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생겨나는 장소

어느 택시 기사 이야기

by 둥이

이야기가 생겨나는 장소


타인과 함께 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최악의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마더 테레사 수녀


택시를 탔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주차 장소가 마땅치 않은 곳이었다. 고민 끝에 택시를 잡아 타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지인분들과 식사를 마치고 집에 올 때도 택시를 탔다. 코로나 전에는 앞 좌석에 타는 적이 많았는데 요즘은 항상 뒷좌석에 앉는다. 택시 안이 밀폐 공간 이란 것을 잊은 듯이, 마치 뒷좌석이 꽤나 안전하다는 듯이,


기사아저씨의 뒷모습은 다정해 보였다. 앞모습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들을 종종 뒷모습은 말해주는 경우가 많다. 숨기려야 숨겨지지 않은 사람의 감정들이 푸석하게 내려앉은 어깨선이나 구부정한 척추각도나 터벅터벅 내딛는 무거운 발걸음에 묻혀 말을 걸 때가 있다. 보고만 있었는데도 뒷모습은 감정을 숨길 수 없어 혼잣말을 하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온다.

기사분의 뒷모습에 따뜻한 온기가 묻어 있었던 건 한파가 풀려서도 아니었다. 집으로 오는 십분 정도의 시간 동안 기사아저씨는 날씨이야기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자박자박 돌솥 된장찌개 끓듯 구수하게 들려주셨다.

운전석 의자 안으로 푹석 들어갈 정도로 구부정해 보였던 척추는 기사분의 나이를 말해주는 듯했다. 단정하게 정리된 싸한 머리카락은 풍성했다. 아마도 탈모 걱정은 없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손님과 대화하는 법을 아는 듯했다. 손님의 나이대와 옷매무새를 눈여겨볼 줄도 알았다. 그에 알맞은 대화를 찾아내려는 듯 손님과 나누는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 나갔다. 손주들에게 전래동화를 읽어주는 듯한 낙랑 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와닿았다. 백밀러를 바라보는 눈매는 선해 보였다. 칠순은 넘어 보였지만 아직은 왕성하게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기사분의 어깨가 두 번 위로 올라갔다. 나름의 제스처 있듯 했다.

몇 마디 나누는 별것 없는 일상의 대화는 충분할 정도로 아니 과할 정도로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삶은 참 별거 없다는 그 순수한 진리는 이렇듯 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범인들의 시간 속에서 뭉개 뭉개 피어난다.


사랑방, 커피숍, 미용실, 교실 안, 교회와 성당 등 사랑을 나누고 이야기가 생겨나는 장소는 많지만 이렇게 서민들의 진솔하고 찰기 있는 삶의 생생함이 살아있는 곳은 택시 안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별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섞여 나가고 하루의 일과 어제의 일과 과거의 일과 내일의 일과 오늘의 일이 마치 아무렇지 않게 믹스되어 달콤한 향기로 피어나는 곳 ᆢᆢ 다시 만날 일이 없어서일까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한 삶의 애환과 고통을 우리는 종종 택시 안에서 풀어낸다.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타인과 나눈 이야기는 순간을 잡아 색을 입히고 내 기억속에 저장 되어진다. 긴 시간동안 숙성 되어진 이야기는 삶을 다채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그 순간 삼십여 년 전 택시 기사분이 생각이 났다. 그날은 면접을 보고 참 우울한 기분이 들었던 날이었는데 여자 기사분이 그런 나의 속도 모른 체 세상 밝게 환한 웃음으로 환대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그리곤 자기 아들 걱정을 풀어놓았다. 나의 우울은 순식간에 쓸려가 버렸다. 난 기사분께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나이 때는 몰입할 무엇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농구나 독서나 친구나 여행이 나요 그것마저 없다면 열정과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터져 버릴 수도 있어요"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인가

내 마음은 금방 다른 사람의 마음 보듯이 객관화되어 차분해졌다. 우울했던 기분도 사라져 갔다.

"그래 또 하면 되지 "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 기사분과 나눈 십 분간의 대화는 대충 이러했다.

인간 사는 세상의 이야기는 언제나 정겹다.


"제가 항상 아침 일곱 시에 나와서 저녁 아홉 시에 들어가요 "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때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저는 택시일 하는 게 너무 행복해요 제 친구들은 다 은퇴해서 놀거나 소일하며 늙어 가요 전 일할 데가 있고 여러 손님들과 사는 이야기 나누며 살아요 어제는 휠체어 타신 할머니가 타시길래 천천히 타시라고 제가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타시라고 했어요 그런 할머니 보면 저희 엄마 생각이 나요 요즘은 카카오 택시가 다 손님들을 채가서 돈벌이가 쉽지 않아요

십만 원 벌 때도 있고 오만 원 벌 때도 있어요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두시고 먹고 자는데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이들은 다 커서 저희들 살림 꾸리고 살아가고 있어요

저희 어머님이 아흔일곱 되셨는데요 아직까지 정정하시고 식사도 잘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하루를 산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에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어요 세상은 온통 저에게 잘해주어요 "


우리는 낯선 여행지에서도 이런 기사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기사분은 때론 국밥집 사장님 이였다가, 뒷골목 시간 가는줄 모르고 놀고 있는 아이들 이였다가, 재래시장 입구에서 육성마늘을 물에 불려 까고 있는 할머니였다가, 산책길에 만난 동네 아주머니였다가, 그리곤 때론 내속에 숨어있는 나를 만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손님을 환대해 주었던 기사분은 인간극장 주인공을 보는 듯했다.

듣는 것 만으로 이미 충분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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