 자신이 배울 때는 여성은 누드로만 등장했었다고 말한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여성 미술가에 대한 연구가 더디게나마 진전되었기에 미술사에 여성이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여성 미술가에 대한 홀대와 차별은 비열하고 치사하면서도 아주 철저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인 대가의 작품인 줄 알고 미술관이 소장했던 작품이 대가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여성 화가의 작품으로 밝혀지자, 갑자기 그 작품은 미술관에서 소장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그저 그런 그림으로 전락한다. 여성 화가를 둘러싼 음모도 끊이지 않았다. 모델이 된 남자와 성관계를 했다는 소문은 공공연하게 나돌고, 다른 남자 화가가 대신해서 그려주었다는 거짓말이 진실이 되어 돌아다닌다.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치욕적인 사건을 무마하곤 했던 시대에 살았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그림으로 보복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에서 영웅적으로 중심이 되었고 행동에서나 형식에서나 여성의 새로운 언어를 빚어냈다. 그녀의 영웅적 여성들은 결코 남자가 많은 여성들이 아니라 남자를 이길 수 있는 여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가 너무나도 오랫동안,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것이다. 남자에게 잔인무도한 행동을 해내는 여성이 묘사되었고, 감히 그 묘사를 해낸 것도 여성이었다. 아르테미시아는 재갈을 거부했다. 그리고 400년이 흐른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용기를 내어 위대해지라.””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에서 소개하는 여성 작가들의 인생은 하나같이 파란만장하다. 유명한 미술사가의 부인이었던 루이스 부르주아는 취미로 미술을 하는 아내에서 페미니즘 미술가의 대모로 거듭난다. 잭슨 폴록을 알아보고 그의 조력자이자 아내가 된 리 크리스너는 자신의 작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버지니아 올프의 언니 버네사 벨도 화가였다. 동생의 유명세에 가려졌던 그녀는 울프의 책표지를 그리기도 했다. 미니멀리즘의 대가 칼 안드레의 부인이었던 아나 멘디에타는 침실 창문에서 떨어져 죽는다. 살인죄로 기소된 칼 안드레는 여러가지 의혹이 있었지만 결국 유죄선고를 받지 않았고 경력에 흠이 가지도 않았다. 흑인인 카라 워커는 같은 흑인으로부터 흑인의 정체성과 역사를 팔아 돈을 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앨리스 닐은 자신과 비슷하게 소외되고 곤궁하게 살아가던 이웃을 모델로 작품 활동을 했다.


닐은 그녀를 포함해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일그러지고 심란하며 아름답고도 가엾은 인간을 표현했다.
“나는 순수하게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언젠가 닐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심술궂을 정도로 잘 해냈다.”



페미니즘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미술가와 작품을 만난다는 식으로 접근해 봐도 좋을 것이다. 작가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상관없이, 좋은 작품은 그 자체로 감상할 가치가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