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당

일당이 주는 의미

by 둥이

하루 일당


학창 시절에 나는 한달에 한번 용돈을 받기 위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돈이 떨어 질때쯤이나 한달에 한번 돈 달란 얘기를 안해도 알아서 돈을 주시면 좋으련만, 용돈 떨어졌다고 말하는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전화 인데도 돈달라는 말은 무척 힘이 들었다. 엄마는 늘 전화를 받으시며 벌써 돈 떨어졌냐 돈 이란게 쓰는 사람 따로 있고 버는 사람 따로 있다더니 아껴써라 그냥 아무말 없이 주면 좋으련만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나 몰라라 하는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돈은 늘 부족했고 언제나 우리집엔 돈이 없었다.그렇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데도 왜 돈이 없을까 나에겐 그게 늘 궁금했다. 부모님의 하루는 해보다 먼저 일어나 해를 따라 생활 하셨다. 해가지면 집에 들어와 저녁밥을 드시고 주무셨다. 정직하게 일한 하루 일당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았다. 특히나 정직하고 성실한 아버지에겐 일한 만큼의 일당은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그건 늘 때맞춰 불어오는 태풍과 장마로 심어놓은 농작물의 피해가 큰 이유도 있었고 풍작인해에는 다들 풍작이라 가격이 폭락해서인 이유도 있었다. 늘 그만한 이유는 있었다.

그렇타고 세상을 탓하거나 시대를 원망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했다.


아버지의 하루 일당은 그렇게 박하고 한없이 작았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고 그 몫에 감사하며 살았다.


가을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이였다. 노란 우비를 쓰신 할머니가 자기몸에 몇배는 되어 보이는 리어카를 힘들게 밀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할머니는 재래시장에서 나오는 박스를 주으러 매일 그 길을 지나 다녔다.

그일 마저도 할머니는 남들에게 빼앗 길까봐 늘 서두르는 기색이였고 부지런을 떠는 날에는 리어카 가득 박스상자를 실어 나를수 있었다. 그날도 할머니는 가을비를 맞으며 박스를 주으러 다녀오는 길이였다. 거의 빈 리어카안은 겨우 반 정도가 채워져 있었고 이 마저도 비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리어카를 밀고 있는 할머니는 폐상자를 모아 하루 벌이를 하신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을 계산할수 없는 돈을 하루 일당으로 받으신다. 움켜쥔 손에는 구겨진 천원짜리 몇장과 동전이 쥐여 있었다. 할머니의 일당은 박하다 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그돈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있는게 없다. 따뜻한 식사한끼 편안한 잠자리 이런건 감히 기대할수도 없지만 적어도 따뜻한 차한잔 계산치를 만큼은 되어야 되는데, 근데 이상한건 그 힘든일을 놓치 않고 폐지를 주우러 하루 또 하루 살아 낸다. 할머니의 일당엔 설명되지 않은 세상이 있다. 일당 이라고 부르기엔 그 몫은 너무나 빈약하고 허약해서 기댈곳도 없어 곧 무너질듯 하지만, 아주 작은 햇볕 만으로도 식물이 살아 가듯이, 폐지 팔아 받은 그 일당은 햇볕처럼 할머니를 살게 해준다.


누구에게나 일당은 있다.


용돈만 받던 내가 처음으로 노동의 댓가로 일당을 받은날의 기억을 적어볼까 한다.


미장 기술자였던 외삼춘을 따라 다니며 일산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육개월 동안 일을 한적이 있다. 1994년 여름은 기억에 남을만큼 더웠다. 그해 여름과 가을 두 계절이 바뀌어 가는 시간동안 아파트건설 현장에서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 나르는 일을 했다. 힘든 노동의 댓가로 받는 하루 일당은 오만원 이였다. 내게 그돈은 가늠할수 없을 정도로 큰 돈이였다. 하루를 버티게 해주고 일주일을 버티게 해준건 나의 성실함도 아니였고 의지도 아니였다. 그건 오직 하루 일당

땀흘리고 받을수 있는 나의 몫 이 있었기에 버틸수 있었다. 한달을 일하고 받는돈은 일한날에서 오일치를 제외한 날만큼의 돈이였다. 어떤달은 백만원을 받은적도 있었고 또 어떤달은 칠십만원을 받은날도 있었다. 그 돈이면 할수 있는걸 생각해보면 마음이 그새 흐뭇해 졌다. 일당은 나를 행복하게도 만들어 주었고 슬프게도 만들어 주었다. 내가 처음으로 땀흘려 번 돈 노동으로 번 일당은 오만원 이였다.

그 해 겨울 복학을 앞두고 난 까페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처럼 대형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없었을 때여서 여학생들이 자주 찾는 까페는 대목때 처럼 늘 사람들로 꽉꽉 채워졌다. 까페 아르바이트는 주방일과 홀서빙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주방일을 하다가 일이 손에 붙으면 홀서빙을 볼수 있었다. 그때 시간급이 천이백원 이였다. 나의 까페 아르바이트 일당은 만원이 안되는 돈이였다. 한달을 채우고 사장님께 받는돈은 이십만원이 조금 넘는돈 이였다. 어째꺼나 그 정도되는 돈이라도 주머니사정이 뻔한 대학생들 에게는 요긴하게 쓸수 있는 돈이였다. 지금은 최저시급이 많이 올라서 일당도 많이 올라갔지만 그만큼 물가도 올라갔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건 없는듯 했다.



자기 몫의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간 모든 사람은 그 일당으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고 또 일당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어느간 어느공간에서 늘 나의 일당은 변해 갔다. 아버지의 하루와 할머니의 하루와 편의점 알바생의 하루와 대기업 중년의 하루와 전부치는 식당주인의 하루가 이런 저넌 하루가 만들어주는 각자의 일당들,

일당의 주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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