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로 읽는 스토너

눈동자가 스토리를 이야기한다.

by 설기

스토너가 이유 없이 미움받는 줄 알았다.


로맥스가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고 언변만 화려한 찰스 워커를 고의적으로 스토너에게 보낸 것 같다는 의심은, 그저 내 착각으로 치부했다.

장애가 있는 로맥스가 같은 장애를 가진 찰스 워커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과잉보호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이디스와 로맥스의 그 입맞춤.


로맥스가 유일하게 사회 활동으로 방문했던 스토너의 집에서, 이디스에게 했던 그 키스. 스토너가 “정숙하고 흠잡을 데 없으며, 자연스럽기 그지없던 키스였다”라고 묘사한 그 장면.


그건 헬레네와 파리스의 키스였다.

로맥스는 이디스에게 반했던 것이다.

헬레네의 주변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그 파괴적인 사랑처럼, 로맥스에게 스토너는 메넬라오스였다.


신화 속 세 연인들의 이해와 의미


대학으로 돌아간 로맥스는 본격적으로 찰스 워커를 스토너에게 보내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갈등 속에서 스토너는 로맥스의 시선을 마주한다.


“로맥스는 스토너에게 시선을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연한 파란색 눈이 반투명한 막에 덮인 것처럼 탁하게 보였다.”




이디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물건들을 던지고 처분하는 방식,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유달리 딸과 아버지가 가깝다”는 표현으로 흘린 말들.

이 모든 것이 이디스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적인 학대를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이디스는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스토너를 아버지 대하듯 경계하고, 무시하고, 무례하게 대하며 관계를 회피했다. 하지만 아내라는 의무와 책임감으로 아이를 가졌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그녀는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던 복수를 스토너에게 대신하는 듯 본격적으로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를 보던 그녀의 연한 파란색 눈동자가 방황하다가 거실의 잡동사니들에 무심히 머물렀다.” (p.243)


스토너가 잊고있었다.

이디스는 가장 연한 파란색 눈이었었다.(p.73)


이디스와 로맥스…

스토너를 각자의 조직과 체계 속에서 끊임없이 괴롭혔던 두 사람은, 그 파란 눈으로 스토너를 보았던 것이다.


이디스와 로맥스를 생각하니 모딜리아니의 초상화들이 떠올랐다.




모딜리아니와 《스토너》

모딜리아니의 초상화에서 가장 낯선 부분은 눈이다. 대부분의 눈은 비어 있거나, 색이 있어도 시선을 건네지 않는다. 그의 인물들은 우리를 보지 않는다. 세상을 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큰 키와 마른 체형, 손가락! 이디스를 연상케한다.

드물게 파란 눈을 가진 얼굴들이 있다. 그 파란색은 맑지도, 깊지도 않다. 차갑고 정지되어 있으며, 감정을 반사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눈이라기보다 이미 닫힌 시선에 가깝다.


이디스는 사랑을 드러내지 않고, 이해를 요청하지도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확인한다. 남편이 규칙 안에 있는지, 상황이 통제되고 있는지, 자신이 불안하지 않은지. 그녀는 스토너를 바라보지만 결코 그를 보지 못한다.

이디스의 파란 눈은 관계의 눈이 아니라 감시의 눈이다.


또 하나의 파란 눈, 로맥스. 그는 문학을 읽지만 텍스트를 이해하지 않는다. 그의 눈은 의미를 향하지 않고 평가와 절차, 권력의 언어로만 움직인다. 그는 본다고 믿지만 실은 가장 보지 못하는 인물이다.


파란 눈으로 본다는 것. 보는 것이 과연 이해인가.


모딜리아니의 파란 눈은 감정이 사라진 인간의 초상이고, 이디스의 파란 눈은 사랑을 질서로 바꾸려는 시선이며, 로맥스의 파란 눈은 문학을 제도로 환원시키는 세계의 눈이다.


그들 모두 눈을 가지고 있지만 영혼을 향해 열려 있지는 않다.




“그가 줄곧 어두운 갈색이거나 검은색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눈동자는 짙은 보라색이었다.” (p.272)


스토너는 드리스콜의 논문을 봐주면서 사랑에 빠진다. 마치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처럼, 문학 속에서 순수하고 지적인 사랑이 피어난다.

윤리적인 태도를 지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스토너의 회색빛 눈과 대비되는, 고통을 예고하고 상실을 내포하며 결코 지속되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보라색.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아플지,

그 뻔한 결말을 향해 달려갈 러브스토리가 분명 슬프고야 말 것이라는… 읽지 않아도 스포일러를 해주는 작가의 날카로운 센스가 빛나는 대목이었다.




“눈은 보라색에 가까울 만큼 진한 파란색이었다.” (p.157)

그리고 너무 아프게도 딸 그레이스도 파란색 눈으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물려받은 희생자이자 가해자의 상징 같았다.


“아이의 아름다움은 얌전한 종류여서 거의 평온해 보일 정도였다. 얼굴은 가면처럼 무표정했다.

밝은 파란색 눈은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았으며,

그 속에는 어떤 두려움도 호기심도 없었다.” (p.333)


그레이스의 파란 눈은 그 파괴가 가족 전체로, 세대로 이어지는 비극을 암시하는 듯했다.


결국 그레이스는 집을 벗어나기 위해 사랑 없이 임신을 하고, 2차 대전 발발로 남편은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었으며, 남자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아이를 거의 시댁에 맡기고 알코올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된다.




"여전히 예리하고 맑은 그의 회색 눈은 안쪽으로 더욱더 깊숙이 파묻혔고, 예민하고 주의 깊은 눈빛도 반쯤 가려졌다"(p255)


회색 눈동자의 스토너

문학을 만났고, 이디스를 만났으며, 로맥스의 괴롭힘을 견뎠다. 그는 그레이스를 품었고, 드리스콜을 사랑했다.


이 모든 사건을 지나오면서도 스토너의 눈은 끝내 어느 한쪽의 색으로 기울지 않았다.


회색은 선택을 미루는 색이고, 판단을 유예하는 색이며, 폭력을 거부하는 색이다.


문학은 그에게 도망칠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들지는 않았다.


이디스와의 결혼은 그를 무너뜨렸지만 그녀를 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로맥스의 공격 앞에서 그는 싸우지 않았고, 패배했지만 상대의 얼굴을 망가뜨리지는 않았다.

그레이스 앞에서 그는 규정하지 않았다.

딸이 무엇이 될지 미리 말하지 않았다.

드리스콜과의 사랑 앞에서만 그는 잠시 흔들렸지만, 그마저도 윤리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그래서 스토너의 삶은 늘 실패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실패는 누군가를 짓밟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성공을 끝내 선택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스토너가 암으로 죽어가면서 이디스와의 시간을 갖고, 둘은 늦은 후회를 한다.

마지막을 함께한 시간은 진정 서로를 되돌아보고 용서하게 했다.


"눈을 감자 정신이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갖가지 영상들이 머릿속에서 북적거리다가 화면이 바뀌는 것처럼 바뀌었다. 파란 드레스와 가느다란 손나락과 부드럽게 미소 짓던 하얗고 섬세한 얼굴. 그리고 매 순간이 달콤하고 놀랍다는 듯 열성을 띠던 연한 푸른색 눈." (P381)


그레이스와 대화를 나누다가 스토너가 이디스를 처음 만날 때의 장면을 떠올린다.


그는 기억을 고쳤다.

파란이 아니라, 푸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