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하찮은 소중한 기적

크리스마스의 기적

by 글짓는 날때

"아니 어떻게 그런 욕심을 부려.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온다"

지인 춘승의 비아냥입니다.


"아니, 욕심이 아니고 그저 동기부여랄까. 그런 게 필요했던 거지"


"아니, 그래서?"


"그래서는 뭐, 앞다리만 나온 개구리가 뛰려고 마음먹는다고 뛰어지나요. 머리만 삐쭉 내밀고 뛰었다고 착각하는 거지"


"그렇게 잘 아는 양반이 왜 그랬데"


"기한이 정해져 있었고 필요한 최소 분량이 있더라고요.

이왕 시작한 거 한번 써보자! 하는 나름의 각오였죠.

그런데 목표가 생기니까 그 분량을 쓰게 되더라고요.

딱 마무리 한날이 응모 마지막 날인 거야.

그래서 이왕 쓴 거 그냥 응모해 본 거예요.

뭐, 각오한 만큼은 했고. 설레고 싶었죠.

결과야 당연하지만 두근거림은 필요하잖아요."


"잘했네. 그런데 있잖아요. 뒷다리가 나온다 해서 뛸 수는 있고?"


"아뇨. 절대 못 뛰어요. 일단 가라앉지 않는 거. 그게 먼저 같아요.

가라앉아도 다시 부유할 수 있는 여유와 긴 호흡.

못 뛰면 모가지라도 늘려야지 뭐. 숨은 쉬어야 하니까"

(부적절한 부사와 형용사 등 다소 거친 표현이 있어 조금 다듬었습니다)




17일 저녁 지인 춘승과의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입니다.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결과 발표날이었죠.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습니다.


"오늘 들어가 보니까 무슨 발표하던데 혹시 응모한 건 아니죠?"

라는 물음에 낚이고 말았죠.


"에? 내 주제에 무슨 응모를 해요. 깜냥이나 되나.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찌개 먹던 숟가락을 건네더군요.

"뭐 해? 파요. 쥐구멍이라도. 숨을 시간은 드릴게.

아니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왜 주제 파악을 못해요?

언제 철들고 언제 사람 될 거야"


"내가 그래서 고기 먹을 때 마늘 안 먹잖아요.

많이 먹으면 사람 될까 봐"


"얼른 파요. 아예 묻어 버리게. 입부터 묻어야 돼. 이 양반은...

요행도 뭘 해놓고 바라는 거고 기적도 노력한 사람에게 오는 거예요"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기적을 만들기 위해 기어코 길을 나서기로 결심하는 소년


도전이 아니고 시도였습니다.

시작을 했으니 뭐라도 해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

성과를 바라진 않았습니다. 그저 성취감이면 좋겠다 정도였죠.


아니, 그렇잖아요.

좋아하는 거 시작했는데 마침 도전 과제가 하나 있는 거예요.

최소 열다섯 편의 글. 남은 기간은 20여 일!

결과야 뻔하더라도 태어나 처음으로 기간과 컨셉을 정해놓고

열다섯 편의 글을 지어 보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재주가 없으니 엉덩이라도 책상머리에 붙이고 앉아

그저 쓰고 지우고 읽고 지우고 그리고 다시 쓰고.

어설픈 단어와 문장들을 맞는지 틀린 지도 모른 체 그저 쓰기만 했죠.


어느 분이 얘기하셨나요?

쓸 때는 그저 쓰기만 하다가 쓰고 나면 달콤하다고 하셨나요?

쓸 때는 맛도 모르겠다가 쓰고 나니 그제야 쓰던걸요.

'흠, 쓴맛이 이런 건가. 쓰는 맛이 이런 건가..'

그래도 '이게 맞아?'라는 의심보단 어쨌든 써보자라는

뻔뻔한 용기였을까요.

열여섯 편의 글을 지어 작품 하나가 생겼고 이 작은 시도는,

올해 제게 일어난 '가볍고 하찮지만 소중한 기적'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응모까지 가는 건 너무했죠?

'가만있자. 파둔 쥐구멍이 몇 개는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흑역사일까요? 아닐 거예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죠.

잘된 역사가 있어야 흑역사가 있듯 흑역사라 말하는 것도 나중일이겠네요.

음, 나중이라... 이왕 이렇게 된 거 뻔뻔스럽기로 합니다.

희망 없이 사는 거 힘드니까요.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형제의 대화


나만의 리그면 어때요.

작은 성취감이 생겼고 시도한 덕분에 나만의 성과도 생겼잖아요.

비록 작고 하찮은 기적이지만 하나를 만들었으니 두 번째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잘 쓰진 못해도 꾸준히 쓰는 건 잘할 자신도 생겼으니 또 다른 시도를 해봐야겠죠.


써보고 싶어지는 글들을 쓰려는 시도 만이라도 계속할 수 있다면

쓰는 맛도 모르겠고 쓰고 나면 여전히 쓰지만,

나에게도 누군가에게도

은근한 단만이라도 느껴지는 정도만 된다면

이 또한 저에겐 작은 기적일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공간 속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속에서

수없이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겠죠.

어제 없던 이야기들이

나름의 애씀으로 작품이 되어 피어나고 있으니까요.


저 역시 오늘 '가볍고 하찮지만 소중한 기적' 하나가 추가되었습니다.

약 3개월 전, 아니 그 보다 오래전 그저 해보고만 싶었던

나의 글을 오늘 이렇게 또, 쓰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 한 꼭지,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 한 꼭지,

커피를 마시고 귤을 까먹으면서 한 꼭지씩 쓰고 있는 지금.

이렇게 크리스마스의 소소한 기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흠, 늦은 밤, 붕어빵의 달콤함이 지금의 즐거움을 빨리 접으라고 합니다.

뇸뇸 먹으며 홀짝홀짝 마시며 이미 이루어진 기적을

그 속에 담기 이야기들을 읽어야겠습니다.


아실까요? 이글이 읽히는 것 자체가 저에겐 기적입니다.

고맙습니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직업이 아닌 희망을 얘기하는 소년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의 도입부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도 장래의 직업을 적어오라는 숙제였겠죠.

저 학생은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적어 제출했나 봅니다.

선생님이 한마디 하죠.

'장래에 무슨 직업을 희망하냐가 질문이야.

야구선수라면 모를까 직업을 '이치로'라고 하진 않잖아'


저 소년의 답은 이거였을 것 같아요.

'꿈을 이룬 사람'이 되고 싶은 거라고.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기적은

꿈을 꾸는 사람에게만 생기겠죠.

놓지 말자고요. 파이팅!




info.

영화_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년

좋아하는 문장_ "은근한 단맛이 중독성이 있다고 할까"

결말_ 아이들의 기적을 위한 여행은 많은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epil.

24일 저녁부터 쓰던 글을 25일 새벽에 마무리하고

쥐구멍을 파느냐 발행하지 못했습니다.

막상 발행하려고 하니 너무 창피하고 뻔뻔스러운 거 있죠?

마늘하고 쑥도 열심히 먹어 볼 테니

성탄절 특사 정도로 봐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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