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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머리핀

아내의 사랑

by 둥이

나비 머리핀

누구에게나 특별한 물건이 있다.

각자의 이야기가 서린 그런 물건들이 하나 둘씩은 간직하고 있다. 설명하자면 말이 많아지는 그런 사연 많은 물건들이 있다. 별다를 게 없는 해어진 신발이나, 물려받은 책가방이나, 철 지난 옷이나, 닳아 가운데가 움푹 파인 도마나, 구멍 난 양말, 오래된 LP판과 녹슨 첫차 아빠의 만년필과 엄마의 묵주 할머니의 목도리 뭐 늘어놓자면 의미 없는 물건은 없는 듯하다. 누구나 한 가지는 이야기로 푹 절여진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애틋한 물건이 나에겐 나비 머리핀이다.

나의 아내는 첫 직장 동기로 만났다. 열명 정도 됐던 동기들 중 현정이만 여자였다. 웃음이 맑고 밝았던 현정이 주변엔 늘 사람들이 많았다. 현정이는 대화하는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능력이 있는 듯했다. 말과 말사이가 매끄러웠다. 상대방이 편안히 말할 수 있게 들어주었다. 눈으로 이야기하고 어깨를 툭치며 장난도 쳤다. 동기들과 선배들은 현정이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자기 의견을 나누는 데 있어서 경계를 넘으려 하지 않았다. 예의를 갖추 돼 그 예의로 거리가 느끼게끔 만들지 않았다. 적정한 거리에서 공간을 유지하며 관계를 이어 나갔다. 언제부터 인가 나는 현정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자꾸 생각이 나고 궁금해졌다. 야근이라도 있는 날이면 늦게까지 기다려 주었다. 힘든 일을 도왔다. 현정이가 좋아졌다.


어느 날 나비 모양의 반짝이는 큐빅 머리핀을 선물한 적이 있다. 그날 이후 현정이가 머리핀을 하고 다니는지 묶고 다니는지 회사에 오면 보이는 거라곤 현정이 밖에 없었다. 나비 머리핀은 왼쪽 머리에서 반짝였다. 머리핀을 안 하고 온날은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머리핀 하나가 마음의 표식인양 하고 안 하고에 하루 운명이 바뀌는 듯했다.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내 마음도 너와 같다고 말해 주는 듯싶었다. 크리스털 빛깔로 빛이 났던 나비 머리핀은 그렇게 내 마음속 깜깜한 망망대해에서 등대 역할을 해주었다. 선배한테 싫은 소리를 듣거나 관계로 힘들어질 때도 현정이의 머리핀이 위로를 해주는 듯했다. 복도를 지나치거나 회의실로 들어가는 현정이의 왼쪽 머리에서 반짝이는 나비 머리핀은 힘든 하루를 버티게 해 준 버팀목이었다. 피로 회복제였다. 보고 있으면 힘이 났다. 보는 것 만으로 자가치유를 해주었다.


현정이가 날 선택해 줄 것 같았다. 한 사람을 오래도록 사랑해 본 사람들은 안다. 그게 아직은 쌍방이 아닌 일방의 감정인 상태에서는 더 그러하다. 머리핀은 나와 현정이를 닿게 해주는 증표였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나비 머리핀을 하고 있는 현정이가 아름다웠다. 마치 나비 같았다. 나비 머리핀을 하고 있는 현정이만 봐도 힘이 솓았다. 반짝이는 나비 머리핀을 한채 밝게 웃는 현정이가 손에 잡힐 듯했다. 머리 위에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은 듯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다. 소설 속 여주인공이 당황할 때 머리핀을 매만지는 부분이 나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니 작가에게도 머리핀이 가지는 의미가 있었던 듯하다.


이십 년 전에 현정이 에게 주었던 나비 머리핀을 꺼내 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쓸만한듯했다. 큐빅으로 다시 해 넣으면 예쁠 것 같아 맡겨 보자고 했다.


" 오빠 내가 그걸 꽂고 다니기엔 머리숱이 없다 흘러내릴 듯하다 그러니까 그건 내버려 두고 브리지 큰 걸로 사주라"


나에게 특별한 물건이 현정이에게도 같을 리 없었다.

반짝이는 머리핀을 꽂고 마냥 밝게 웃던 현정이는 나의 삶을 생기 있게 물들게 해 주었다. 어쩌면 삶 속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듯하다.


나비 머리핀 잘 고쳐주는 집을 찾아봐야겠다.

나의 삶을 생기 있게 만들어준 나비 머리핀에 새 생명을 넣어줘야겠다.


똑딱 소리를 내며 왼쪽 머리 위에 사뿐히 내려앉을 반짝이는 나비 한 마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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