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릴레이 소설 - 박미희

by 흑곰아제

‘...림아. 강림아. 이제 일어나야지.’

‘으음..누구야? 나 더 자고싶어.’

‘강림아, 이제 일어나야지. 눈 뜨렴’

‘싫어. 피곤해 더 잘래. 근데 누구지?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인데...할매? 할매야?’

‘우리 강림이에게 이 할미가 몹쓸 부탁을 했어. 미안해. 근데 조금만 더

힘을 빌려줘야겠다. 강림아. 우리 손녀 잘 부탁한다.’

강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우리의 공격에 찔린 눈에서는 피가 멈추어 있었다. 다행히 눈옆으로 스쳐지나가 눈두덩이에 긴 흉터를 남겼지만 앞을 보는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할매. 내 할매가 살린 목숨이다. 걱정마라. 괜찮다. 내가 할매 부탁 들어주께. 걱정마라”

화장실에서 물로 얼굴을 씻고 거울을 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자신의 눈 안에 봉인된 무당 허씨에게 하는 말이였다.

어린시절 강림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엄마와 도망을 다녔다. 친정으로 도망갔던 강림의 엄마는 얼마 못 가 시장통에서 아버지에게 붙잡혀 죽을만큼 맞았고 그런 아버지를 말리기위해 달려들었던 강림은 아버지가 휘두르는 주먹에 맞아 쓰러졌다. 머리에선 피가 흐르고 눈앞에선 자신을 보며 소리지르는 엄마의 모습이 마지막이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강림이 쓰러진 사이 머리채가 잡혀 끌려가던 엄마가 손에 잡히는 돌덩이로 아버지를 내리쳤고 아버진 그 자리에서 죽었다. 엄마는 강림을 찾아 달려오다가 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했다. 그때 마침 길을 지나던 무당 허씨의 도움으로 강림은 간신히 목숨을 구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를 벗어날수가 없었다. 학교도 가지않고, 밥도 먹지않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시장통 뒷골목. 자신이 쓰러졌던 곳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럴때마다 무당 허씨가 나타났다.

“아가. 가자. 네가 이러면 네 어미 하늘로 못 가. 지금도 이리 니옆에서 울고있는데 이러다가 어미 좋은곳으로 못가고 여기서 천년만년 눈물만 흘리고 있을게야. 이 할미하고 가자꾸나”

“할매. 우리 엄마가 정말 여기있나? 나땜에 못가고 자꾸 우나?”

“그려. 그려. 너그 어미 이제 보내주자. 아가야. 할미랑 가자. 니 이름이 뭐고, 너그 엄마가 자꾸 우는 통에 이름도 못들었다”

“강림이..”

그렇게 무당 허씨와 지내다가도 엄마가 보고싶거나 무당 허씨가 다른 사람들과 있는 날이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무당 허씨가 죽기 며칠전.

“강림아. 할매 부탁 하나만 들어도고”

“말해라. 내 할매 부탁은 다 들어주께.”

“이 할미가 이제 곧 여길 떠나야 할것같다.”

“그게 뭔소리고? 어디가나?”

“아니. 이제 니 어미 만나러 가야지.”

“뭔 소리고? 왜 그런 소리를 하노? 그러지 마라.”

“강림아 내 한달만 네 몸 좀 빌려도고, 내 죽고나서 우리 증손녀들에게 뭔일이 생길것같다. 내 유일한 혈육이다. 보지 못하고 산 세월이 길어도 피는 못 끊는기라. 니한테는 미안하다. 그동안 내가 가르친대로만 하면 니 밥은 먹고 살끼라. 근데 며칠만 우리 증손녀들 곁에서 좀 지켜보고싶다. 괜찮겠나?”

“응. 다 들어준다 안했나. 해주께 어찌 빌려주면되노?”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로보는 강림의 왼쪽 눈을 한손으로 가린채 눈을 감고 중얼거리던 허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되었다. 이제 내가 무슨일이 생겨도 너를 통해서 잠시 이곳에 있을 수있다. 그리고 강림아 아무도 믿지말그래이. 며칠전에 우리 집에 증손녀 데려온 내 손주사위 봤재? 그 놈 따라가. 알았제? ”

“응. 걱정마라”

무당 허씨의 말대로 며칠뒤 무당 허씨가 죽었다며 주씨 아주머니가 강림을 만나러 왔을 때 눈이 불에 댄 것처럼 뜨거워 제대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덕에 허씨의 기운을 느끼지못한 주씨는 강림을 우리의 주변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강림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직은 우리를 찾을 수 있다. 분명히 우리의 가족을 찾아 해치려고 할 것이다. 할머니에 대한 복수심으로. 당장 누리의 학교 행사장으로 가야했다. 할머니의 가족들이 위험하다. 조금만 더 시간을 지체하면 늦을지도 모른다.

[혜성초등학교 가족 단체수련회]

학생이 적은 혜성초등학교는 학부모와 형제자매들이 모두 함께 2박3일 수련회를 갖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련회는 재력이 있는 집 자식들이니 어릴때부터 얼굴을 익히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부모들끼리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서기도 하다.

하루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신나하던 누리가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학교 관계자에게 얘기를 하고 누리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 신나게 잘 논다 싶었는데 역시 좀 무리했나봐.”

“그래 어릴때부터 몸이 약해서 걱정이긴했지. 그래도 오늘 학교생활 잘 하는거보니 조금은 안심이 돼.”

“그래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더라..어어?? 저거 뭐야?”

갑자기 차가 급정거를해 안고있던 누리가 다칠까봐 희수는 더 꼭 껴안았다.

성준은 차 앞의 검은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강림이니? 여긴 어떻게 왔어? 우리는? 혼자온거야?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잖아. 그렇게 길에 서있으면 위험해. 어서 타거라. 지금 누리가.. ”

성준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림은 누리쪽으로 다가가 이마에 손을대며 작게 중얼거렸다.

“강림아 왜? 무슨일이야?” 그 모습을 보던 희수가 놀라 물었다.

“아주머니. 아저씨 제 말 잘 들으세요. 십년동안 우리 행세하던 녀석이 본 본모습을 드러냈어요”

“그게 무슨말이야?”

“우선 다시 집으로 가요. 가서 설명할께요. 누리는 괜찮을꺼예요.”

그리고 강림은 그동안의 이야기를 성준과 희수에게 들려주었다.

물런 자신이 허씨와 만나게된 이야기도 솔직하게 얘기했다.

“우리 ...안에 그럼...우리는 어떻게 되는거야?”

“아주머니 잘 들으세요. 사실 누리는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찾아 왔을때부터 죽을 운명이였어요. 태어나지 못할 운명이였다구요. 그래서 할머니가 혹시 몰라 누리의 몸에 우리의 혼을 일부를 넣어놓으셨는데 그 혼을 통해 우리가 누리의 몸으로 들어갔을꺼예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지요? 그건 자신의 몸체인 우리에게 많은 혼이 가 있기에 누리의 몸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우리에게서 제대로 우리의 영혼이 누리에게 옮겨온다면 누리는 살수있지만. 혹여 일이 잘 못되어서 우리의 영혼이 지금 그놈에게 흡수된다면 누리도 위험해요. 우리와 누리 어차피 한 영혼이니까 육체는 누구의 것을 쓰던 상관없지만 영혼이 옮겨올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해요.”

“이게 다 무슨 소리야?”

“그럼 지금 누리가 쓰러진게....”

“우리의 몸 안에서 우리가 깨어났다는 소리예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의 우리가 아닌 8살 그때의 우리예요. 이 상태로는 스스로를 지키지 못해요.”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안가지만 당장 우리와 누리가 위험하단 말이냐?”

“예”

“그럼 우리가 해야할 일은 뭐지? 뭘 도와줘야하는거지?”

“우선 아저씨는 이 근처에 있을 우리를 찾아주세요. 찾아도 절대 아는척 하지 마시구요. 눈도 마주치지 마세요. 아셨죠?”

“응 그래..”

“그럼 난 어떻게 해야하지?” 누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던 희수가 말했다.

“아주머니는 누리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세요. 지금 지킬 방법은 결계를 치는 방법 뿐이니 제가 부적으로 결계를 만들게요. 근처 안전한 곳을 알려주세요. 우리가 모르는 곳이여야해요.”

“근처.... 아..근처에 작은 나무 집이 하나 있어. 남편이 어릴 때 시부모님과 만들었다고 했는데 .. 지금은 사람이 다니질 않아.”

“좋아요. 그럼 누리를 데리고 그리로 가요”

“아저씨 우리를 찾으면 저에게 전화 주세요.”

“오냐 알겠다.”

성준은 알수 없었다. 왜 자신에게 이런일이 생기는지...

그렇다고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기에 희수를 원망할 수 없었다.

우리가 누리고 누리는 이미 십년전 뱃속에서 죽었다면....그동안의 추억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단란했던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누리가 태어나던 날 우리가 조심스레 누리 손을 잡던일. 그 모습을 보며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니다. 지금은 우선 우리부터 찾아야한다.

정신을 차리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누리와 희수를 나무집으로 보내고 우리를 찾으려고 돌아서는데 강림이 불러 세웠다.

“아저씨..”

“응? 뭐 더 필요한게 있니? 지금 금방 가져다 주마”

“아뇨. 아저씨 죄송해요..”

“뭐가 말이냐?”

“그냥 그렇다구요..”

싱거운 녀석이라 생각하고 조심하란 말을 남기고 성준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성준의 뒷모습을 보며 강림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저씨 죄송해요. 저한테 정말 잘해주셨는데 아저씨를 지켜드리지 못할것같아요. 할매랑 할매 핏줄 지켜드리기로 약속했거든요. 죄송해요.아저씨”

성준은 우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차에 시동을 걸고 우선 우리가 다니는 학원과 갈 만 한곳을 모두 찾았지만 친구들조차 우리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우리... 내 딸...

우리를 키우면서 성준은 정말 행복했다. 8살 무렵 신병으로 힘들게 했을때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행복했다. 그리고 십년을 살면서 우리가 다른 영혼이였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어째설까?’자신을 탓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네 입구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하원하면서 아이스크림이 먹고싶다고하면 자주 데리고 갔었던 곳이다.

“앗. 우리야.!”

강림의 당부를 잊고 성준은 어깨가 축 쳐저 그네에 앉아있던 딸아이를 불렀다.

“아빠야?”

“왜 이러고 있어?”

“키키키키키 아빠가 뒈질려고 왔네. 그 새끼가 얘기 안 했나보구나. 아니면 알고도 딸년이라고 찾고싶었나? 그것도 아니면 뭘까?”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네에서 일어나 성준을 바라보는 우리는 자신이 알고있던 딸이 아니였다. 섬뜩함에 뒷걸음질 치던 성준은 강림의 말이 떠 올랐다.

‘우리 대부분의 혼은 우리 몸안에 있다’

“우리야. 아빠야! 정신차려 이러면 안돼!”

성준이 우리의 팔을 붙잡고 세차게 흔들며 외쳤다.

“키키키키키 그년은 지금 내가 무서워서 어디로 숨었나 찾을수도 없는데

아빠란 새끼는 딸 년 찾겠다고 뒈질지도 모르고 덤비네.“

푹. 푸욱..

배에서 갑자기 따끔하면서 헉 소리가 나왔다.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를 놓고 한걸음 떨어지니 우리의 손에 식칼이 들려있다. 피가 묻었는데 설마...하며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니

피가 흐른다. ‘우리가 나를...아니야 저건 우리가 아냐.’

“우리야. 안돼. 위험하니까 그 칼 내려놔.”

“키키키키 부모란 인간들은 끝까지 자기 자식을 믿지. 어떤 짓을 해도. 그렇지?”

우리가 성준을 향해 달려든다. 칼이 성준의 목에 꽂히고 성준은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우리야. 우리 아기. 아빠가 꼭 지켜줄게. 우리야.’

‘아빠.... 안돼!!!!!’

어디선가 어릴적 우리의 목소리가 들려 성준은 미소를 짓는다.

“아저씨..흑흑.. 아저씨..”

멀리 성준의 기운이 사라져감을 느끼고 강림은 결계를 치던 손을 멈추고 눈물을 닦는다.

“강림아. 무슨 일 있어?” 강림의 흐느낌에 희수는 걱정되어 묻는다.

“아니예요. 괜찮아요. 다 지나갈꺼예요. 아주머니. 지금부터 24시간 안에 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주머니 갈색 가방 안에 제가 무구를 넣어두었어요. 혹시 그 무구가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멈출때까지 절대로 밖으로 나오시면 안되요. 아셨죠?”

“응.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강림아 너도 조심하렴. 그리고 우리.. 우리랑 꼭 같이 와야해 알았지?”

‘아주머니 우리랑 같이 오면 아주머니와 누리가 죽어요. 저 하나로 끝낼 수 있으면 ... 좋겠어요. 할매 할매는 이제 여기 지켜도고. 내가 가서 할매 가짜 손녀 꼭 찾아서 복수 해줄게’

속마음을 숨기고 강림은 희수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이제 멀리 해가 뜨고 있다. 오늘 하루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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