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을 애써 치장하고자 합니다.

당신에게 그러고 싶습니다.

by 글짓는 날때

젠장.

이렇게 시작해 보기로 한다. 아니 무조건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선언적 명령을 실행하기로 한다. 댓글 속 그분이 웃으실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그럼 된 거다.

자! 이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시작하자.




젠장,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는 걸!

김중혁 작가님의 문장 하나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신경이 쓰인다.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글쓰기 속에서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이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저 껄끄럽게 느껴지던 작은 가시 하나가 입천장에 박힌 것처럼 불편하고 아프다. 마른밥을 삼킨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대로 두었다간 가시가 아니고 바늘이 되고 송곳이 되어 마음을 후비고 다닐 기세다. 생각을 해보자. 아니 질문을 몇 가지 던져보자.


과연 나는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글쓰기 속에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 아마도 그럴 것이다.
끝으로 글쓰기 속에서의 나는 여전히 나인가?
: 아마도 나일 것이다.
근거는 무엇인가.
: 내가 쓴 모든 글에는 오롯이 '나'만 있기 때문이다.
: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노력이나 인지도 없이 단지 쓰는 행위로 더 '나은 사람'이 될리는 없다. 나의 글 어디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내용 또한 없다. 그 흔한 반성도 계획도 각오도 없다. 단지 나의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할 뿐이다.
"이렇게 살았으므로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 같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긴 했지만 이렇게 살아온 사람의 글쓰기니 이럴 수밖에요. 대신 나름의 방법은 찾아가고 있습니다. 크고 거창한 계획은 없지만 글을 쓰는 동안은 나에게 친절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깊이 읽고 생각하고 답하고 표현하는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고 차려서 내어 놓음 까지가 요리의 과정이라면. 읽음과 느낌, 그리고 알게 됨과 쓰게 됨까지가 글 쓰기의 모든 과정일 것이다. 그 모든 과정 동안은 나에게 친절하도록 하자. 그러면 그 모든 글을 쓰는 시간은 친절함과 다정함의 시간이 될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서 더 나은 사람은 되길 바라지 말고 글쓰기 속에서라도 조금은 나은 사람이면 그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라면 하지도 않을 걱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좋은 사람인 거잖아요!!"

가시인 줄 알았는데 섬유질이었나 보다. 잘근잘근 씹어 삼켜도 될 것 같다.


나, 치고는 제법 그럴 싸한 답변을 한 것 같다. 물론 눈꼴시어 못 봐줄 수도 있겠지만 나의 저 다짐이 썩 마음에 든다. "글을 쓰는 동안은 나에게 친절하고 싶다" 애써 다정을 치장하지도 친절을 과장하지도 않는 아이처럼, 나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면 된다.

그럴 수 있다면 그 작은 친절과 다정함이 아주 조금은 내가 쓰는 글에 담겨 위로가 되고 혹은 미소가 되고 때론 응원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동안 만이라도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를 갖고 싶다.


그런 태도라면,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나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흠. 조금 힘들려나.

젠장.


- 짧게 '지어낸' 이야기 [조금은 더 다정하고 싶다. 아이처럼 근사하게]




4번째 연재글에 담긴 김중혁 작가님의 문장이 가시 같았습니다.

"나는 어쩌면 글쓰기 속에서만 더 나은 사람인척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단어 하나가 떠오르더군요. 남겨진 답글 속에 간혹 보이던 "다정함"이라는 단어.

어쩌면. 나도 모르게 다정함을 치장하거나 친절함을 과장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많이 뻔뻔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답을 해버리고 말았죠.


일상적 다정함이나 친절함 보단 조금 과장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요. 글 쓰는 사람의 다정함은 최대한 다정한 문장으로 표현되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단, 거짓이 담겨있지 않은 마음이어야 하겠지만요.

"가끔은 아이처럼 다정하고 아이처럼 친절하자. 그리고 아이처럼 기뻐하고 아이처럼 감사하자. 그렇게, 친절을 사양하지 않고 다정을 미루지 않는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 이곳에 있자"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을 뿐입니다. 나의 글도 당신의 글에 담는 나의 마음도.


조금 유치해도, 그 마음이 뻔히 보여도, 그래도 내 마음이 기쁘면 다른 사람도 기쁘겠지 생각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조금은 그렇게 편하게 글을 써도 좋지 않을까 하는 어른의 생각? 혹은, 큰 바람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만 그럴듯한 다짐이어도 정말 그럤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다정함을 치장하고 싶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실수 안 하기'에 목숨 거는 목적 지향적 인간이 되어 버린 걸까. 어른이 실수하지 어린이는 실수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독창적인 일은 실수뿐이다_빌리조엘"
p.36
글 속에 나를 최대한 수수하게 담아내는 것. 화장을 지우고 아이 얼굴처럼 되는 것. 요즘 원하는 건 이런 거다. 솔직하고 본능적으로, 자의식도 뽐냄도 없이 내가 느끼고 생각한 걸 표현하는 어린이를 닮고 싶다. 내 글이 어떤 쓸모를 가질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를 너무 고민하고 싶지 않다. 이 글이 어떤 비난을 받지는 않을지 걱정하기보단, 이 글이 너무 전형적이거나 관습에 얽매여 있지 않은가를 염려하고 싶다. 검열 없이 무언가를 표현하는 용기를 갖기를.
p.64
어린이는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편안하게 받을 줄 안다. 자신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이걸 받으면 갚아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 당연함이 어린이로 하여금 무언가를 계속 받게 하고 그들의 삶을 마르지 않게 한다. 누군가가 선물을 주면, "아닙니다. 넣어두세요"하고 거절하는 어린이를 본 적 있는가? 누군가 칭찬을 하면 "아이고~ 과찬이십니다"하며 겸손을 연기하는 아이는 없다.
p.126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요즘 난 조금, 즐겁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던데 누가 나 좀 부러워해주면 좋겠다. 이런 기분, 태어나서 이제야 처음 느꼈는데... 나도 한 번쯤 우쭐해지고 싶다.
p165
모자란 것 그 자체를 완성으로 바라본다는 건 '미완'을 받아들인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 성숙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를 채워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이상향을 향해서 나아가지 않더라도 어쩌면 나는 내가 선 이 자리에서도 완전해질 수 있는 것 아닐는지.
p.197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 잊은 건 아닌가요?"라고 묻는 것 같은 책이었답니다.

"꼭 그렇게 쓰지 않아도 돼요. 이렇게 쓰는 법도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도 좋았던...




info.

에세이_「쩨쩨한 어른이 될 바에는 아이라는 근사한 태도로」_손화신作 / 웨일북

그리고 기억나는 문장_

수줍음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사회적으로 수줍음은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장애 요소로 작용해서 고쳐야 할 약점으로 인식되지만, 나는 이 장애 요소가 어쩐지 사랑스럽다.


tmi,

책 속 작가님의 이야기도 좋지만 이야기 속에 담긴 꽤나 좋은 격언과 명언들을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필요해서 담긴 문장들이긴 하나 독자를 위해 한 문장 한 문장 찾아 옮기신 작가님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아! 이 책은 제6회 브런치북 대상 수장작입니다.


epil.

친절하신 작가님의 다정한 댓글 덕분입니다.

이제 '젠장'이란 단어는 꽤나 다정하게 들릴 것 같습니다.

낭패의 의미보단 낭패를 부정하는 다짐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아이고 작가님, 그렇다고 글을 이렇게..."라며 타박하실지 모르겠지만

너무도 즐거운 시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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