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못쓰는 사람의 심심한 이야기들_2화

by 글짓는 날때

못쓰는 사람의 심심한 이

"반성도 했고 뉘우침도 있었고 요래 요래 글 하나 썼다. 그쵸? 그래요. 글을 하나 썼단 말이죠. 작가님? 글도 쓰고 나도 막 갖다 쓰고. 막 그랬데?"

[춘승의 민원성 전화가 걸려왔다]


"벚꽃도 다 떨어졌는데 늦기 전에 봄 도다리나 먹으러 갈래요?"


"글 쓴다는 사람의 센스가 그 정도는 돼야지. 합정? 회사원?"




ep1. 자기 인식


"댓글 중에 '자기 인식'이라는 단어가 보이던데요. 지금 현재,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본인을 탐구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은데, 어때요? 도다리만 씹기엔 좀 심심하잖아.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흐음... 가만있어 보자... 우선 나의...


부정적인면

일단 나이가 좀 많다. 곱슬머리에 혈액형은 B형이며 미혼이다.
: 여기서 일단 걸러야 한다. 아, 내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대체로 기분이 나쁜 상태며, 많은 경우 잘 웃지 않는다.
: 들은 얘기론 돌잡이 이후로 표정 변화가 없다고 한다.

불의를 보면 대체로 피하고 불편함은 가능한 참는다.
: 이걸 인간적이라고 하진 않는다.


긍정적인면

친절에 대해 고민하는 편이고 다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 대체로 기분이 나쁜 상태로 표정 없이 행한다는 게 문제다.

실망은 가끔 하지만 절망은 하지 않으려 애쓴다.
: 아직 덜, 당해 본 거다.


알수없는면

항상 뭘 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결국 하고 나서 후회한다.
: 자, 슬슬 문제점이 보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하지 못해 안달을 낸다.
: 실수의 루틴이 형성되었다.


재수없는면

가능한 괜찮다고 말하며 대부분 필요 없다고 말한다.
: 호의든 물건이든 뭘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글을쓰는면

나팔꽃 성장일기보다 재미없고 라디오 사연만큼도 유익하지 않다.
: 무미건조(無味乾燥)하고 무용(無用)하나 무해(無禮)하여 다행이다.

뭘 잘하고 뭘 못했는지는 몰라도 쓰고 나면 배실배실 곧잘 웃는다.
: 무용(無用)하나 무해(無害)하니 봐주기로 하자.


종합적인면

나이는 먹었지만 어른스럽진 않고 인간적이진 않지만 사람 같고는 싶어 하며 '곱슬머리에 B형 남자는 다신 만나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전 여자친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결혼에 대한 이상도 환상도 없다는 게 무척 다행스럽다.

나팔꽃 성장 일기보다는 재미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음에도 절망하지 않고 노력하는 점은 가상 하나 자신의 부족함을 다른 곳에서 찾거나 대체하려는 행동은 고칠 필요가 있음.

※ 절망은 본인만 하지만 실망은 타인도 한다는 걸 인지해야 함.

친절과 다정은 그나마 긍정적이라 평가할 수 있지만 간혹 태평양 급 오지랖이 문제임을 모르고 있다는 게 사실 좀 많이 애매하긴 함.


: 쓰는 글하고 너무 다른데?

: 글쓰기 모드의 다른 자아가 있는 거 아니에요?

: 전화 온다. 권여사님이네 받아봐요.


"네엡~! 이 시간에 어쩐 일이랴? 도다리 좀 사갈까?"


"아들! 순애씨 친한 교회사람 딸인가 본데. 순애씨 말로는 사람이 꽤 괜찮다네. 순애씨가 중매 좀 서볼까 한다는데 한번 만나보는 거 어때?"


"순애 이모랑 친한 사이는 맞데요? 그분 혹시 순애 이모 곗돈 들고 튄 적 있는 거 아니야?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딸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나를? 그러지 마시라고 해요. 순애 이모 그렇게 안 봤는데. 좀 그르네..."


"그렇지? 암만 내 아들이어도 아닌 건 아니지? 끊자..."


[ 아, 어머니! ]

[ 아, 여사님! ]


봄볕에서 즐기는 자기 인식의 시간...

도다리는 고소했고 어머니의 한마디는 비수와 같았다.


엄마는,,, 쳇!

잘 알지도 못하면서...




ep2. 보관 방법


광화문에서 근무할 때 단골이었던 라이브펍을 찾았다.


정해진 시간에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하는 곳은 아니다. 그냥 주인아저씨가 본인 기분이 좋으면 한곡하고 주인아저씨와 친한 가수분이 오시면 한곡 들려주고 간혹 감성 가득한 손님이 한곡 하기도 하고, 그러다 다 같이 떼창을 하기도 하는 정다운 술집이다.


여전히 푸근하고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반겨주신다. 위스키 한 병과 되는 안주 아무거나 하나 부탁드린다. 향긋한 봄 딸기와 전자레인지에 돌린 똥 딴 멸치가 나왔다. 노포식 단짠의 조화다.

손님들이 하나둘 채워지고 흘깃흘깃 통기타와 사장님을 쳐다본다. 못 이기는 척 꽤나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한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아, 노래가 아니고 노래를 부르는 주인아저씨의 눈동자와 그 노래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그렇다.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자신을 소비한 사람들의 마음이 감성으로 채워지는 순간이다.


춘승과 나는 분위기까지 더해진 취기를 다스리기 위해 바람도 쐴 겸 잠시 일어선다.


"좋네요"

"그러게요. 좋네요"


그때였다.


- 어차피 가수로 실패한 사람들이야 -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다. 영혼이 베베 꼬여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독설을 뱉어내는 사람들. 삐딱하거나 마음이 좋지 않은 사람들.


"회사 잘렸나 보네, 기분이 무지개 같은가 봐요."

"그러게요, 뭔가 크게 안 좋은 일이 있었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무지개 같은."


다행히 아무도 듣지 못했다. 작은 술집에선 행복하게 반짝이는 사람이 노래를 하고 있었고 그 노래를 들으며 행복하게 빛나는 사람들만 있었다.


주인아저씨에게 실패가 있었을지는 모른다. 아마 실패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절망하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눈이 그랬고 목소리가 그랬고 미소가 그랬고 미소로 부르는 노래가 그랬다.

분명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여섯가닥의 줄과 고운 나무의 결 안에 아름답게 보관 중이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맑은 눈으로 행복하게 노래하는 중이다.


난 그 삐딱한 말을 던진 사람도 그렇게 맑아지길 바랄 뿐이다. 실패는 하되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살아가느냐 소비된 영혼의 충전이 조금 더 많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ep3. 가진 거라곤 이게 전부라


"걱정을 하지 마! 내가 가진 게 돈밖에 없어!"

어르신 한분이 호기롭게 당신의 친구들에게 외치신다.


해장국에 수육 몇 접시지만 오랜만에 본인이 대접하는 자리이신가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 얼마나 많으신지는 모르겠지만 돈이 많다는 것도 뭐 나쁘지 않아 보인다. 저 정도면 뭐 기분 좋은, 말 그대로 호기로운 자랑이실 것이다.

나야 뭐, 워낙 돈에 대해 둔한 사람이라 그저 우리 권여사님이랑 먹고 살만큼? 그리고 가끔 책정도는 사서 읽을 정도? 거기다 아주 쬐끔 더 욕심을 내는 정도의 벌이를 유지하고 있다. 애초에 지킬 욕심을 부릴 만큼 많은 돈이 있어본 적도 없고 심지어 지켜야 할 만큼 많은 돈을 벌어 본 적도 없어 그저 가욋돈이 조금 생기면 '1차 정도는 내가 살게'라고 아주 가끔 호기를 부리는 정도다.


그럼에도 '가진 게 돈밖에 없다'며 호기롭게 외치시는 어르신이나 '해햇~! 수익이 조금 많이 나서요'라고 쭈뼛거리며 결국 도다리며 위스키까지 1,2차를 모두 계산하는 춘승을 보면 돈을 좀 벌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뭐해요? 잔을 비워야 따르죠"


"아니, 저 어르신이나 자기 보니까 이제와 살짝 부럽네, 해튼 해장국은 제가 사요. 사람이 염치가 있지"


"이모~우리 수육 한 접시 줘요. 소주 한 병하고!"


나의 호기로움에 춘승은 추가 안주 주문으로 답했고

뒤를 이어 어르신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 적어서 그렇지, 진짜로 가진 거라곤 돈밖에 없어"


춘승은 술을 따르다 그대로 멈췄고 난 술병을 뺐어 급히 잔에 따라 한 모금 마시곤 고개를 돌려 입을 막았다. 입에선 웃음이 터지고 눈에선 이슬이 흘렀다.


아이고 어르신, 아무렴 어떻습니까. 오래오래 그 호기로움을 잊지 마세요.

어쨓든 죄송합니다. 제가 좀 경솔했네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epil.

이런 날도 있는 거겠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쩐지 다 알 것 같은.

잘 알지 못하겠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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