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쓰는 사람의 심심한 이야기들_3화
햇살 좋은 날 시험이 끝난 교정 끝 어느 교실에서 말러가 들려온다. 음악에 각인된다는 표현보다는 나에겐 점령에 가까웠다. 자유롭게 타이핑하길 기다렸던 손은 너무도 쉽게 자신을 포기했고 기꺼이 인질이 되어 주기를 자청했다. 단, 1번 4악장까지의 한시적 인질이었다. 햇살은 좋고 말러에게 점령 당해 두 손은 인질로 잡혀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 머리나 할까?
햇살이 너무 좋은 탓일까. 샴푸가 너무 편했던 것일까. 은은하고 경쾌하며 강력한 기 새는 잠식과 붕괴를 통한 완벽한 점령에 가까웠으나 다시금 어르고 달래기 시작한다. 인질에 대한 처우가 지나치게 좋은 건 아닌가 생각헀다. 바쁜 일만 없다면(어처구니없게도 지금은 글쓰기다.) 굳이 해방이 필요할까? 이런 인질이라면 그냥 점령당한 채로 지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다면 자발적 구속과 고립도 충분히 고려해 볼만하다고 생각할때 음악은 3악장으로 넘어가고 나른한 기억은 이상한 장면을 떠올린다.
표정이 없는 아이치곤 비교적 겁이 많았던 터라 집 밖으로 잘 나가질 않았다. 나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국민학교 입학식 때였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서있던 학부모들에게 이제 아이들의 손을 놓고 뒤로 이동해 달라는 선생님의 요청에 엄마는 나의 손을 놓으셨고 난 울음이 터져버렸다. 고작 몇 미터 떨어지는 것인데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난 엄마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트라우마?' 그런 게 작용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우리 권여사님은 혼잡한 버스에서 내가 아닌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내리셨던 적이 있다고 하셨다. 조금은 기억이 난다. 매캐한 냄새가 나던 엔진룸이 불룩 솟아있는 아주 오래전 버스의 냄새. 버스 차장이 문을 닫는 순간 문밖에 엉뚱한 아이의 손을 잡고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서있는 우리 권여사의 모습.
그때의 감정까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지 우리가 지금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급하게 나의 손을 부여잡고 나와 같은 표정이었을 것 같은 얼굴로 버스 차장에게 뭔가 호소하는 장면도 떠오른다.
남의 아이의 손을 잡고 강제로 끌고 내려버린 권여사와 혹시 몰라 나를 인질로 잡은 아주머니는 서로의 등과 어깨를 눈물로 손으로 쓰다듬으며 위로를 하더니 종국엔 서로 웃으며 장본 물건마저 교환하기에 이르렀고 그때까지 영문도 모른 체 엄마가 아닌 다른 아주머니의 손에 붙들려 있던 인질들 아니 두 아이는 평화적으로 각자의 어머니 품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그때 참 많이 놀랬고 한편 재밌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래도 손에 잡혀 끌려 내린 아이가 꽤나 곱상하게 생겼고 크게 놀랐을 텐데도 또래 같지 않게 의젓했다고 미소를 지은채 회상하신다. 그런 권여사님을 보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때 그 아주머니의 미소가 참 다정하고 고왔다고 말했다. 겁에 질려 올고 있는 그 어린아이의 손을 잡아주던 그 손이 어찌나 곱고 따뜻하던지 하며 미소를 지었다.
권여사님은 총채를 꺼내 드셨고 난 반사적으로 지갑을 열었다. 단지 미아가 될 뻔한 트라우마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저를 어떻게 키우신 겁니까!
오묘한 3악장은 기억도 없이 사라지고 폭풍 같은 4악장이 지나간다.
이제 2차 점령이 시작된다.
눈물의 입학식을 치른 아이는 가슴에 달았던 손수건을 때며 트라우마도 함께 떨쳐낼 수 있었지만 나이를 먹으며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하고 스펙터클 하며 때론 지독하고 가끔은 달콤한 자발적 인질 상황을 만들었고 마치 점령당함을 즐기듯이 반복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 그냥 인생 자체가 끊임없이 인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며 갑과 을사이의 인질상황에 놓이고 자연스럽게 지불과 수취사이의 인질이 되기도 했다. 마음을 담보로 잡힌 사람의 인질이 되기도 했고 옳고 그름 사이의 해야 함에 대한 인질 상황도 겪게 된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자연스레 풀려나기도 하고 요래 요래 해결 되기도 했으며 분통 터지게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원하지도 않던 강제 석방도 당해봤다. (꼭 그래야만 했니...? 내가 인질로 있겠다는데 왜!!)
그럼에도 저 모든 지독한 인질 상황 속에서 풀려 났음에도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뭐 다들 알고 있는 뻔한 것들이다. 미련과 그리움, 시기와 질투, 못남과 미련함, 고집과 욕심 이것들은 아주 작은 틈도 만에 하나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 뭔가 시도를 할 때마다 그저 웃으며 딱 한마디를 던진다.
: 제들이 널? 죽어도 안 놔줄걸!
무엇을 지불해도 놓아주지 않고 어떠한 재안에도 협상할 여지가 없다면 방법은 하나다. 들장미 소녀도 아는 방법이다. 그럴 땐 얘기를 나누면 된다. 거울 속에 나하고.
차마 거울 속 나를 마주하기 힘들다? 그럼 글을 쓰도록 하자.
미련과 그리움씨! 요래와서 좀 앉아봐요. 우리 얘기 좀 해보죠. 그때 그게 옳았다는 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거, 우리 이미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자꾸 그러시면 어떡해요.
고집군과 욕 심군! 요즘 들어 말이 너무 많아요! 인질도 생각해야죠. 안 그러면 좀 놔주던가. 이름값 정말 제대로들 하는군요!
글쓰기는 차마 거울을 보고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곳이 되었고 그들이 거부할 수 없는 협상카드이며 강제로 석방되거나 추방될 일도 없게 되었다. 이제 저들에게 나는 누가 보지 않는다면 먼 곳에 내 다 버리고 싶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고 생각만큼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제 주도권은 오롯이 내가 쥐었다.
아, 고독과 외로움은 협상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그 아이들은 분리할 수도 없고 분리될 수 도 없다. 그냥 같은 인질로 봐야 한다. 춘 승과도 여러 차례 논의해 봤지만 이 아이들은 어떡할 수 없다. 참으로 든든하고 언제나 내편인 깍두기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결정적으로 저 둘이 없으면 사람은 너무 외롭고 고독해진다. 거울을 보고 이야기할 수도 글을 쓸 수도 없게 된다. 스스로가 살아있길 거부하게 된다.
중화제의 시원함이 느껴질 때 두 번째 점령도 끝이 났다.
이제 파마약 냄새를 풍기며 두 차례의 점령을 받을 동안의 일들을 해방된 손이 이야기해 줄 일만 남았다.
두 번의 점령은 꽤나 매력 있었다. 2악장으로 넘어가고 싶지만 참아야 할 것 같다.
머리 한 날 머리 감기 싫다.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Epil. 이것은 머리 말리면서 읽는 쇼츠!
곱슬머리에 B형 남자와 데이트하면 생기는 일.
인질이고 싶었으나 강제 석방 당한 사연.
INT.01_식당
이 집이 뭐가 맛있다고?
: 지금 자기 먹는 거. 괜찮지 않아?
이 집은 그냥 물이 제일 맛있는 거 같은데?
: 그래? 내건 괜찮은데.
내가 먹는 게 맛이 없다고.
: 바꿔 먹을래?
아니, 심지어 콜라마저도 맛이 없어.
: 미운틴 듀는 마실만 해
콜라 얘기하잖아.
: 근데 식당 조용하고 괜찮지 않아?
자기건 맛있어?
: 먹을 만 해
맛있냐고?
: 내 기준엔 먹을 만 해. 바꿀래?
줘봐.
: 물이 맛있다는 건... 대체
INT.02_극장
이 영화 재미있데?
: 재미는 있다는데 모르지
근데 왜 골랐어?
: 재밌다고 하니까.
모른다며?
: 안 봤으니까.
재밌으려나.
: 보면 알겠지.
[하아... 영화를 못 보겠네...]
우리한테 그러는 거야?
: 아니. 우리 앞에 앞에
아무 얘기도 안 하는데?
: 영화시작하고 1시간째 수화로 대화하고 있어.
INT.03_주점
나도 자기가 먹는 거 먹을걸.
: 먹었잖아
정말 내건 아니었어.
: 먹을만하던데.
영화 생각보다 재밌더라
: 망했어. 기억나는 게 없어
그래? 난 잘 봤는데.
: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는지. 엿듣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어.
수화라며?
: 그러니까.
뭐 먹을까?
: 이번엔 자기가 골라.
사장님, 물부터 주세요.
: 물이 맛있다는 건 대체...
사랑해!
: 내일은?
내일 돼 봐야 알지!
: 사랑해! 물이 맛있다니!
Epil.2
왜 헤어졌지...
머리 한 날 머리 감는 짓이라도 한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