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를 넘기고 있었다. 아내의 목소리가 잠결에 들려왔다. 갈라진 목소리에 공포가 묻어 있었다. 아이들 방에서 뛰쳐나와 안방문을 열었다. 아내는 어지러움으로 사지가 뒤틀린다며 울고 있었다. 당황했던 나는 손을 주무르고 오그라드는 손가락을 펴주었다. 119를 누르고 상황 설명을 하였다. 구급대원 들은 관내 병원으로 가야 된다고 했다. 과호흡으로 인해 손이 저려 오는 거라며 구급대원은 말해주었다. 인원 초과여서 아이들은 구급차를 탈 수가 없다고 했다. 7층 사는 서준이네 전화를 해야 되나 아내는 주변 신세 지는 걸 싫어했다. 아내만 우선 응급실로 보낸 후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갔다. 운전을 하며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큰 병은 아닐까 몇 년 전에 암으로 이른 나이에 죽은 부성이 생각도 났다. 아이들은 새벽잠에 취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응급실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이런 상황이 조금은 걱정이 됐던지 엄마 괜찮냐며 이야기했다.
"송현정 씨 보호자입니다"
"이리 오세요 보호자 한분만 들어오세요 아이들은 대기실에 있으면 됩니다"
야간 당직자가 안내한 입원실 침대에 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 당연히 아내 일 거라 생각하며 머리맡으로 머리를 숙였다. 까만 눈동자가 당황하며 놀라 했다. 누구지! 나도 놀라 뒤로 물러섰다.
당직자가 죄송하다며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아내는 구석에 누워 있었다. 수액 두 개가 빠른 손놀림으로 혈관과 연결되었다. 주삿바늘이 푸른 정맥 속으로 들어가자 빨간 혈액이 꿀룩이며 주사기안을 채워갔다. 수액은 뚝뚝 떨어지며 혈관 안으로 들어갔다. MRI를 짝으로 검사실로 이동 중에 네 번 오바이트를 했다. 담당 의사는 MRI와 심전도 측정결과 뇌는 이상 없는 듯하다고 했다. 피검사 수치도 정상적이라고 했다. 체내 산소포화도 역시 정상이었다. 어지러운 증상은 이비인후과에서 정밀 진료를 받아 보는 게 좋다고 했다. 새벽 네시쯤 되자 현정이는 어지러움이 안정되는 듯했다. 수액과 약기운이 스며든 듯했다.
"홀아비 되는 줄 알았어"
다음날 예약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마스크로 가려진 눈매는 친절하게 눈꼬리가 내려와 있었다. 여자 의사는 머리를 매만지며 우리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지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수평을 인지하게 해주는 전정신경 두 개에 알 수 없는 이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귀 해부도를 보여주며 달팽이관 밑으로 안테나처럼 생긴 두 개 신경망을 가리켰다. 이 두 개가 사람을 직립보행이 가능하게끔 어떠한 각도에서도 수평을 느끼게끔 두뇌와 연결되어 그런 역할을 해준다고 했다. 듣는 순간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났다. 귀속 두 개의 신경이 온 우주를 떠 받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내 의지 와는 상관없이 눈이 불안하게 움직인다고 했다. 우측 동공이 자발안진이 있는 상태라고 했다. 전두엽에서는 그 신호를 받아서 몸을 바로 세우기 위해 계속해서 일어서려고 하니까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회전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했다. 내 몸 하나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귀속에 붙어있는 그 작은 장기가 온 우주를 떠 받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자발안진, 정전신경 세포염 듣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의학용어를 해부도를 가리키며 환자와 보호자가 이해될 수 있게끔 눈을 마주치며 오랫동안 설명해 주었다.
그런 현상을 표현하는 단어는 추상명사처럼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귓전을 맴돌았다.
아 저것이 전정신경이구나
아 자발안진이 저런 거구나
"주말에 강원도 여행이 잡혀 있는데요 가도 될까요"
"안됩니다. 지금 입원해서 삼사일 푹 쉬셔야 괜찮으신 정도예요 걷거나 움직이면 어지러울 거예요"
"발병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나이가 될 수도 있지만 건강하고 지병이 없는 상태이고 젊으니까 정확한 이유는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바이러스일 수도 있고요"
왜 이게 갑자기 발생됐는지 아내는 궁금해했다. 나 역시 궁금하던 참이었다.
의사는 앞 머리를 두 손으로 쓸어 올리며 길게 시간을 두고 설명해 주었다. 대학병원에서 늘 보던 짧게시 간을 다투던 진료와는 달랐다. 약물과 주사보다는 친절한 의사의 설명에 더 치유가 되는듯했다. 어쩌면 당연했을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옆에서 간호하며 김훈 소설이 생각났다.
김훈은 소설 화장에서 암투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것이 아닌 육체의 고통은 직접적으로 몸을 넘어 전해지지는 않는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상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고통만 있을 뿐이다. 공감이라는 감정은 적어도 이런 한계를 지닌 채 시작한다. 남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인지하고 같이 슬퍼하는 게 공감이다. 남겨진 육체적 고통은 오로지 환자의 몫인 것이다. 어찌하지 못하는 섭리가 그렇다.
오후 네시가 돼서야 진료와 진단서 발급이 마무리되었다. 용평리조트 예약 취소에 필요한 서류는 본인이 아닌 이상 요구서류도 많았고 복잡했다. 어지럼증으로 힘들어하는 현정이가 걱정된 건지, 하루종일 병원에 매여 있어서 짜증이 난 건지 , 안내하는 간호사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후회가 몰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방금 전에 내원했던 송현정 씨 보호자가 확실하더라도 병원내규상 보호자가 오시는 것과 환자가 직접 오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내규였음에도 피치 못할 예외를 두지 못하는 관리조직에 불만이 터졌다. 바뀌는 건 없었다.
리조트에 보낼 소견서에 병명은 이러했다.
"병명 전정신경세포염(H81.2)
이로 인한 현기증 NOS (R42)
전정기능 검사상 우측 자발안진이 있는 상태임 현재 환자 어지러움 남아 있는 상태로 어지러움 악화 및 다른 동반 증상 발생 시 추가 검사가 필요한 상태인 장시간 떨어져 있는 곳에 운전 여행 등은 어려울 것으로 사료됨 일주일간의 안정 치료가 필요함."
오후 5시경 주완. 지완이와 수영장에 갔다. 일주일마다 다니는 수영교실이었다. 수영교실은 처음이었다. 수영모와 물안경을 쓴 아이들이 선생님 뒤를 따라다녔다. 발차기를 하며 수영을 배우는 아이들이 오리 같았다. 수영장 물높이에 맞추어 관람석을 만들어 놓은덕에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보며 중간중간 손을 흔들고 미소 지었다. 밝고 따스했다. 주완이를 보고 있는 내내 긴장이 풀어지고 치유가 되는 듯했다. 지완이는 내 옆에서 핸드폰 달라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내의 아픔과는 무관한 듯했다. 놀러 가지 못해서 아쉽다며 훌쩍댄다. 잊었다가도 또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엄마의 아픔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 아픔을 안다는 게 더 이상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 좀 더 검색을 해보았다.
귀의 해부도는 청력을 담당하는 달팽이관과 균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정신경세포에 염증이 생기면 뇌로 전달되지 못한 신호로 인해 어지럽고 구토가 난다고 했다.
전정세포는 우주를 떠받치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아이들을 씻기고 책상에 앉혔다.
학교숙제인 책 한 권 독후감 쓰기와 필사 쓰기를 봐주었다. 영어 읽기까지 끝내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서 책을 읽어 주었다. 아이들은 피곤했던지 금세 쌕쌕 잠들었다. 늘 하는 하루 루틴이 마무리 됐다.
아이를 재우고 책을 잡았다.
친절했던 의사가 생각났다. 진단서 문제로 짜증 냈던 불친절한 내가 생각났다. 수양 부족이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
인간사 모든 현인들의 늘 한결같은 가르침은
타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거늘 ᆢ
책을 읽으면 모하나 하는 반성을 해본다.
긴 하루였다.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