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2025년 연말, 후쿠오카아트뮤지엄 방문기

by 봄봄

요즘 전시를 보려면 우선 예약을 해야 하는 상황에 좀 지쳐가고 있었다. 계획 없이 우연히 전시를 보고 싶을 때도 있는데, 유명한 미술관이나 인기 있는 전시라면 그렇게 하는 것은 대부분 불가능하다.


며칠 전 잠실의 롯데월드몰 앞을 지나다가 티파니 박스 모양의 대형 조형물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생겨 입구로 가서 물어보니 보석 전시를 하고 있는데, 역시나 네이버로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면에서 후쿠오카아트뮤지엄은 관람하기 참 편리한 곳이다. 후쿠오카 시내의 오호리공원 안에 있는 이 미술관은 공원에 산책을 갔다가 기분이 내키면 전시라도 볼까 하고 편하게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지만 소도시 느낌이 나는 후쿠오카라는 도시의 이미지와 딱 맞는 미술관이다. 눈에 띄는 건축물로 사람을 끌어모으지도 않고, 블록버스터 전시를 유치하는 곳도 아니며, 전시장 규모도 크지 않아서 부담이 없다.


11월 말에는 미술관의 소장품 전시와 다구 관련 전시 등을 하고 있었다. 공원과 호수 경관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미술관 안의 카페와 미술관 앞은 붐비지만 정작 전시장은 한산했다. 도심의 맛집 투어와 근교의 온천 여행으로 유명한 후쿠오카에서 인파를 벗어나 여유를 느끼기에는 이 미술관 만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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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Daimyo, 2025.10.21~12.14

Eyes on Foreign Lands, 2025.10.28~2026.1.18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다구 전시를 가장 먼저 보았다. <The Art of Daimyo>와 <Eyes on Foreign Lands>라는 두 개의 전시는 일본 봉건 영주인 다이묘들이 쓰던 다기와 조선, 중국, 태국 등에서 들여와 사용한 다기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중국 남송시대인 12~13세기의 다완, 조선시대인 15~16세기에 만들어진 다완 등 수입품에 이어 17세기에 일본에서 직접 만든 다완과 차통이 있었다. 여러 명이 모이는 다회에서는 자랑하고 혼자 조용히 즐기는 티타임에서는 애지중지하며 사용했을 차 도구를 보면, 사람 사는 것이 몇 백 년 전이나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호령하는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본인의 관심사, 아름다움 또는 유행에 돈을 쓰게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누구에게는 참으로 하찮고 쓸데없는 기물로 여겨질 테지만, 차와 다구에 빠진 사람에게는 손에 넣는 그 순간 최고의 전리품을 차지한 고대의 장군 같은 만족감과 희열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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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시대 다완(12~13세기)과 조선시대 다완(15~1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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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분린'이라 불리는 명나라 차통(15~16세기)과 조선시대 다완(15~16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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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일본 에도시대의 다완




Collection Highlights, 2025.6.12~2026.4.30


후쿠오카아트뮤지엄의 소장품은 의외로 화려하다. <Collection Highlights>를 보다 보니 마치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의 출품작을 보는 것 같았다. 로스코, 바스키아, 워홀, 미로, 달리 등 유명한 인기 작가의 대형 작품이 걸려 있었다. 돈 많은 컬렉터가 기증을 했는지, 미술관의 예산이 예상외로 많은 것인지 작품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았다. 동시대미술품도 사라 루카스, 잉카 쇼니바레, 안젤름 키퍼 등 국제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최고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보다 후쿠오카아트뮤지엄이 세계현대미술 소장품은 더 낫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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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 Highlights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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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on Highlights 전시전경




Gaze toward the North, 2025.9.2~12.31


<Gaze toward the North>는 전시 제목만으로는 어떤 전시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전시 작품을 보니 20세기 초반 일본이 우리나라와 중국을 침략하고 통치하게 되자 일본 예술가들이 한반도와 중국 등지를 돌아다니며 그린 풍경화와 풍속화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기방, 경복궁 앞 중학천의 빨래터, 달빛이 비치는 금강산 등이 눈에 띄었다.

IMG_3034.JPG <기생집>, 마츠타 레이코, 1940, 목판화에 채색


IMG_3037.JPG <경성>, 야자키 치요지, 1940, 종이에 파스텔


IMG_3041.JPG <금강산월야>, 토쿠타 교쿠류, 연대미상, 비단에 잉크




이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작품은 쿠사마 야요이노란 호박일 것이다. 미술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외부 공간에 있어서, 미술관 입장권을 구매하지 않고도 누구나 볼 수 있다. 심지어 작품 주변에 접근을 금지하는 장치나 만지지 말라는 경고 문구도 없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박에 기대거나 호박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혹시 쿠사마가 일본작가여서 특별히 호의적으로 전시를 한 것일까? 노란 호박을 몸으로 느껴보라고 말이다. 쿠사마의 호박을 만져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후쿠오카아트뮤지엄을 적극 추천한다.

IMG_3057.JPG 미술관 외부에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은 인기있는 포토스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