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와 세 쌍의 신화적 연인
[스토너]에서 문학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사건이며,
한 인간의 삶 속으로 침투해 그를 조용히 파괴하는 힘이다.
스토너의 눈앞을 스쳐간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헬레네와 파리스.
이 세 쌍의 연인은
그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게 되고,
어떤 방식으로 침묵 속에서 무너질지를 이미 예고하고 있다.
스토너 p26
"자신을 압축해서 집어삼킨 그 환상 속에서 그는 도망칠 길도,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그의 앞을 거닐었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강렬한 어둠 속에서 빙빙 돌았다. 헬레네와 총명한 파리스는 자신들의 행동이 낳은 결과 때문에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어둠 속에서 솟아올랐다."
이 세 커플은 서양 문학·신화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금지된 사랑과 비극적 결말'의 아이콘들이다.
결국 한인간이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공존 속에 살 수밖에 없게 된다는 복선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콘월의 기사 트리스탄은 숙부인 마르크 왕을 위해 아일랜드 공주 이졸데를 신부로 데려오라는 임무를 받는다.
트리스탄은 이전에 이졸데의 약혼자(또는 오빠) 모롤트를 죽인 원수였기 때문에, 이졸데는 그를 처음부터 증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게도...
이졸데의 어머니가 마르크 왕과 딸이 서로 사랑하게끔 준비한 사랑의 묘약을,
배 위에서 실수로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함께 마셔버린다.
결국 둘은 죽음을 맞이한다.
스토너에게 문학은 이졸데였다.
이 사랑처럼 피할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사건이었다.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존재.
스토너가 죽어서 손에서 책을 떨어뜨리는 순간까지 함께해야 했다.
이디스는 이졸데의 어머니로 나타났다.
이디스에게 가정을 벗어나기 위한 방식은 결혼이다.
그녀의 간절함이 묘약이 되었다.
이졸데의 어머니가 묘약을 따르는 행위처럼
이디스가 차를 따르는 모습은 둘을 운명으로 사로잡는 사건이 되어버린다
p68
"호리호리하고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 물결무늬가 있는 파란색 비단 드레스차림으로 서서 금테를 두른 도자기 잔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스토너는 그 젊은 여자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문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갸름하고 섬세한 얼굴로 주위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날씬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보이는 손가락이 능숙하게 잣주전자와 잔을 다뤘다. "
p140
"로맥스는 조용한 충동이 일었는지 살짝 몸을 수그리고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디스의 손이 그의 머리를 향해 가볍게 뻗어 올라갔고, 두 사람은 다들 지켜보는 가운데 잠시
그 자세를 유지했다.
스토너는 그렇게 정숙한 키스를 본 적이 없었다.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키스였다."
프란체카스였던 이디스와 잔치오토였던 로맥스의 만남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스토너 눈에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것이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이탈리아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비극적 연애 이야기 중 하나이다.
단테의 대작 《신곡》지옥 편 제5곡에 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13세기 이탈리아,
프란체스카는 라벤나 영주의 딸로,
정치적 동맹을 위해 리미니의 말라테스타 가문 장남 지안치 otto(잔치오토"절름발이"라는 별명)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지안치 otto는 외모가 매우 못생기고 불구였기 때문에,
결혼식을 대신해 그의 아름다운 동생 파올로 말라테스타(아름다운 파올로)가 대리 신랑으로 나타났다.
프란체스카는 파올로를 진짜 신랑으로 착각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 후에도 파올로와의 비밀 연애를 10년 가까이 이어간다.
둘은 함께 〈랑슬로와 귀네비어〉를 읽다가
그 책 속 사랑에 자신들을 겹쳐 보고,
키스를 나누는 순간 발각되어 살해된다.
《란슬롯 뒤 라크는 아서왕 전설에서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전사.
란슬롯은 아서왕의 아내이자 왕비 귀네비어와 비밀 연애를 한다.
이 불륜은 카멜롯의 몰락을 가져오는 결정적 원인 중 하나이다.》
죽은 후 두 연인은 지옥 제2원(색욕의 죄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떨어지는데,
거센 폭풍에 영원히 휘말리며 서로 떨어질 수 없이 붙어 떠돈다.
드리스콜의 논문을 봐주던 스토너.
서로의 지성에 끌린 두 사람이었다.
p265
"그렇게 그는 연애를 했다.
그는 캐서린 드리스콜에게 자신이 품고 있는 감정을 서서히 깨달았다. 어느새 그는 자기도 모르게 오후에 그녀의 집을 찾아갈 핑계를 찾고 있었다. "
그들은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환생과 같았다.
말이 필요 없어진 순간.
금지되어 있지만 사랑의 방향성과 언어가 완전히 일치했다.
죄의식 보다 사랑의 명료함이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비극으로 끝났다는 것도 같은 서사를 보여준다.
로맥스에게 이디스는 헬레네였으며,
스토너는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였다.
그 관계는 전쟁으로 폭발하지 않았고
스토너의 침묵으로 감내하는 비극이었다.
헬레네와 파리스
헬레네와 파리스(Helen and Paris)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아름다움 때문에 시작된 전쟁"의 주인공들이다.
세계 최고의 미녀 헬레네의 얼굴 하나 때문에
천 척의 배가 출항하고,
트로이 전쟁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쟁이 벌어졌다는
바로 그 이야기!
모든 건 황금 사과 한 알에서 시작된다.
결혼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황금 사과를 던지자,
헤라(결혼·권력), 아테나(지혜·전쟁), 아프로디테(사랑·미)가 다툰다.
제우스는 골치 아픈 심판을 피하려고 트로이 왕자 파리스(당시 양치기 생활 중)에게 맡긴다.
세 여신이 각각 뇌물을 제시한다.
헤라는 아시아 전역의 지배권
아테나는 전쟁에서의 무적 승리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헬레네와의 결혼.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하고
황금 사과를 준다.
이 선택이 바로 트로이 멸망의 씨앗이 된다.
이처럼 문학은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그 선택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궁전을 방문한다.
메넬라오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트로이 전쟁 10년 동안 파리스는 활 잘 쏘는
미남 왕자지만, 전쟁 영웅으로는 별로…
결국 필로크테테스의 독화살에 맞아 죽고, 헬레네는 파리스의 형 데이포보스와 재혼했다가
트로이 함락 후 메넬라오스에게 다시 돌아간다.
스토너의 삶은 신화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삶은 반복될 수 있다.
p390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리자 그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학생들 몇 명이 뒷마당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어딘가로 서둘러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모두 세 쌍이었다. 여학생들은 팔다리가 길었으며, 가벼운 여름옷을 입은 모습이 우아했다. 남학생들은 즐겁고 경이로운 표정으로 여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잔디밭에 거의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걸었다. 그래서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았다. "
이름 없는 학생들로 환원된 신들은
또 누굴 찾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