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소설 - 김지영
다시… 비가 엄청나게 내리던 10년 전 그날 밤.
첫 번째 살인이 시작되었다.
주씨, 그러니까 외롭게 살던 주길자는 37살에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갈가리 찢겨 시체 또한 찾을 수 없었기에 한 자리에 앉아 울고 또 우는 어린 영이 있었다.
딱 한번.
딱 한번만 두 다리로 걷고 꽃내음을 맡고 싶어하는 순수한 영이였다.
생을 마감하는 자와 생에 미련이 남은 영은 서로를 끌어당겼고 아무런 의식없이 주씨의 몸으로 영이 빙의 되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무당 허씨가 그 모습을 보게 되었고, 순수한 영이 원하는 삶을 1년간 살수 있게 도와주었다.
1년 동안 이승에서의 못다 이룬 일을 마무리 지으라고…기회를 준 것이다. 처음에는 고마움이 컸던 그 영은 무당 허씨를 도와 열심히 기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씨 안에 있는 영은 더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어린 몸이 필요했다.
‘무당 허씨의 신력이면 손쉽게 다른 몸으로 갈아탈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주씨는 무당 허씨의 가족 중 신력이 있는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씨의 증손녀가 태어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7살.
인간의 수명을 100살이라고 한다면…
그 몸만 갖게되면 90여년의 생을 살 수 있다.
하지만, 무당 허씨가 늘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저 년을 죽여야겠어!, 그래야 내가 그 아이 몸을 가질 수 있어!’
주씨의 간절함이 신의 마음에 들었을까? 허씨의 증손녀가 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곧 그들이 무당 허씨를 찾아올 것을 직감했다.
주씨는 그 날을 결전의 날로 삼았다.
주씨의 생각대로 우리네 가족이 찾아왔다. 보기만해도 아름다운 우리의 싱싱한 몸은 주씨의 완벽한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우리를 살리기위해 우리의 몸에 애기 영을 빙의 시킨다는 말을 들은 주씨는 마음이 급해졌다.
우리를 데리고 본당으로 들어가는 무당 허씨를 한번 째려본 후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서 무당 허씨를 죽일 만한 흉기를 찾던 주씨는 이내 탄식했다.
"이 년, 내가 자길 죽일 것을 미리 알고있었구나!”
부엌에서는 그 어떤 흉기도 찾을 수가 없었다.
주씨는 다급하게 방울소리가 들리는 본당으로 향했다.
천둥소리와 폭풍우의 소리 그리고 방울소리가 뒤섞여 기교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벌컥 방문을 열자 허씨의 등은 춤을 추듯 굽은 채였고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녀의 회색빛 머리카락은 본당의 흔들리는 촛불 때문에 마치 핏빛으로 보였다.
우리의 몸 주변으로 푸른 안개 같은 것이 피어 올랐고 본당의 한 쪽 모퉁이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내 검은 연기는 회오리치듯 우리의 몸을 향했다.
주씨의 살기를 느꼈으나 허씨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인다면 사랑스러운 증손녀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였다.
지금이 아니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갈 터였기에 허씨는 죽을 각오로 버티고 서 있었다.
살기를 띈 광기어린 푸른 눈을 희번거리던 주씨는 굿을 하기위해 놓인 무구들 중 칼을 찾아내고 손에 쥐고 허씨에게 달려들었다.
(*무구 :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쓰는 도구)
본능적으로 주씨의 힘에 반항했지만 빙의 의식에 모든 기운을 쓴 허씨는 이길 힘이 없었다.
“네가….이런다고 영원히…살 .. 수 있을 것 같으냐?”
“닥쳐!!!”
귀신을 베기위해 준비했던 날카로운 칼이 허씨의 목에 꽂혔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내뱉는 늙은 무당의 몸을 옆으로 집어던지고
주씨는 우리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애기 영의 모습도, 스멀스멀 피어나던 검은 연기도….. 고통스러워 하던 우리의 비명도 끝난 뒤였다.
“망할 할망구…..내가 이런다고 포기 할 것 같아?!!!!”
주씨는 새벽닭이 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무당 허씨의 시체 처리를 위해 아쉽지만 애기영을 받은 우리를 깨워 무당 허씨가 준비 해 놓은 새 옷을 갈아입히고 서둘러 성준과 희수를 서울로 올려보냈다.
시체를 토막내 법당 근처에 묻고 한 숨 돌리며 다시 우리의 몸을 차지할 계획을 세웠다.
며칠 전 장터에 들어온 몸 허약한 사내아이가 생각난 주씨.
그 아일 데려와 깨끗하게 씻기고 먹이고 입혔으며, [강림]이란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근처에서 다른 영들이 그 몸을 못 가져가게 지키고. 자신이 탐할 기회를 만들기위해
강림을 키워 우리의 근처로 보냈다.
십 년. 십년이란 긴 시간을 단지 우리의 몸을 갖겠다는 마음으로 꾹 참고 버틴 것이다.
이 사실을 알리없는 성준과 희수.
“성준씨. 그 아이 말야..강림이란…”
“응, 당신도 그 아이 생각하고있었구나.”
“부모도 없이 혼자 어떻게 그렇게 잘 컸을까? 그리고 어떻게 우리 우리를 지켜줬을까? 역시 할머니가 우리를 지켜주는거야. 그렇지? 성준씨 나.. 그 아이 데려오고싶어.”
“그래 나도 그 생각했어. 혼자 산다니…. 우리 손님방 남는거 있으니까. 강림학생 데려와서 함께 지내도 좋을것 같아. 우리랑 얘기해보자구.“
사춘기인 딸아이가 불편할까봐 걱정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는데 우리의 반응은 의외였다.
“응, 엄마아빠 원하시는데로 해요.난 괜찮아요.”
“정말? 안 불편하겠어? 사실 엄만… 외할머니 생각도 나고.. 할머니가 너를 위해서 그 아이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있으면 네가 좀 더 좋을것같기도하고…”
“응 엄마 괜찮아요. 강림이 안 불편해요.”
그렇게 작은 배낭을 메고 책 몇 권을 들고 강림은 성준의 집으로 오게되었다.
말수가 적어 성격이 어두울까 걱정했던 희수는 누리를 대하는 강림의 태도에 안도감이 들었다.
“오빠 오빠~ 강림이 오빠.~~ 나 오늘 학교 숙제 다했어. 이제 놀자“
“누리야 강림이 오빠도 공부해야지. 귀찮게 하지마!”
“아니에요. 저 공부 다 했어요. 누리야. 오늘은 뭐하고 놀까?”
입을 삐죽 내밀며 삐져있던 누리가 환하게 미소지으며 강림에게 달려간다.
그 모습을 보는 희수는 아들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며 흐뭇해한다.
그렇다고 편하기만 한건 아니였다. 비슷한 나이인 우리와는 아직 서먹한지 대화를 나누는걸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누리의 학교 행사로 성준, 누리와 함께 며칠 비워야 하는데 둘이 저렇게 서먹하니 걱정이 되었다.
“괜찮아. 일하시는 아주머니들도 계시고.. 안 심심해요”
“그러니까 우리야. 강림이가 우리집에 온지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 네가 좀 잘 돌봐주렴.”
“음…..알겠어요”
억지로라도 고개를 끄덕여주는 우리가 고마워서 희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강림아 우리가 좀 쌀쌀맞게 굴어도 네가 잘 챙겨주렴. 아파서 그런지 예민해진 것 같아.”
“예! 걱정마세요“
“강림학생. 미안한데 내가 지금 시장에 다녀와야해서 이거 우리 학생 방에 가져가서 같이 먹어요.”
“예, 감사합니다.“
강림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챙겨주신 과일을 들고 우리의 방으로 갔다.
문 앞에 서서 문에 손바닥을 대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들어와.”
“어떻게 알았어?“
“내가 어떻게 아는지 너도 알잖아.”
“하긴….”
“이제야 우리 둘 뿐이네….그치?“
“하하…이제 말하는거야?”
우리가 강림을 한번 쓱~ 보더니 눈을 쳐다본다.
“너 누구야?”
“강림이지. 이름도 몰랐어?“
“장난 치지마. 죽여버릴 수도 있어!!”
얼굴 표정이 바뀐 우리가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로 소리친다.
놀랄만도 한데 강림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짐짓 여유롭게까지 하다.
“니도 아는 사람. 갸 몸에서 기어나온다! 안 그럼 내가 니 환생도 못하게 진짜 갈기갈지 찢어뿔끼다!”
순간 우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목소리… 빙의된 몸이지만 손발이 덜덜 떨릴만큼 영혼에 타격을 주는 신력.
“네 년…. 그 무당년이구나!! 그래 그날 내가 니 손녀에게 갈 어린 영을 먹고 숨어 있는걸 네 년은 이미 알고 있었어!”
“아니. 몰라제. 내 아무리 큰 무당이라 해도 가족일에 맴이 흔들려뿐기라. 주씨가 들어오는 순간 검은 연기로 다가오는 니 놈이 보이기에 아차 싶었지만 그때는 이미 칼에 찔려서 내도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알게되었다. 니는 주씨 몸에 깃든 영을 죽인 그놈이제? 주씨에게 붙어 들어와 있던거라. 니가 우리에게 잡귀들을 보내서 아를 괴롭힌거제!!!!”
강림의 입에선 죽은 무당 허씨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키키키키 맞아. 나야. 내가 그년을 죽이고 돌아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져서 뒤져버렸지 뭐야. 그러고 얼마나 있었나. 그년이 매일 우는거야. 그러고는 몸 뚱아리를 찾았다고 좋아하더군. 그때 그 죽은 년의 몸에 나도 슬며시 들어갔지. 그 둔한 년은 모르더군. 근데 그 년이 널 찾아간거야.
아~ 망했구나 싶어서 얼른 대나무 숲으로 숨었는데 오며가며 귀신들이 그러더라. 네년 자손에게 신병이 갈꺼라고…키키키키 그때부터 기다렸어.”
“불쌍한기라. 그런다고 니가 갸 몸뚱이를 가질수 있을꺼 같나? 아직은 약해도 큰무당인 내 자손이다.!”
“씨팔. 그래서 아직까지 이러고 있잖아. 아직까지!!!”
버럭 소리지르던 우리가 싸늘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근데 고맙게도 네가 이렇게 찾아왔네…그것도 건강한 몸뚱이 하나 챙겨서 키키키키키키”
“이 아이는 무구다. 신에게 선택된 무구. 너 같은 놈이 가져 갈 수 있는 몸이 아인기라. 내가 이승에서 마지막 숨을 내뱉는데 이 아이의 힘이 나를 땡겨 데려간거제”
싸늘하게 미소짓던 우리의 표정이 변한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하는 모습이다.
강림이 우리에게 한 발 다가서자 우리가 흠짓 놀란다.
“이제 고마. 우리에게서 나가라.!”
“아니야..아냐.. 아직은 아냐....”
순식간에 우리는 과일과 함께 온 작은 포크를 휘둘렀다.
“난 더 살꺼야. 내가 어떻게 버텼는데…얼마나 참고 살았는데….아직은 안되지….키키키키키키”
“아니 더는 안될끼다!”
어느새 우리의 손을 잡고 있던 강림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아냐.. 아니야.."
우리가 포크로 강림의 왼쪽 눈을 찔렀다.
“아악!!” 강림이 눈일 부여잡고 소리 질렀다.
“난 다시 사람의 피냄새를 맡고싶어. 이 년 몸뚱아리로. 키키키키키”
“안돼. 안돼.“
흐릿해져가는 강림의 의식 속에 허씨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
“우리 학생. 어디가?”
“아~ 아주머니. 시장 다녀오세요? 네. 엄마아빠가 누리 행사 참석하라고 연락와서요. 누리가 언니 보고싶다고 울고있대요.”
“강림학생은?”
“강림이는 먼저 출발했어요. 아주머니도 며칠 휴가 가시라고 하셨어요. 집에 사람없으니 문단속만 부탁드려요.”
“아이고~ 덕분에 나 휴가가네. 알겠어요. 우리 학생. 기사님께 오시라고 할까?”
“아뇨. 강림이가 먼저 연락드려서 오시고 계실꺼여요. 걱정말고 퇴근하세요“
“그래 그럼 이거 정리하고 갈께.”
“네…그럼 다녀오겠습니다. ”
유유히 걸어나가는 우리.
우리의 방에 쓰러진 강림.
그리고 시작되는 살인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