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새로운 연재 브런치 북의 제목을 '못쓰는 사람이 지어낸 심심한 문장들'로 정하고 아직 어떤 글도 못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목의 저주일까요?
사실은 어떤 글을 어떻게 써볼까 하는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고민하지 말고 일단 써야 하는데 댓글을 읽어보면 점점 더 쓰지 못하겠더라고요.(과분한 칭찬은 고래를 가라앉게 합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뭐라도 써야겠다 다짐을 해봅니다. '어차피 아마추어다. 조금은 당당하고 가볍게 최선을 다하자. 어차피 부족하다. 다양한 시도를 해봐도 된다'라는 마음을 먹고 이렇게 또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 나에게 그 어떤 이야기라 할 정도의 이야깃거리가 있을까? 있다 한들 어떻게 풀어내야 재미가 있을까'시간을 들여 고민하다 어떤 결론에 닿았습니다.
'일상을 밑그림으로 그리고 이야기로 색을 입혀 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죠. 마음 풀어쓰는 시여도 좋고 생각담아 쓰는 에세이도 좋고 마음 풀어 생각 담은 글에 상상력 조금 첨가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처럼요.
제목 : 과유불급_[a.k.a_반성문]
참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계신다.
그리고 그분들의 글들을 좋아한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없이 빠져든다.
재미를 떠나서 그저 읽는 동안 행복한 글들.
그분들이 그려낸 우주에서 또는 궁전에서,
밤의 산책길, 올려다본 하늘, 그러다 발견한 별의 이야기.
몰래 들은 이야기, 살짝 흉을 봤다는 이야기,
아이와의 정다운 실랑이를 했다는 이야기 등등...
너무 즐거워 몇 번을 다시 읽게 되고
그 모든 장면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 순간, 선을 넘을 때가 있다.
덩달아 신이 나서 조금은 가벼워도 될 댓글을
읽은 감상만 진솔하게 적으면 될 댓글이
필요이상으로 깊어지고 길어진다.
지금 읽는 이 글이 책으로 나온다면
띠지에 적고 싶은 글을 써볼 때도 있고
장면 하나에 갇혀 시답지도 않은 댓글을 쓸 때도 있다.
과유불급_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작가님의 소중한 공간에 너무 오래 앉아 있게 된다.
그만 주책이 길어진 것이다.
좋아함이 존중이 되어야 함을 잊고 만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춘승님께서 한마디 하신다.
그라믄 안 돼~
당신 신난다고 다른 이의 소중한 공간에서
막 그렇게 주책 떨고 그라믄 안 돼.
'잘못했습니다' 세 번 하고 다신 그러지 마요.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목 : 보관방법
어쩌면 삶의 무게란 지구의 무게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이 보편 중력이라면 이 한없이 가벼운 육신이 짊어진 삶은 도대체 얼마나 무겁길래 바닥에 붙은 채 일어나 앉질 못하고 있는 것인가. 보편 중력은 삶의 무게에도 영향을 주는 것일까, 생각하는 중에 휴대폰이 울린다.
어쩐 일이에요. 이 시간에? 좀 이르지 않나?
: 와인을 선물 받았는데. 이거 어떻게 보관해요?
술을 선물로 받았는데 보관을 한다? 제정신이야?
: 아니 좀 고가의 와인인가 봐요.
고가라 보관을 하겠다? 하! 지금 뭐해요?
: 누워있어요.
역시 보편중력은 보편중력인가.
: 네?
동일한 방법으로 보관하면 돼요.
햇볕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공간에 눕혀서 보관!
지구가 당기는 같은 방향의 보편 중력이라면 내가 누워 있는 것도 와인이 누워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크게 이질적이지도 다르지도 않다. 오히려 지극히 안정적인 모습일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 육신은 삭아가고 있는 중이고 와인은 숙성되는 중이라는 것이고
단지 위로가 된다면,
삭아가는 육신과는 다르게 삶의 무게를 버티고 있는 나의 영혼은 조금은 달큼하고 가끔은 시큰하며 때로는 묵직하게 익어 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은 갖고 있다는 것?
오늘의 교훈이라면 와인은 가능한 햇볕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공간에 눕혀서 보관해야 하고 인간은 가능한 보편중력을 이겨내고 볕을 쏘일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육신은 삭아가도 영혼까지 늙어갈 필요는 없다. 볕이 좋다. 일어나 앉아 글을 쪼일 시간이다.
그나저나 비싼 술이라 보관을 한다? 이 양반이 진짜.
제목 : 낮은 곳에 임하시며 기적을 행하신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여성이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전하며 열차 내를 이동하고 있고 그 뒤를 조금 과하게 타이트한 드레스 셔츠를 입은 젊은 청년이 새끼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며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은채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
춘승은 십 원도 아닌 고작 구 원이라니 예수님의 품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나를 보며 말했고 나는 젊은 청년을 보며 셔츠를 입고 꼬매도 저렇게 타이트하진 못할 거라며 대꾸했다.
"형제님, 거기 앉아 계시면 죄인이 되시는 거예요"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여성이 조용하나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고, "퉁~!" 하는 경쾌한 소리가 청년의 손가락 끝에서 나는 순간,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던 초로의 남성은 얼굴을 감싼 채 열린 문으로 달려 나갔다.
"아! 자매님!" 춘승의 작은 외침이 들렸고
"아! 형제님!" 나의 작은 감탄사가 터졌다.
자매님은 평온한 얼굴로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는 말을 전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형제님은 코를 후비며 미소를 지은 채 뒤를 따라 걸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여인을 보며 사람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여인은 배를 쓰다듬으며 의아한 미소를 지었다.
당산철교를 지나는 열차 내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구원받았을까요?" 춘승이 작게 물었다.
"기적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기도 하니까요"
epil.
아마도 이런 글을 쓸 것 같습니다.
칭찬보단 꾸짖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연재의 첫 번째 글을 반성문으로 시작했습니다.
늦게라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마음 담아 즐겁게 읽되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마주하겠습니다.
저의 주책에 불편하셨을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잘못했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