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위한 기록, 그 뒤에 오는 기쁜 후회

그래서 가끔 당신의 마음을 빌립니다

by 글짓는 날때
"내 댓글에 Traum님이 답글을 남겼습니다"


반가움 보단 두려움이 한발 앞선다.

'난 도대체 어떤 댓글을 남긴걸까?'


서랍속 깊은 곳에 숨겨둔 나만의 비밀 노트를 꺼내 본다.

"문장에 답하다"라는 이름을 지은 나만의 댓글 노트.

그 속엔 나의 기억을 위한 기록들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대단한 글들이 모여있는 건 아니다.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의 댓글 역시 그다지 훌륭하진 알을 것이다.

대부분이 나름 솔직하지만 어줍잖은 짧은 감상문이고

간혹 몇번을 다시 읽게 하고 배시시 웃게 하는, 나름 애정이 가는

댓글들이 몇편(?) 있는 정도다.


그날의 댓글을 찾아 읽어 본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긴 하나
초록이들은 봄이 왔다고 고개를 내밉니다.

몽우리는 한껏 부풀었으나
꽃잎은 조금 급하다고 말하는 중입니다.

종일 맑다 바람이 불긴 하나
봄기운에 한풀 풀어집니다.

사람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습니다.
봄이 오려나 봅니다.


Traum 작가님의 글,「봄바람, 봄향기에 남긴 나의 댓글이다.


모든 읽는 사람들의 흔한 경험이겠지만

간혹 어떤 이유에선지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글들이 있다.

작가님은 맑고 화창한 이른 봄 날, 떠나온 곳에 대한 안부를 물으셨고

유난히 맑고 햇살 가득한 이른 봄 날, 난 답장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이 움직였고 손은 마음을 따라갔다.


그리고 이어진 작가님의 친절하신 답글.

댓글이 마치 나의 글이 되는 순간처럼 느겼졌다.

마음을 따라가는 손으로 쓴 글은 그렇게도 느껴진다.


명백히 말하자면 내가 쓴 댓글이지만 나의 글은 아니다.

Traum 작가님의 글이 일으킨 물결인 샘이다.

파장이 생긴건 나의 마음이지만 파장을 일으킨 건

작가님의 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님은 나의 마음에 글을 쓰신 건지도 모른다.


이제야 비로소 조금은 알것 같다.

쓰신 곳은 여백이었지만 쓰여진 곳은 나의 마음이었다.

작가는 읽는 사람의 마음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럼 지금 까지 난...?

아! 쓰지 말걸 그랬다...


- 짧게 '지어낸'이야기 [ 그래서 가끔 당신의 마음을 빌립니다 ]




저의 서랍 깊숙한 곳에 "문장에 답하다"라는 이름의

댓글 노트가 있습니다.

어느날 아침 등골이 오싹해 지는 경험을 하고 급하게 만들었으나

무엇보다 열심히 작성하고 있는 소중한 기록지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새벽에 쓰는 글만큼 위험한게 새벽에 쓰는 댓글입니다.

어느 작가님의 글을 읽고 마음이 크게 울려 댓글을 썼습니다.

늦은 밤이었으니 아마 술도 마셨을 겁니다.

(정신 나간거죠.)


그리고 아침 '그럴리가? 설마 아니지. 야이 미친놈아!!!!'

모든건 늦었습니다.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다행히 친절하셨고 이해해 주셨고 답글도 남겨 주셨습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적도 없는데 이렇게 큰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리고 장만한 나의 댓글 노트.

마음따라 움직이려는 손을 진정 시키고

페이지를 살짝 접어 도그지어를 해둡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펼쳐들고 댓글 노트를 폅니다.

마음은 다시 움직이고 손이 뒤를 따라 갑니다.

여전히 이른 새벽 가끔 이불을 걷어차긴 하지만 그래도 안심이 됩니다.

2025년10월12일 부터 지금까지 작성중인 나의 글쓰기 보물1호.


순간 순간 떠오르는 기억과 생각, 울리는 마음을 기록합니다.

나의 노트에도 어느 작가님의 책 어느 페이지의 여백에도.

때론 나의 마음이 쓰여지고 때론 작가님의 마음이 쓰여지는

신기하고 재밌는 노트가 되어줍니다.


글을 쓰기전 항상 펼쳐놓는 나의 댓글 노트.

쓰기 위한 여백 반틈과 이미 가득 쓰여진 나머지 반틈.

마음에 쓰여진 글들을 비로소 읽어 다시 또 쓸 수 있게 만들어준

가장 친절하고 소중하고 감사한 나의 글쓰기 선생님.


덕분일까요.

잘은 아니지만 쓸 줄 아는 사람은 된것 같습니다.

아,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은 옮겨 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글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

은인같은 책.

김민철 작가님의 에세이 [모든 요일의 기록] 을 다시 읽어봅니다.

저의 댓글 노트가 글쓰기 선생님이라면

[모든 요일의 기록]은 바이블입니다.

뭐가 그렇게 좋냐고요?

음...이렇게 한번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유쾌하고 담백하며 달콤하나 질리지 않아 좋아합니다.

아! 저에겐 그렇습니다.

[김민철 작가님을 그냥 좋아합니다.]


내 글씨를 발견한다. 내가 해둔 체크표도 발견한다. 왜 그곳에 그런 메모를 해놓은 건지, 그 구절의 어떤 부분이 좋았길채 체크를 해놓은 건지 쉽사리 기억나지 않는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거기에서 발견한다. 그때의 내가 궁금해서 다시 그 책을 읽는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책을 발견한다.
그렇게 영원히 새로운 책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p.33
미혼 카피라이터는 깐깐하게 분유를 고르는 엄마가 되어야 하고, 20대 카피라이터가 60대 노모가 되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쓸 수 있어야 한다.
p.49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릴 거야"
(중략)
"그래도 다른 곳도 아닌, 여기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림 그리려고"
"그게 전부?"
"응, 이상하지? 그림도 못그리는 주제에. 너무 못 그려서 초급반만 세 번이나 들었아. 그래도 세 번이나 들었으니까 나는 초급반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
p.186
그래서 오늘도 나는 뭔가를 한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한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리고 행복해 한다.
비옥한 토양의 주인이 되어 비옥한 웃음을 짓는다. 나는 알고 있다. 그 땅엔 이미 '나'라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그 나무가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 이상을 바란 적은 없다. 그것만으로 차고 넘치다.
p.201
"응, 오스카 와일드는 쉽잖아?"
"암, 그럼요. 오스카 와일드는 쉽죠" 라고 대답해 드렸다.
그래서 오스카 와일드처럼 써갔느냐고?
내 마음대로 써갔다.
분명, 오스카 와일드도 자기 마음대로 썼을 테니까.
p.251


댓글을 쓰고 기록하기로 마음먹게 된 이유는

33페이지에 담긴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작가는 읽는 사람의 마음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짧은 글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당신이 너무 고맙습니다.




info.

에세이_「모든 요일의 기록」_김민철 作 / 북라이프

그리고 기억나는 문장.

"우리는 바다에서 조개를 줍는 소년일 뿐..."


epil.1

Traum작가님의 글입니다.

어느 부분에서 저의 마음은 그렇게 움직였을까요.


epil.2

어느 작가님의 시를 읽고 반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댓글을 남겼죠.

"이 고운 글을 예쁜 서체로 옮겨 적어 책갈피로 써도 될까요?"

그렇게 시숨 작가님의 시_[책갈피] 는 책속의 여정을 함께할 다정한 책갈피가 되었답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03_책갈피로만든책갈피.png


그리고 저의 소중한 댓글 노트 살짝만 보여드릴까요?

04_댓글노트.png


이전 02화상상력 한 큰 술, 감수성 한 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