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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안 이야기

쓸모의 역설

by 둥이


작은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다.


간격이 벌어져 꽂히지 않는 클립 두 개, 모서리가 까매진 지우개, 써지지 않는 까만 모나미 볼펜, 나의 필체로 적힌 메모지, 무엇이 저장되어 있는지 모르는 USB, 가끔 몇 개씩 갔다 버려도 어느새 서랍 안은 이런 잡동사니들로 꽉 차 버린다. 버리고 버려도 서랍은

늘 왜 이런 게 여기 들어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쓸모없는 물건들이 서랍 안을 꽉 채우고 있다.

또렷이 기억에 남아 언제 서랍 안에 넣었는지 생생한 이미지로 떠오르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왜 버리지 못하고 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한참을 생각해 보곤 한다. 그냥 이유 없이 버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살아남아 서랍 안에 있는 이유는 나의 소심함과 우유부단함 거기에 게으름도 한몫했으리라..


간격이 벌어져 클립으로써 쓸모가 없어진 클립을 버리지 못하고 서랍 안에 버리게 되건 재활용이 가능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과 부피가 작은 물건이어서 그냥 서랍 안에 있어도 눈에 거슬리지 않을 거란 안심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클립은 다시 서랍 정리를 해도 버려지지가 않을 운명이다. 클립의 가늘고 모진 인생이랄까 그건 클립의 운명일지 모른다. 너무 버려지지 않거나 그 반대 이거나.


정작 필요할 땐 보이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지우개가 있다. 그 많던 지우개가 왜 하필 아이들 받아쓰기를 고쳐 써야 할 때는 보이지 않는지를, 무슨 머피의 법칙이 이렇게 정확하게 상황 정리를 해주는지를, 지우개를 찾을 때마다 외치곤 한다.


"그 많던 지우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상아는 다 어디로 갔을까는 지우개를 찾을 때마다 생각나는 소설이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지우개는 지우개가 아니어서 그 존재의 부재로 그 가치를 끌어올려주게 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지우개는 허투루 버려지지 않는다. 집안 곳곳에 있는 책상서랍과 연필꽂이

에는 지우개들로 꽉 채워진다. 몽당연필처럼 몽당 지우개도 그 쓰임새를 찾아 그 생을 연명해 간다. 정작 지우개가 꼭 필요한 때를 위해서 지우개가 필요치 않을 그 긴 시간을 필기구가 있을만한 책상과 서랍 여기저기에 저장해 둔 셈이 된다. 버려지지 못함에는 이유가 있고 이야기가 서려있다.


까만 모나미 볼펜도 지우개와 비슷한 삶을 이어나간다. 중요할 때 써지지 않은 볼펜들은 왜 이리 많은지, 분명 까만 볼펜약이 꽉 차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지간해서 볼펜은 부드럽게 써지지 않는다.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눌러쓰거나 볼펜심을 이리저리 굴려 보아도 까만색을 토해내지 못한다. 이런 쓸모없는 볼펜들이 늘 문제였다. 차라리 볼펜약이 없다든가, 볼펜심이 빠졌다든가 하면 아주 쉽게 버려졌을 것을, 이런저런 확실한 버려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써지지 않는 볼펜들은 버려지지 못하고 쌓여 간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느 정도 묵혀 두면 바쁘지 않을 때나 한가할 때면 진한 까만색으로 존재의 이유를 말해준다.


이렇게 가끔씩 써지는 볼펜들로 한가한 날에 문득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어느 집이 스파게티를 잘한다든지, 어느 회사가 어떤 물건들을 잘 만드는지, 어느 주식을 사야 한다든지 하는 신변 잡다한 메모를 적어둔 쓸모없는 메모지가 왜 여태 버려지지 않고 포스트잇으로써의 기능만 살아있는 메모지들이 쌓여 있는지는 정확한 이론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뭐 굳이 원인을 따지고 보자면 혹시나 누군가 불현듯 물어보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야 그 스파게티집 이름이 뭐였지"

"어떤 주식을 사야 되죠"

얼핏 기억 해마 속에 잡혀는 있지만 일상적으로 끄집어낼 수 없는 단편적인 단어들을 써지지 볼펜으로 메모지에 적어둔다. 언젠가는 쓸모 있을 정보로 화려하게 살아날 날을 기약하며 버려지지 않고 삶을 이어나간다.


이런저런 사연이 없음에도 계속해서 버려지지 않는 USB는 내 기억 너머에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정보들의 위력 때문일 것이다. 일단 아무리 오래된 구형 컴퓨터라도 정보기기 형태의 기계화된 물건들 앞에선 난 무한히 겸손해진다. 감히 그것들을 버릴 엄두를 못 낸다. 경외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바라보고 꾸준하게 게으름을 피운다. 존재의 이유를 묻고 따지지도 않는다. 그냥 USB니까 쌓이고 쌓여도 버릴 수가 없다. 아버지 DNA속엔 분명 차고도 넘쳤을 이런 기계화 문명은 나에겐 멀고도 어려운 가까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느 날 열어 본 서랍 안에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수런대고 있었다. 이야기가 배어 있는 쓸모 있는 물건들이 버려질 날을 기다리며 생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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