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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Jul 19. 2024

딸이 있어야 돼

옆집 할머니 이야기

"딸이 있어야 돼 하나 더 나아요"


104동으로 이사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34층 한 층에 네세대가 살고 있고 엘리베이터는 두대, 등교하는 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피해 출근을 하고 있다. 어찌 일 년 정도를 살다 보면 아파트가 아무리 정이 없다 해도 한 층에 사는 이웃들과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게 돼 있어서 그때마다 인사를 하곤 한다. 오늘도 난 혼잡한 시간을 피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지팡이 짚는 소리와 할머니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선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처음 뵙는 할머니였던 터라 우선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

"네 안녕하세요 어디 사시나요?


할머니의 목소리는 힘은 없었지만 소통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네 여기 1801호에 살아요"

"아 그럼 쌍둥이네 집이네요"

"네 제가 쌍둥이 아빠예요"

"아 그런가요 애들이 참 착해요. 인사도 잘하고요. 근데 딸은 없나 봐요"


그 말과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할머니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고 난 뒤에서 따라 들어갔다.

"딸이 있어야 돼"

"늙으면 아들들은 못 챙겨! 후회하지 말고 빨리 만들어요."


18층에서 내려가기 시작한 엘리베이터는 그날따라 서다 가기를 더디 하며 각층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할 말을 해나갔다.


"딸이 있어야 돼 딸이"

"아 네 제가 나이가 있어서요."

"젊어 보이는데 늦지 않았어요."


그때 8층에서 유머차를 밀고 들어오는 할머니는 마침 손녀딸이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옆집 할머니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몇 살이니 예쁘구나 "

"효도하겠구나 "

"이봐요 이런 딸 낳으면 얼마나 좋아요"


유모차가 작아 보일만큼 커버린 아이가 그 안에 누워 있었다. 손가락 네 개를 펴보였다.


엘리베이터는 아직도 일층에 도착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시간에 맞추기라도 한 걸까 할머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고 딸이 있어야 된다며 딸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일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천천히 내리시는 할머니는 독백인지 건네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 말을 던지셨다.


"우리 아들이 딸이 없어 "


아마도 할머니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딸을 가져야 노년이 편안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듯했다. 나 역시 할머니 생각과 다르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시간과 글쓰기와 책 읽기도 좋아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아이들이다. 나는 쌍둥이가 태어나기 전 결혼 후 10년 동안 조카를 네 딸처럼 키웠다. 내게 있어 아이들이란 초등학교 4, 5학년까지의 아이들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은 생김새나 말하는 게 어른 같아서 아이들만큼 허물없이 다가서지 못한다. 성당에 가서도 난 형제님들이나 자매님들 보다 먼저 아이들에게 눈길이 간다. 어디에 앉아 있는지 훑어보다 언론 다가가 인사한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 대하듯 이름을 부르며 잘 지냈냐며 인사한다. 아이들에 까만 눈동자에 또렷하게 나의 모습이 담긴다. 아이들에 순도 백 프로 미소를 보는 것 만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어찌 되었든 딸이든 아들이든 난 아이들이 좋다.

천사의 미소를 닮은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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