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전파를 부정한 헤세의 베아트리체
시간이 가면서 내가 좋은 아들, 쓸모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나의 본성이 길들로 밀려갈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부모님의 그늘, 정신의 그늘 속에서 행복해지려 한 나의 마지막 시도는 오래 걸렸고, 가끔 성공하는 듯도 했지만 결국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p92)
사람들이 나를 별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도 느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막스데미안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느꼈다. (p93)
하숙집에서 나는 처음에는 사랑받지도 주목받지도 못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나를 놀리다가 그다음에는 나로부터 물러났으며 나에게서 음침하고 패기 없는 살마, 불쾌한 괴짜를 보았다. 그런 역할을 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 나는 그 역을 더 과장했으며, 고독 속에 칩거했다.
학교에서는 새로 배우는 것이 없이 집에서 쌓은 지식만 소모해 갔다. (p93)
마침내 누군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게 내가 무언가를 주었던 것이다. 그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를 굉장한 녀석이라 불렀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고 뭔가를 전하고 싶은 고이고 고인 욕구를 실컷 쏟아 내는 기쁨에, 인정받는다는 기쁨에 , 연장자에게 다소 인정받는다는 기쁨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다 나를 천재적인 멋들어진 녀석이라고 불렀을 때는 그 말이 감미로운 독주처럼 영혼 속으로 번졌다. 세계가 새로운 색깔로 불탔다. 생각들이 수백 개의 철철 솟는 샘에서 나와 흘러갔다. 속에서 정기와 주정이 뜨거움이 활활 타올랐다. (p96)
나는 고통스럽게 깨어났다. 술이 깨자 멍한 고통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낮에 입었던 셔츠를 아직도 입고 있고, 내 옷가지며 신발은 바닥에 널려 있고 담배 냄새와 토사물 냄새가 났다. 구토와 메스꺼움과 심한 갈증 사이에서 내가 오래 직시하지 않았던 영상 하나가 떠 올랐다. 고향과 집, 아버지, 어머니, 누이들과 정원이 보였다. 조용하고 아늑한 내 침실이 보였다. (p98)
『데미안』, 라파엘 전파, 그리고 자아의 초상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장면은 흔히 그의 첫사랑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사랑은 어떤 여성에게 향한 감정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내밀한 방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싱클레어는 사랑에 빠졌다고 느끼지만, 그가 사랑한 것은 결코 단순한 ‘소녀’가 아니었다.
술집을 나와 비틀거리며 걷던 싱클레어는 길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고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p.100).
그는 이미 방탕과 냉소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동시에 그 세계에 완전히 소속되지 못한 상태다. 아이들은 그가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순수함의 잔상이며, 그 잔상 앞에서 그는 감정적으로 무너진다. 바로 그 직후, 그는 공원에서 한 소녀를 본다.
“그 봄날 공원에서 나의 시선을 강하게 끄는 소녀를 만났다.
영리한 소년의 얼굴… 내가 지독하게 좋아하던 오만과 소년다움의 흔적이 얼굴에 어려 있었다.” (p.106)
싱클레어는 이 소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는 단테의 『신곡』을 읽지 않았지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과 이미지는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가 떠올린 베아트리체는 한 그림에서 본 이미지였다.
“ 어느 영국 그림에서 봤는데, 그 복제품을 내가 간직하고 있었다. 그 그림은 영국 라파엘 전파의 소녀상으로, 팔다리가 몹시 길고 날씬하며 얼굴도 작고 길었으며 두 손과 표정은 영혼이 깃든 분위기로 표현되었다. 내가 사랑한 날씬한 자태와 소년다움을 보여주고 영혼이 깃든 분위기를 얼굴에 조금 띠고 있었음에도 나의 아름다운 젊은 소녀는 그 소녀상과 똑같지는 않았다. ” (p.106)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등장한 미술 운동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등을 중심으로 한 이 그룹은, 왕립 예술 아카데미가 강조하던 기계적 기법과 고전주의적 이상미를 거부했다. 이들은 라파엘로 이후의 회화가 지나치게 형식화되었다고 보았고, 라파엘 이전의 중세 미술에서 진실한 감정, 영적 깊이,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을 되찾고자 했다.
라파엘 전파의 소녀상은 대체로 비현실적일 만큼 이상화된 얼굴을 지닌다. 길고 날씬한 팔다리, 창백하면서도 빛나는 피부, 깊고 슬픈 눈빛, 그리고 현실과는 분리된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 이 소녀들은 실제 여성이라기보다 영혼의 형상, 혹은 숭배의 대상에 가깝다.
로세티의 〈레이디 릴리스〉, 〈프로세르피나〉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초월해 있다.
싱클레어가 베아트리체에게서 느낀 감정은, 바로 이 라파엘 전파적 이상미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비현실적인 존재로서의 베아트리체.
그는 그녀를 ‘보고’ 사랑한다. 말도, 관계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제단 위에 올려놓고 숭배한다.
베아트리체를 만난 이후, 싱클레어의 태도는 급격히 변한다.
캄캄한 것은 아무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추한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모든 것 대신 베아트리체 영상으로 나의 제단을 세웠다. "나 자신을 그녀에게 바침으로써 나 자신을 정신과 신들에게 봉헌했다. 내가 어두운 힘들에서 뺏어 낸 삶의 환한 힘들에게 제물로 바쳤다. 나의 목표는 쾌락이 아니라 정결 함이었다. 행복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정신성이었다. 이 베아트리체 예배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어제만 해도 조숙한 냉소주의자였던 내가 지금은 성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사원의 하인이었다.” (p.107)
그는 어둠과 악을 떨쳐내고, 오직 빛과 정결함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 쾌락이 아니라 순수, 행복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정신성. 그는 자신을 베아트리체에게 바침으로써, 동시에 자신을 ‘신들과 정신’에게 봉헌한다고 느낀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문장이 있다.
“"나는 부서진 삶의 한 시기의 폐허들로부터 자신을 위해 하나의 '환한 세계'를 지으려 더없이 열렬하게 다시 노력했다. 나는 다시 내 속의 어둠과 악을 떨치고 완전히 빛 속에, 신들 앞에 무릎 꿇고 그대로 머물려는 단 하나의 욕구 속에서 살았다. 하여튼 지금의 이 '환한 세계'는 어느 정도 나 자신이 창조한 것이었다."”
베아트리체의 세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세계다. 그는 어두운 세계를 통합하는 대신, 그것을 완전히 배제해 버린다. 이는 성숙이라기보다는, 청소년기의 또 다른 극단이다. 이전에는 어둠 속으로 도피했다면, 이제는 빛 속으로 도피한다.
이 환한 세계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싱클레어는 결국 베아트리체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그녀를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그는 깨닫는다. 그 얼굴은 베아트리체가 아니다. 데미안의 얼굴이다.
이 장면은 『데미안』 전체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다. 싱클레어가 사랑했다고 믿었던 베아트리체의 얼굴 속에는, 처음부터 데미안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 오만하고 영리하며 소년다운 그 매력의 근원은 데미안이었고, 더 깊이 들어가면 싱클레어 자신 안에 있던 가능성이었다.
베아트리체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아직 분리되지 않은 자아의 이상적 형상이었다.
이 베아트리체를 지나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아브락사스의 세계로 이동한다. 그는 문장을 삼키는 꿈을 꾸고, 문장이 안에서부터 자신을 파먹는 경험을 한다. 그는 더 이상 이미지를 숭배하지 않는다. 대신,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를 그린다.
"한 밤중이었다. 방 안으로 비가 들이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문을 닫으려고 일어났다.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언가 환한 것을 밟았다. 아침에 보니 그것은 내가 그린 그림이었다. 그림은 종이가 축축해진 채 방바닥에 놓여 있고 불룩하게 뒤틀려 있었다. 마르라고 그림을 압지 사이에 끼워 무거운 책 속에 펴 넣었다. 다음 날 다시 찾아보니 말라 있었다. 그러나 그림이 달라져 있었다. 붉은 입이 바래고 약간 좁아져 있었다. 이제 완전히 데미안의 입이었다." (p117~118)
"새 종이에 문장의 새를 그리기 시작했다. 새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지는 똑똑히 할 수 없었고 그 가운데 몇 가지는 내가 아는 바로는 가까이에서도 이제 잘 알아볼 수 없기도 했다. 그 새는 무언가의 위에 서 있거나 앉아 있었는데, 어쩌면 한 송이 꽃 아니면 광주리나 둥우리 혹은 화관 위였는지도 모른다.
새 머리는 내 도화지 위에서 황금빛이었다. 이제 그것은 날카롭고 대담한 지구 땅덩이 속에 박혀 있는 맹금이었다. 커다란 알에서부터 인 듯 땅덩이에서 나오려고 푸른 하늘 바탕 위에서 애쓰고 있었다."(p118)
이 그림은 설명 없이 데미안에게 보내진다.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제 싱클레어는 상징을 ‘숭배’ 하지 않고, 살아내기 시작한다.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사랑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끝내 살아보지 못한 시간,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가능성을 향해 있었다.
그녀는 손에 닿는 존재가 아니었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되었고, 다가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베아트리체는 현실의 여인이 아니라
싱클레어 안에 잠들어 있던 빛,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자아의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랑은 순수했고,
그래서 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베아트리체가 사라졌을 때,
무언가를 잃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환상을 내려놓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타인을 숭배하는 사랑이 끝나고
자신의 삶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베아트리체는 구원이 아니었다.
그녀는 떠나기 위해 나타난 존재였고,
그 사랑이 끝났을 때
싱클레어는 비로소 혼자 서는 법을 배운다.
성장은 언제나,
아름다운 환상이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