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의 형상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오려고 하는 것은 갑자기 와 있을 겁니다."

by 설기

우리 라틴어 학교에 새로 온 학생이 있었다.

이름은 막스 데미안. 그는 또래 소년들 사이에서 유독 낯설고 성숙해 보였다. 놀이에도, 싸움에도 끼지 않았지만, 선생님들에게조차 단호하게 맞서는 자신감이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네 번의 결정적인 순간에 ‘본다’.

처음은 눈을 감고 떠올린 이미지였다. 어른의 얼굴, 연구가나 예술가 같은 얼굴. 그런데 그 안에 남자뿐 아니라 여자의 기운, 짐승·나무·별 같은 무시간적인 존재가 스며들어 있었다.

두 번째는 눈을 뜨고도 아무것도 보지 않는 듯한, 돌처럼 고요하고 태고처럼 늙은 얼굴. 죽었는데도 전대미문의 생명으로 가득 찬 모습.

세 번째는 그림 속 데미안. 숱 많은 갈색 머리카락, 절반쯤 여자 같은 입술, 초록빛 굳은 두 눈—한쪽 눈이 다른 쪽보다 눈에 띄게 높이 달려 있었다.


마지막은 스케치가 완성된 순간. 데미안이면서

나 자신이고, 여자이고, 남자이고, 소녀이고, 아이이고 동물이었다. 얼룩처럼 흐릿해졌다가 다시 뚜렷해지는 얼굴.

싱클레어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이 형상은 단일한 '나'가 아니라, 선과 악,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시간 속과 시간을 초월한 것의 공존하는 통합적 자아였다.

피카소의 기타를 든 남자


이 묘사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데미안을 어떻게 형태로 상상할 수 있었을까?


헤세가 인도 철학에 능통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데미안은 아트만의 상징적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도경전에서 아트만은 형상이 없고. 속성이 없고, 묘사할 수 없는 존재라고 했었다.

아브라삭스는 영지주의 전통에서부터 수탉 머리 + 인간 몸 + 뱀 다리의 구체적이고 기괴한 합성 형상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데미안에 대한 묘사는 놀라울 만큼 구체적이었다.




헤세의 그림

헤세가 그린 꽃과 나무를 동그라미와 네모 같은 기하학적 형태로 단순화한 그림들, 집과 풍경들을 보았다.

피카소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동그라미. 네모로 표현한 대상들, 좌우 눈의 위치가 다른 얼굴들이 그려진 작품들. 큐비즘 회화 속 인물들은 하나의 시점으로 고정되지 않은 존재처럼 보인다


데미안의 얼굴도 그렇게 묘사되어 있었다.

AI로 만든 데미안과 피카소의 작품




피카소의 작품

큐비즘은 1907~1914년, 1차 세계대전 직전 파리에서 태어났다. 산업화와 기술 혁신으로 시간·공간 감각이 무너지고, 민족주의·군비 경쟁으로 전통 가치가 흔들리던 시대. 피카소와 브라크는 대상을 해체하고 기하학적 면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하나의 진실한 모습이란 없다”는 시대의 충격을 시각화했다.


헤세의 그림

헤세가 《데미안》을 쓸 무렵, 그는 정신과 치료와 미술치료를 했었고 큐비즘은 이미 10년 가까이 유럽 미술계를 뒤흔든 거대한 운동이었기 때문에, 절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전쟁의 상처와 개인적 위기 속에서 내면의 다층성을 다양한 분신들로 표현했는데, 데미안의 얼굴 묘사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큐비즘으로 그려본 인물의 초상


그 시대는 공간의 개념과 감각이 달라지고 세상이 혼란스럽고 불안이 고조되고 긴장되었다.
예술인은 작품으로 그 시대를 표현했고,

헤세는 그 감각을 글로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가가 할 수 있는 장 대단한 일을 했다.




"오려고 하는 것은 갑자기 와 있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겪게 되겠지요."p206


지금 우리는 또 다른 혼란의 한가운데 서 있다. Al와 끝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아는 더욱 분열되고 중첩된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를 다시 한번 낯선 전환점으로 밀어 넣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익숙해지도록 기다려주지 않고 점점 변화에 가속을 내고 있다.


과연 이 시대에는 어떤 예술과 어떤 글들이 우리의 기둥이 되어줄 수 있을까?

다시, 고전의 힘에 의존하게 된다.




"오려고 하는 것은 갑자기 와 있을 겁니다"


Gotan Project - Época(시대)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긴장감과 예감.

그 전환점에서 느껴지는 황홀하면서 쓸쓸함을

전통 탱고의 멜랑콜릭 한 반도네온연주와

전자비트 샘플링이 완벽하게 중첩된 곡!

음악으로 느껴보는 큐비즘이다.


탱고의 큐비즘




피카소의 <나체의 여인, 사랑하는 에바>

싱클레어의 성숙한 전체 자아의 상징이자 아브라삭스의 구체적인 모습도 '에바'였다.


우연의 일치가 주는 소소한 재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