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Whanki_심상의 풍경

by 봄봄

Whanki_심상의 풍경: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

환기미술관, 25.08.22~12.31




내가 환기미술관을 가던 날은 대부분 여름의 더위가 가시기 전, 그러나 가을이 오고 있는 그런 날이었다. 이번 역시 다르지 않았다. 구름이 끼면 가을 느낌이 나고 날이 화창해지면 더위가 느껴지는, 여름과 가을이 밀당을 하고 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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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심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걸어 환기미술관에 도착했다. 푸른 바탕에 하얀 글씨로 쓰인 전시 제목만 보고도 이미 마음은 설렌다. 전시가 어떻든 간에 나는 새로운 환기의 작품을 발견하고 좋아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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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nki 심상의 풍경: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은 김환기가 뉴욕에 머물렀던 1963년부터 1974년까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전시이다. 작가가 쓴 편지와 일기와 작업노트의 글을 같이 보여주는데, 마치 작가의 옆에서 작업 과정을 직접 듣는 것 같아 몰입감이 높아진다.



김환기(1913~1974)는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 작가이자 책임자로 브라질에 가게 됐는데 행사 후에 귀국하지 않고 뉴욕으로 향한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파리에 머물면서 서양미술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온갖 고생을 하고 난 후, 다시 한번 세계 무대에 자신을 던지기로 한 것이다.



뉴욕에 가기 전 김환기의 작품은 달, 새, 항아리, 섬, 바다, 산 등 자연의 모습을 표현한 반추상 회화였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사물의 형태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완전 추상화로 변화한다. 김환기 작품 중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점화가 바로 이 시기에 완성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케치북에 색연필로 그린 김환기의 드로잉과 그 드로잉을 바탕으로 그린 회화를 같이 전시해서 보여준다. 수많은 드로잉 작업을 통해 회화를 구상하고 몇 주에 걸쳐 그림 하나를 완성해 갔다. 점화를 그릴 때는 이전의 작업과 다르게 유화물감을 아주 묽게 만들어 칠해서 마치 수묵화처럼 번진 효과를 내기도 했다. 점화에서는 유화의 마티에르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의 집요하고 끈질긴 작업 과정을 살피며 가슴이 아파올 즈음, 미술관 3층 전시실에 올라가면 마침내 대형 점화를 마주한다. 대부분이 푸른 계통인데 다양한 색상의 블루. 그레이, 블랙을 사용해 제작한 회화는 하나도 같은 색이 없다. 우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 두 점이 들어온다. 1970년과 1971년 작품으로 둘 다 청록색 느낌의 점화이다. 환기의 마지막 작품인 <7-VII-74>는 1974년 7월에 그린 검푸른 점화로 마치 먹으로 그린 그림 같다.



프러시안블루, 세룰리안블루, 울트라마린, 블루 블랙. 이런 색들의 변주로 푸른 점화가 된다. 노란 점 하나 없지만, 마치 별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보인다. 차가운 공기에 상쾌해지는 청명한 겨울 밤하늘 같기도 하다. 한겨울에 환기의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전시가 12월 31일까지이니 올해 마지막날을 환기미술관에서 보내봐야 겠다.


IMG_2200.JPG 김환기가 쓰던 물감과 붓



김환기의 점화로 마음을 가득 채운 후, 속세로 돌아온 나는 생각한다. 견물생심. 대형 점화가 탐이 난다. 환기의 대형 점화는 세로 길이가 250센티미터를 넘는 경우가 많다. 그럼 집의 층고가 적어도 4미터는 되어야 할 텐데, 내가 어떻게 하면 이생에서 그런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아니, 집보다 그림이 더 비싸니 점화를 살 돈을 버는 게 먼저이다. 머릿속이 물욕으로 가득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