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by 이충렬

by 봄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미술가는 김환기이다. 십 수년 전 경매에서 처음 본 김환기의 작품에 빨려 들었다. 미술관도 아닌 경매 프리뷰에서 하염없이 그림을 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김환기의 작품을 살만한 구매력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전혀 없어서, 일 년에 한두 번 가슴 설레며 환기미술관의 전시를 보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저자가 김환기의 지인을 인터뷰하고 문헌을 철저히 조사해 쓴 김환기 화백의 전기이다. 김환기는 1913년 전라도 끝의 안좌도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미술을 전공해 예술가의 길을 간다. 한국, 일본, 프랑스, 미국에 걸친 여정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예술을 지독하게 파고든다. 그 길이 참 힘들고 어렵다.


책을 읽고 나면 부인 김향안의 헌신적인 사랑과 노력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김환기가 김향안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가 아는 김환기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뛰어난 인물이 탄생하는 데에는 재능과 끈기는 기본값이고 그 사람을 전적으로 믿어주고 아낌없이 사랑해 주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조선백자, 산, 바다, 해, 달, 새 등 한국적인 소재를 반추상으로 발전시키던 김환기는 뉴욕에서 마침내 완전한 추상인 점화를 완성한 후 1974년 디스크 수술 후 낙상사고로 유명을 달리한다. 그의 나이 61세였다. 만약 김환기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점화 이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넓고 심오한 예술세계를 세상에 펼쳐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김환기의 작품 중에는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그림이 있다. 김환기가 뉴욕에서 머물던 1970년에 완성한 푸른색의 점화이다. 이 그림에 영감을 준 것은 친구인 시인 김광섭의 시라고 한다. 시를 읽고 나면 푸른색 점화가 차갑거나 이지적인 추상화가 아니라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서정을 담은 새벽하늘처럼 보인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저녁에>,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