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로 읽는 '데미안'

밈 풀 속에서 태어난 아이, 밈을 파괴하는 소년

by 설기

1. 문화는 보이지 않는 규칙들의 숲이다

“이 문화적 환경은 함께 선택되는 밈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밈 풀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로서의 속성을 지니며, 새로운 밈은 쉽게 침입할 수 없다.”
—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p.332


“밈: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달고 있는 명사.”
— 『이기적 유전자』 p.323


싱클레어의 집에는 규칙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규칙으로 보이지 않았다.
공기처럼, 습관처럼, 숨 쉬듯이 스며들어 있었다.

아침이면 기도문이 흘렀고, 식탁 위에서는 ‘착한 아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놓였다.

착한 아이는 조용해야 했고,
착한 아이는 의심하지 않아야 했다.

아무도 그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싱클레어는 배운다기보다 닮아가고, 익숙해져 갔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환경에 의한 복제였다.


2. 맹신이라는 밈,

질문을 금지하는 기술

“맹신이라는 밈은 이성적인 물음을 꺾어버리는 단순한 무의식적 수단을 행사하여 불멸의 존재가 된다. 맹신은 어떤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 『이기적 유전자』 p.331


세상은 늘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그리고 그는 밝은 세계의 아이여야 했다.

그는 선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선은 늘 정해져 있었고,

악은 언제나 바깥에 있었다.

그가 속한 세상은
따뜻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고여 있는 호수처럼, 너무도 잔잔했다.

그러나 고여 있는 물은
스스로를 정화하지 못한다.


3. 밈을 파괴하는 자, 데미안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대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키는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 『이기적 유전자』 p.335


데미안을 만났을 때
그는 나쁜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착한 아이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어떤 규칙도 어기지 않았지만,
어떤 규칙에도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무엇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 질문은 조용했다.
그러나 싱클레어의 머릿속에서 오래 울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생각이 정말 자기 것인지.


그는 처음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싱클레어는 불편해졌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였고, 다르게 들렸다.

이전의 세계는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지금의 세계는 정리되지 않았다.


선과 악은 섞여 있었고, 신은 하나의 얼굴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구원은 약속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4. 키치, 감정으로 복제되는 밈

키치란, 인간 존재에서 불편하고 모순적인 부분을 삭제한 채, 아름답고 선한 감동적인 이미지로만 세계를 왜곡시켜 보여주려는 태도로 이미 합의된 아름답고 선한 감정만 강요한다.


키치는 불편함을 제거한다.
밈 역시 불편함을 제거한다.

그래서 키치는 밈이 감정을 통해 살아남는 방식이다.


“어느 흑인 부락에 있는 청년 집회소나 여기나 똑같지 않아요?
다 똑같지요. 심지어 문신이 아직도 유행이고. 알아 두시오. 이게 신 유럽이오.”

그는 말했다.


어디서나 연합과 패거리 짓기가 기세를 떨치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자유와 사랑은 없다고.

이 모든 공동체는 두려움에서 비롯되었으며,
내부는 상해 있고, 와해가 임박해 있다고.


1차 대전 직전의 유럽은 산업화, 도시화, 청년문화가 급속도로 퍼지는 시기였다.

그러나 헤세의 눈에는 이것이 문명이 아니라 세련된 야만성으로 보였다.

고대 게르만, 북유럽 상징을 문신으로 새기며 ‘순수한 청년 정체성’을 외치는 모습은
더 위험해 보였을 것이다.

개인은 사라지고, 이미지와 표어만 남는다.

이것이 키치의 완성형이다.


5. 전쟁이라는 알

“별들 중 하나가 환한 음을 내며 똑바로 나를 향해 씽 날아왔다. 나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수천 개의 불꽃으로 쪼개져서 나를 획 끌어올렸다가 다시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내 머리 위에서 세계가 무너졌다.”
— 『데미안』 p.216


'싱클레어는 왜 이렇게까지 전쟁터로 불려 나와야 했을까.'

적군이라고 불린 그들 또한 싱클레어와 마찬가지로
운명처럼 전장에 나온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총알은 공포가 아니라 운명의 별빛처럼 묘사된다.


시대가 만든 상황 또한 하나의 알이다.

전쟁처럼 가장 잔인한 환경조차도,
그 안에서 투쟁하고 깨닫고 넘어서는 과정을 통해
새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는 알이 된다.


6.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서
반역할 수 있다.”
— 『이기적 유전자』 p.335


싱클레어의 여정은 그 반역의 문학적 증거다.

데미안이라는 촉매를 통해 그는 맹신과 키치의 지배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헤세는 문학으로, 도킨스는 과학으로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인간은 유전자나 밈의 노예가 아니라,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재구성하고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을.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Absolution = 사면, 용서, 면죄, 죄에서 풀려남
종교적으로는 죄를 고백한 뒤, 더 이상 그 죄에 묶이지 않는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