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중세 서정시에 고전 전통이 미친 영향'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을 만나
학문의 길로 들어선다.
그가 대학에 자리 잡았을 무렵,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한다.
친구인 핀치와 매스터스는 참전한다.
스토너는 대학에 남는다.
그는 참전하지 않았다는 선택에 대해
설명하지도, 변명하지도 않은 채
묵묵히 그 자리에 머문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전한 스토너의 친구, 매스터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는
'중세 서정시에 고전 전통이 미친 영향 '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다.
그는 여름에 고전 작품과 중세시대의 라틴어 시를 읽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죽음을 다룬 시들을 많이 읽었다.
"로마의 서정시인들이 죽음을 삶의 현실로 편안하고 우아하게 받아들인 것에 다시 의아함을 느꼈다. 그들은 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살면서 즐겼던 풍요로움에 바치는 공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반면 기독교 시대에 라틴 전통에 따라 시를 쓰던 후세의 시인들 중 일부의 작품에는 거의 감춰지지 않은 증오, 쓰라림, 공포가 드러나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들은 비록 모호한 약속이기는 하나 풍요롭고 황홀한 영생의 약속으로 그런 감정이 드러난 것을 보면 마치 죽음과 영생의 약속이 삶을 망가뜨리는 못된 장난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1. 로마인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
고대 그리스·로마 문학과 철학의 거장들은 각자 하데스를 매우 다른 방식으로 묘사하였다.
호메로스, 플라톤, 베르길리우스
1. 호메로스 (Homer, 기원전 8세기경) 서양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 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로, 구전 전통을 통해 전해진 서사시를 집대성.
하데스 묘사 (주로 《오디세이아》
제11권, '네키아' 또는 '죽은 자들의 책') 호메로스의 하데스는 어둡고 음침하며,
희미한 그림자 같은 세계이다.
대부분의 영혼(죽은 자들)은
아스포델 들판에서 무기력하게 떠돌며, 과거 기억이 서서히 사라지는 무감각한 상태로 존재한다.
영웅도 평범한 사람도 구분 없이 희미한 그림자가 되고, 생명력이 거의 없다.
희미한 무(無) 중심이 호메로스가 표현하는 하데스였다.
2. 플라톤 (Plato, 기원전 427~347년)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서양 철학의 기초를 세운 고대 그리스 철학자. 《국가(Republic)》, 《파이돈(Phaedo)》저자.
플라톤의 하데스는 철학적·윤리적 의미가 가장 강하다. 죽은 후 영혼은 심판을 받고, 선한 삶을 산 자는 더 높은 영역(순수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으로 간다
하데스는 진정한 실재(이데아)를 보는 철학적 공간으로 승화된다. 이는 후대 기독교 사후 세계(천국·지옥·심판) 개념에 큰 영향을 주었다.
3. 베르길리우스 (Virgil, 기원전 70~19년) 로마 제국의 대표 시인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활동.《아이네이스(Aeneid)》는 로마 건국 신화를 다룬 서사시로, 호메로스를 모방하면서도 로마적 이념을 더했다.
하데스 묘사 (《아이네이스》 제6권)
호메로스의 무기력한 그림자 세계와 달리, 베르길리우스는 로마인들에게 '영웅적 삶의 보상'과 '극악의 처벌'을 뚜렷하게 보여주려 했
다."
베르길리우스가 표현한 하데스
세 가지 주요 영역이 뚜렷해졌다.
하데스의 희미한 그림자 세계
엘리시움의 들판
타르타로스
인간 삶의 무상함과 운명을 반영하는 철학적·미학적 공간으로 그려진다.
1. 하데스의 희미한 그림자 세계
대부분의 평범한 영혼들이 머무는 곳으로, 하데스 전체를 상징하는 어둡고 음침한 영역이다.
영혼들은 몸이 없어진 그림자나 유령처럼 희미하게 존재한다.
아스포델 들판(Asphodel Meadows)은 회색빛 풀밭으로, 영혼들이 무기력하게 떠돌며 과거 기억이 서서히 사라지는 곳이다.
기쁨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무감각의 상태.
2. 엘리시움의 들판 (Elysian Fields)
영웅, 덕 있는 자, 신들에게 사랑받은 이들이 가는 낙원이다. 하데스 영역 안에 있지만, 별도의 빛나는 들판으로 묘사된다. 영원한 봄처럼 푸르고, 꽃이 피고, 맑은 바람이 부는 곳.
영혼들은 흰 옷을 입고, 음악과 춤, 축제를 즐기며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누린다.
3. 타르타로스 (Tartarus)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죄인과 반역자들이 영원한 고통을 받는 지옥이다.
지구 아래로 하늘 높이만큼 깊은 구덩이(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하늘에서 땅까지 떨어지는 데 9일 걸리는 깊이!).
타이탄들, 시시포스, 탄탈로스, 이크시온 등 극악한 자들이 처벌받는 곳.
타르타로스의 죄인들
타이탄(Titans) 신족과
시시포스(Sisyphus),
탄탈로스(Tantalus),
이크시온(Ixion) 같은 인물들.
1. 타이탄(Titans) — 거대한 옛 신족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자식들. 제우스 세대 이전에 세상을 지배한 '황금시대'의 신들.
죄: 제우스에 대한 반역(티타노마키아 전쟁 패배).
벌: 타르타로스에 영원히 감금. 크로노스 등은 쇠사슬에 묶여 불타는 폭풍과 어둠 속에 갇힘.
2. 시시포스(Sisyphus) — 교활한 코린토스 왕
죄: 죽음을 여러 번 속이고 신들을 기만(죽음의 신 타나토스 묶기, 하데스 속이기 등).
벌: 거대한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영원히 밀어 올리는 무한 반복 노동.
" 인간의 무의미한 노력과 운명의 무자비함을 상징."
3. 탄탈로스(Tantalus) — 리디아의 왕
죄: 신들을 시험·모독(아들 펠롭스를 썰어 대접하거나 암브로시아 훔침).
벌: 목마름과 굶주림의 영원한 고통. 물과
과일이 바로 앞에 있지만 영원히 닿지 못함.
"가까이 있는데 영원히 닿지 못하는" 절망.
4. 이크시온(Ixion) — 라피테스 족의 왕
죄: 헤라 유혹 시도(제우스가 구름으로 만든 가짜 헤라와 관계).
벌: 불타는 날개 달린 바퀴에 묶여 영원히 회전. 욕망과 배신의 대가.
로마 시대의 출생 시, 전쟁, 질병, 유아사망등으로 평균 기대수명이 낮은 편으로 죽음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살았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운명"이라는 인식이 깊이 뿌리내렸다.
탄탈로우스 같은 곳은 일반인이 가는 곳이 아니라서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우아하게 받아들이고, 그동안 누린 풍요로운 삶을 감사하며 공물처럼 바치는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
2. 기독교시대의 죽음
기독교에서 죽음은 풍요롭고 황홀한 영생을 담보로 한 책임이자 의무였다.
그 수많은 죽음은 신의 이름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당화되었다.
스토너의 시대,
20세기 미국은 이 기독교적 죽음관을 세속화한 채 그대로 물려받는다.
전쟁은 “조국을 위한 희생”이라는 명분아래 젊은 생명을 국가의 자원으로 소모한다.
그리고 그 자원이 어떤 목적을 위해 소모될 때,
그 죽음은 언제나 ‘의미 있는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매스터스의 죽음은 로마 시대의 담담한 체념이 아니라, 현대 국가가 포장한 “영광스러운 희생”이었다.
그리고 아처 슬론의 죽음.
아처 슬론의 죽음은
이 세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아처 슬론은 미국이 전쟁에 돌입한
날부터 그는 자꾸 안으로만 침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쟁의 끝이
다가오면서 그의 침잠이 더욱 깊어졌다.
"1924년, 초여름. 어느 금요일 오후에 아처 슬론이 연구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여러 학생들이 보았다.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 동이 튼 직후에 제시홀을 돌아다니며 쓰레기통을 비우던 관리인이 그를 발견했다. 슬론은 책상 앞의 의자에 늘어지듯 앉은 채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고개는 이상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고, 눈은 뜬 채로 무섭게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
윌리엄 스토너는 슬론이 분노와 절망의 순간에 자기 의지로 심장을 멈추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뿌리부터 배신당해 더 이상 참고 살아갈 수 없게 된 그가 마지막 순간에 세상을 향해 사랑과 경멸을 드러낸 것이다." p126~127
슬론은 전쟁으로 제자들이 죽거나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인문학이 야만을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잠식된다.
지식과 인간성의 뿌리가 전쟁과 파괴 앞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배신이었다.
어쩌면 그를 죽인 것은 절망 그 자체가 아니라, 문학과 사유, 인간성의 가치가 이 세계에서
아무 쓸모도 없다는 깨달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아주 약해지면
마음도 따라 약해져서
별것 아닌 아픈 기억으로
자살에 이를 수 있다.”
— 장 그르니에, 『섬』
슬론은 이미 몸이 쇠약한 상태였으므로 그 깊고 깊은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반면 기독교 시대에 라틴 전통에 따라 시를 쓰던 후세의 시인들 중 일부의 작품에는 거의 감춰지지 않은 증오, 쓰라림, 공포가 드러나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들은 비록 모호한 약속이기는 하나 풍요롭고 황홀한 영생의 약속으로 그런 감정이 드러난 것을 보면 마치 죽음과 영생의 약속이 삶을 망가뜨리는 못된 장난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p60
그 장난은 멈추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