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nki In New York: 김환기의 뉴욕 일기

by 김환기

by 봄봄


김환기(1913-1974)는 생의 마지막 10여 년을 뉴욕에서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다. <Whanki In New York: 김환기의 뉴욕 일기>는 뉴욕에 도착한 1963년 10월부터 사망하기 직전인 1974년 7월까지 작가가 쓴 일기를 엮은 책이다.


일기를 따라가다 보면 감환기가 당시 뉴욕에서 활동하던 어떤 미술가를 만나고 어떤 전시를 보고 어떤 작품에 감동을 받았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1964년 겨울에는 로스코의 작업실을 방문하는데 대작을 할 수 있는 로스코의 거대한 작업실 환경을 부러워한다. 로스코의 작업에서 ‘고요한 실내악 같은 감흥’을 느끼고 그의 작업은 ‘빛깔의 연극’이라고 표현한다. 6년 후 로스코가 동맥을 잘라 자살한 뉴스를 접하고는 비통함을 일기에 남겼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가 비명에 가다니. 어찌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예술가인 것도 같다. 인생을 거의 살았는데 왜 그랬을까.”



김환기가 최고로 여기는 미술가는 피카소였다. 피카소 전시를 볼 때마다 피카소의 천재성과 작품에 감탄한다.


“Seidenberg(화랑)에서 붉은 피카소를 보다. 걸작 중의 걸작. 역시 피카소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피카소의 부음을 들은 1973년 4월 8일 일기에는 상실감과 허망함이 가득 차 있다.


태양을 가지고 가버린 것 같아서 멍해진다. 세상이 적막해서 살맛이 없어진다. 심심해서 어찌 살꼬. 전무후무한 위대한 인간, 위대한 작가, 명복을 빈다.”



뉴욕에서 활동하면서 점과 선으로 된 추상화를 완성해 가는 시기인 1972년에는 본인 작업에 대한 자신감도 대단하다. 하루 종일 일하는 것도 부족해서 어떤 때는 새벽까지 일하는 본인을 ‘종신수’라는 자조 섞인 표현으로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역시 피카소와 내가 제일인 것 같다.”


환기의 일기는 후반으로 갈수록 작업일지처럼 번한다. 어떤 작업을 언제 시작했고 끝냈는지 자세히 기록한다. 캔버스 천과 나무를 사다가 톱질과 끌질을 해서 직접 스트레처를 만들어 캔버스를 짜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고 다리가 아파 걷지 못하는 상황에 절망한다. 늙어가는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허리디스크가 심해서 걷기가 힘들어졌을 것이다. 1974년 일기에는 연초부터 고단해서 일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잠자고 쉬었다는 얘기를 되풀이하다가 2월 말에야 첫 작품을 시작했다고 적는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멍하고 기운을 차릴 수 없다는 말이 반복된다.



사람은 꿈을 가진 채 무덤에 들어간다”


1970년에 쓴 일기이다. 자신이 이루고자 한 일을 다 하고 떠나는 사람이 있을까. 머릿속에 남아있는, 앞으로 해야 할 수많은 작업을 남긴 채 결국 어느 순간 죽어야 하는 상황을 아쉬워하면서 남긴 글이 아니었을까.



환기는 미술이 질서와 균형이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그의 검푸른색 점화를 보고 있으면 블랙홀의 미궁, 심연을 알 수 없는 두려움, 수많은 점 뒤에 무엇이 숨어있을까 하는 공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검푸른 색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고 평온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대형 캔버스를 덮은 수많은 점이 리듬감 있는 선으로 변화하면서, 폭발적인 굉음이 아니라 잔잔하고 고요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