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하루가 존재했음을

그리고 그 하루가 나에게만 머물지 않았음을.

by 글짓는 날때

몇 번의 새로고침에도 새로운 글은 올라오지 않는다.

다시 글 목록을 천천히 올려본다.


아직 늦지 않았다.

찾아야 한다.

내가 놓친 글이 있을 것이다.

다른 하루가 시작되기 전 읽어야만 하는


'나에게도 하루가 존재했답니다'

라고 말하는 글을.


읽기 전엔 모르는 그의 하루를 읽어야 한다.

그리고 답해야 한다.


'당신에게 존재했던 하루를 확인했습니다'




'어차피 신포도였을 거야'라고 말하며 도도한 척 꼬리를 마는

미련한 여우짓은 이제 그만하기로 한다.

자줏빛 포도를 올려다본다.


아직 늦지 않았다.

뛰어 보기로 한다.

포도를 향해 종일 뛰어 보기로 한다.

그래서 오늘이 가기 전 이렇게 쓰고 싶다.


'나에게도 하루가 존재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글을.


나의 머리가 향한 건 포도였지만 마음이 향한 곳은 하늘이었다.

그래서 덧붙이고 싶다.


'태양을 가득 쪼인 포도의 맛은 달콤했습니다'




달콤했을 그의 하루를 놓칠 뻔했다.

그는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기로 작정했고

아마도 무척 시큼했을지도 모를 포도에 닿았으며

기꺼이 달콤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존재했을 그 하루의 끝에 나의 하루가 닿아 다행이다.

이제 자기로 한다. 하루를 보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 고침을 한 번만 더 해보기로 한다.

누군가의 하루가 부정당하지 않게 하는 것.

나의 하루는 그렇게 존재한다.



- 짧게 '지어낸' 이야기 [ 당신에게 존재한 하루를 확인했습니다 ]




어느 날인가 지인이 묻더군요.

구독하는 작가님의 새 글들을 다 읽냐고.

가능한 알림이 울리면 바로바로 읽으려고 노력하고

조금 바쁠 때는 몰아서 읽기도 하지만

빼먹진 않는다고 얘기했죠.


다시 묻더군요.

"그렇게 까지 읽는 이유가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고, 새 글 목록에 혼자 반짝이고 있는 글들을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읽은 글들은 색이 조금 바래거든요.

그래서 가끔 목록을 내리다 보면 혼자 반짝이는 글이 있어요.

내가 놓친 글이에요.

문 앞에 떨어진 편지 같아서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요"


"읽는다고 해서 그분들이 알아요?"


"조금 부끄럽지만 어떻게든 읽은 티를 내려고 해요.

일일이 답장은 못해도 댓글을 남길 때도 있고

얇은 가름끈이라도 걸어두는 거죠.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을 못 받으면 서운하잖아요.

뭐랄까. 하루 중 내가 가장 다정해지는 시간?"


그리고.

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를 다시 읽었습니다.

조금 쓸쓸하고 제법 유쾌하며 무척이나 다정한 이야기.


내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하루가 존재했다는 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내게 편지는 일기 같은 것이다.
다만 그 하루가 내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부쳐진다는 것뿐이다.
일기는 독점되는 것이지만 편지는 공유되는 것이다.
p.20
오늘, 아무도 나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p.39
내가 보낸 편지는 모두 잘 도착했고, 그들은 편지 쓰기를 귀찮아하지도 않았고, 글을 모르지도 않았고, 내 편지가 분실되지도 않았으며, 안 읽은 것도 아니었고, 죽지도 않았으며, 내 편지가 맘에 안 든 것도 아니었다.
내가 편지를 보냈던 사람들 모두, 살아서 내게 답장을 보내왔다.
아무도 나에게 편지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여행 중에도 그리고 여행 후에도 나는 결코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결국 나는 눈물을 쏟고 만다.
p.275
더불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이 밤이 더없이 숭고하다는 말도...
end.


책을 덮고 위의 짧은 글을 지었습니다.

저에게 다정한 시간을 갖게 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info.

소설_「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_장은진作_2009 / 문학동네

그리고 기억나는 문장.

"그러니까 이 여행은 내가 죽지 않고 살아가는 한 방법이고,

말을 통해 점점 강해지기 위한 강구책 중의 하나이며,

세상과 부딪쳐 보기 위한 하나의 실험이다."


epil.

음, 들을 일은 없겠지만

'글이 처음보다 좋아진 것 같아요'라고 하면 이렇게 답할 것 같아요.

'댓글과 답글을 좀 열심히 쓰는 편입니다'


notice.

이 글을 연재글로 전환하고자 합니다.

혼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