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개인적 감상
시는 순간을 지배하는 감정이며,
어떤 상태에 도달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 나이였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파블로 네루다의 이 고백은
시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쓰지 못하는 이유를
‘아직 시가 나를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
이라는 편리한 핑계를 얻을 수 있었다.
시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지인의 조언이
너무도 무서웠었다.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란 방어적인
생각과 볼 게 없다는 합리화는 글
쓰는 걸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 책은 내가 왜 문학적으로 글을 쓰지
못했는지를 알려주고 말았다.”
《스토너》는
문학이 한 인간을 찾아온 이야기다.
농부의 아들이었던 윌리엄 스토너에게
문학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도착한
사건에 가까웠다.
그는 문학을 선택했다기보다 초대받은
사람처럼 그 세계로 끌려 들어간다.
문학은 그렇게, 신내림처럼 한 사람을
찾아온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
스토너는 우정과 사랑을 원했다.
그 속의 열정과 생의 충만함을 갈망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보다 더 지독한 것에 잠식된다.
문학이었다.
“자신을 압축해서 집어삼킨 그 환상
속에서 그는 도망칠 길도,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그의 앞길을 거닐었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강렬한 어둠 속에서
빙빙 돌았다. 헬레네와 파리스가 어둠
속에서 솟아올랐다.” (p.26)
스토너 세 쌍의 신화적 여인
그의 앞에 등장한 세 커플
이들은 사랑의 형상이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동시에 스토너의 미래에 대한 암시다.
이디스의 부재로
고통의 원천이 사라졌을 때,
그는 문학을 사랑했던 본질적인 이유를
다시 회복한다.
“문학, 언어, 정밀하고도 기묘한 조합 속에서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음과 정신의 신비.” (p.159)
그는 마침내 강의에 몰입할 수 있었고
진짜 교육자가 된다.
마주하고 견뎌야 할 고통이 있을 때 문학은 가장 먼저 밀려났다. 전쟁 중의 미국 사회에서 인문학이 불필요한 학문이 되었던 것처럼.
스토너의 삶은 사랑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한 인간의 이야기이자, 묵묵하고 꾸준하게 존재의 의미를 지켜야 했던 인문학 그 자체의 형상이기도 했다.
죽음을 앞둔 순간, 스토너는 다시 세 쌍의 연인을 바라본다. 이번에는 신화 속 비극적 연인이 아니라 잔디밭을 가볍게 지나가는 젊은 학생들이다.
“그들은 거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듯 걸었고
그 자리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p.390)
영원한 비극에서 벗어난 사랑은 덧없지만 빛나는 순간의 기쁨으로, 그저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제 그의 여정은 끝났고, 그 연인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찾아갈지도 모른다.
죽음을 맞이하며 스토너는 문학의 끈을 놓아야 함을 안다. 운명처럼 함께했던 문학과도
이별해야 할 시간이 왔음을 받아들인다.
"주위가 부드러워지더니,
팔다리에 나른함이 조금씩 밀려들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각이 갑작스레
강렬하게 그를 덮쳤다. 그 힘이 느껴졌다.
그는 그 자신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 안의 힘이 느껴져서
그는 탁자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책 더미에서 손가락으로 책 한 권을 뽑아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 주기를 기다렸다." (p392)
스토너와 문학이 완전히 일체가 된
순간이자, 동시에 그 일체를 초월해
놓아주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문학을 '소유'하거나 '의지'
하는 게 아니라, 문학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자신의 일부를 영원히
맡기는 행위였다.
문학 속에 아주 작은 자신의 일부가 남아 있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어떤 시대 속에서도 문학의 영혼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문인들의 염원처럼.
마지막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그 눈은 여전히 맑고 날카롭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초연함을 머금고 있었다.
그의 운명의 구조를 만들었던 스토너의
눈. 스토너라는 인간의 본질,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듯한, 그러나 끝내 말하지
않는 고독한 관조자의 표상이었던 그의
회색눈은 죽음의 순간 무엇이 보고 싶었을까.
나는 스토너가 떠나는 장면을 여러 번 읽었다.
그리고 스토너와 함께 퀸의 Love of My Life를 반복해서 들었다.
Love of my Life-Queen
그냥 아름다운 멜로디 속으로 그를 보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