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짓과 별짓 사이의 이상한 글짓,기

못쓰는 사람의 글쓰기.

by 글짓는 날때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라디오를 켜고 브런치에 들어와 [글쓰기]를 클릭한다.

한참을 반짝이는 화면속 커서(cursor)를 감탄스레 바라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곤 몇 년째 쓰고 있는 텀블러의 문구를 새삼 다시 읽어본다.

책과 더불어 따뜻한 겨울을!
2017년 12월,
오정희

흠, 텀블러를 내려놓고 책장을 훑어본다.

어디에도 오정희 작가님의 책은 없다.

'저 텀블러. 도대체 어디서 난 거야?'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2017년, 해를 건너는 겨울 동안의 구매 목록을 찾아본다.

'찾았다. 2018년 1월 27일, 열일곱 권의 책을 주문하고 사은품으로 받은 거구나. 에? 열일곱 권을 주문했다고? 무슨 공돈이라도 생긴 거야?'

인터넷 뱅킹에 들어가 2017년, 해를 건너는 겨울 동안의 입금 내역을...


"아! 맞다. 글을 쓰려고 PC를 켰다."




'안~터-져요~!'

서둘러 라디오를 껐지만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박자에 맞춰 '안~터-져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요~! 에서 좀 더 길게 끌어야 하나? 안~을 좀 강하게? 그나저나 정말 안 터지나? 오호~ 세계최초의 CRV폭발 방지기술로...'

허억! 이런 미친! 조금 위험한 상황이 되었음을 감지한다.

만약 여기서 '친구는 오랜 친구 죽마고우~ 국민연료~'까지 나온다면 글을 쓰겠다는 나의 하루는 그대로 끝이 나고 나의 이름은 누군가의 살생부에 오를 것이다.

못 들은 사람은 있어도 따라 부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씨익~~ '안~터-져요~ 국민 연료~'"




죽마고우와 있지도 않은 조강지처가 '안 터져요'를 불러재끼는 상황에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깜빡이고 있는 커서(cursor)를 보며 '넌 참, 올곧은 아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급하게 검색창을 열어 검색을 한다.

'바탕화면 부수기 게임!'

말 그대로 내 PC의 현재 화면을 캡처해서 부숴버리는 스트레스 해소용 고전 게임이다. 망치, 전기톱, 화염방사기, 레이저 등 다양한 무기를 동원해서 참 많이도 부순 기억이 있다.

언제였을까. 파워포인트 작업을 멈추고 게임을 실행해서 막 전기톱을 들었을 때였나, 옆자리 김주임 얼굴에서 잠시 악마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김주임이 그때 화염방사기를 들었던가? 얼핏 봤던 바탕화면엔 모 과장 얼굴이 가득했다. 그거 한번 부셔 보겠다고 보기 싫은 얼굴을 도배하는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하는 측은함 마저 들었던 것 같다.

게임 검색을 멈추고 여전히 올곧게 깜빡이는 커서(cursor)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김주임의 그 미소와 다르지 않다.

'안~터-져요~!'를 흥얼거리며 발을 길게 뻗어본다.


"여기 어디쯤에 멀티탭 전원 스위치가 있었는데'




'안~터-져요~!'를 흥얼거리며 무라카미 씨를 오쿠다 히데오 옆으로 옮겨 본다. 미미여사 옆엔 누가 뭐래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어야 한다. 김영하 작가님과 김연수 작가님이 드디어 한 곳에 모이게 되었고 김애란 작가님과 김민철 작가님을 짝지어 앉혀 드렸다. 두 분 모두 조금 수줍어 보이긴 해도 기분 나쁜 눈치는 아니다.

'슬램덩크' 전집의 먼지를 떨어내고 '산포의 산'옆에 둔다. 요츠바를 안아 들어 '바닷마을 다이어리'옆으로 옮긴다. 요츠바와 스즈는 조금 닮은 구석이 있다. 친구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박별보라 작가님과 오명은 작가님은 좀 특별하니 중앙에 놓아본다.

유홍준 선생님의 '문답기'를 위로 올려본다. 그동안 너무 소홀했다. 봄, '문답기' 읽기 좋은 계절이다. 남도의 진달래와 매화꽃이 피어나고 부석사 올라가는 길의 사과나무 과수원도 생각난다.


'안~터-져요~!'를 흥얼거리며 총채를 들고 책장 구석구석 먼지를 떨어낸다. 새삼 알게 된 사실인데 총채의 그립감이 생각보다 좋다. 어머니께서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리고 총채의 용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본다. 역시 총채는 먼지 떨 때 쓰기보단 등짝을 후리는 용도가 맞는 것 같다.


"좀 맞아야 돼.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한번 맞아봐야 돼!"




창밖엔 매화가 만개했고

방안엔 어떤 사내가 총채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다.

꽃이라도 꼽았으면 좋으련만 총채 깃만 휘날린다.

'안~터-져요~!'


- 못쓰는 사람의 어제 있었던 이야기 [ 쓰지 못해 터질 바에야 ]




궁금합니다.

'글짓는 날때'는 어느 분의 살생부에 올라갔을까요. ^^

마지막으로 저의 필명을 살생부에 올리며

브런치 첫 연재를 마칠까 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 에필로그로 찾아뵙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애착 문장이 아닌 애정하는 책을 소개합니다.

인용구가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참고서에서 인용구를 뽑는 게 참 어렵습니다.

총채를 들고 춤을 추다가도 잠깐 멈춰서 읽곤 합니다.


뭐, 읽는다 하여 고쳐진다면... 안.. 터지겠죠?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며 깨단한 것도 있습니다.

안 쓰던 사람에서 쓰는 사람이 되었고.
이제 써야 산 것 같아 살 것 같은 사람이 되었고
잘 쓰면 좋겠지만 못써도 쓰는 사람이면 되었다.

정도겠네요.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식인사는 에필로그에서!




info.

참고서(?)_「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_ 김정선 作 / 유유

그리고 공감하는 문장_

"내 눈엔 전혀 어색하지 않은데요."

"아,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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