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녀들처럼
코로나 후유증은 없어?
나는 5개월이 넘었는데 아직 후각과 미각이 없어.
조금씩 돌아오고는 있는데
완벽하진 않아.
팔공산에 드라이브를 갔는데
가족들은 모두 풀냄새 좋다고 하는데
난 아무 냄새가 안 났어.
풀냄새 맡고 싶은데 말이지.
후각과 미각은 당연히 내게 주어진 것이였기에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몰랐어.
사람이 이렇게 아둔해.
언제나 잃어야지만 소중한 걸 알게 되더라.
추석 명절엔 식구들 모두 집에서만 보냈겠구나.
난 친정에 다녀왔어.
늘 하던 생각이지만, 친정에서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무거워.
시어머니가 편찮으신 집은 집대로,
여동생이 아픈 친정은 친정대로.
내게 고민거리를 줘.
“어떤 삶을 살아야 모두가 행복할까?”
욕심이지?
모두가 행복할 순 없을텐데
너의 말대로 K-장녀의 오지랖이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친정엄마는
여동생이 눈 수술을 했을 땐,
시각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에 건강하기만을 기도했어.
그런데 조금씩 낫고나니까.
자기 밥벌이를 했으면 좋겠고,
자기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대.
언제까지 본인이 옆에 있어줄수는 없으니까.
여동생은 뭐랄까.
자기가 하는 일에 묵묵한 스타일이야.
나는 내가 뭐 하나 하면 생색을 내는 스타일이고.
그러니 엄마가 동생의 생각을 모를 수 있지.
여동생은 자기의 문제를 얘기 하는걸 좋아하지 않아.
여동생이 미용실을 접을 때,
세무서에 신고를 폐업신고를 하면서
매출을 계산해보다가
나는 왜 내 동생에게 이렇게 무심했을까?
싶은 마음에 얼마나 울었나 몰라.
수술해야 한다는 말에도 울지 않았는데 말야.
대책없이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잘 버텼더라고.
그래서 기특했어.
동생이 작년부터는 유치원 방역요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해.
말이 좋아서 방역요원이지 청소를 하러
다니는 거지만,
자신의 커리어, 타인의 시선들 모두 감안하고
씩씩하게 티 안내고 다니더라.
나는 내 동생이 참 기특해.
엄마는 자신이 없을 때
여동생이 시집간 내게 짐이 될까봐 걱정을 하더라.
그건 여동생과 내 문제이고
짐이 된다고 한들 그건 내 문제니까
엄마가 거기까지 신경쓰지 말라고해도
그게 안되나봐.
요즘은 존재로만 감사하다는 말을
곱씹어 보게돼.
지금 친정엄마가 계셔서,
시어머니가 계셔서 감사하고
여동생이 있어서 감사해.
앞으로 이 감사함을 잊고 또 흔들릴때가
있겠지만,
지금은 이 감사함을 꼭 표현하고싶네.
갈때마다 여동생이 발톱을 깎아달라고 하는데
발톱을 깎아주다가
왜 어머니 발톱을 깎아드리는건 귀찮아했을까?
하는 생각이들었어.
오늘은 집에가서 어머니 발톱 깎아드려야겠다.
친정 다녀온 뒤라 말이 많았어.
니가 2주동안 밀렸던 것들 해결하면
또 다른 얘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겠지?
아침에 쌀쌀하더라.
감기 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