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잠이 안 온다며 베개를 주문했다. 베개가 바뀐 그날 저녁 난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아내는 베개의 곡선을 가리키며 이 부분을 목선에 닿게끔 해서 자면 잠이 잘 올 거라 알려 주었다. 수면공학을 연구하는 회사에서 디자인한 베개라는 말까지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머리와 목선을 편안하게 잡아주어 뒤척여도 쉽게 잠이 올 거라고 했다. 그날 이후 아내는 마치 지금까지 잠을 설쳤던 이유가 베개 때문 이었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잠을 자는 듯했다. 어디까지나 수면공학을 연구하는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고, 그것도 평균적인 경추라인의 수치를 적용하여,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판매되는 제품이였 던 지라, 내가 그 수치에서 벗어난 평균 이하의 사람이라 말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아
난 별 불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찌 보면 늘 그렇듯 쓰다 보면 길들여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사물을 대하다 보니 베개 역시 내 몸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이 들었다. 베개의 디자인이야 어쨌든 머릿속에 고여든 생각이 많은 날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염소 한 마리, 염소 두 마리, 별 하나, 별 둘 셀 수 있는 것들을 세어가며 생각을 지우려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내겐 잠은 수면공학 연구결과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난 잠자리가 바뀐다거나,
베개나 이불이 바뀐다거나, 침대가 에이스라는 것들에 좀 무딘 편에 속한다. 솔직히 바뀐다 해도 잠이 오는 것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자기 전에 커피를 마셔도 힘들지 않은 편이다. 그런 것보다는 다음날 월말 회의가 있다던가, 갑자기 글감이 떠오른다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상황이 되면, 쉬 잠이 오지 않는다. 베개가 바뀌었다는 사실보다는, 바뀐 베개가 꽤 괜찮은 베개여서 잠이 순식간에 스르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마도 스르르 쏟아지는 잠이 언제 올까 생각을 하다 보니, 뒤척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어렸을 적 베개는 엄마가 쌀겨를 넣어 만들어 주었다. 목선과 얼굴을 바스락거리는 쌀겨가 소리를 내며 잡아 주었다. 머리를 뒤척일 때마다 귓속으로 파고드는 묘한 그 소리는 전혀 인체 공학적이지 않았다. 거의 소음에 가까웠지만, 이상하리만치 사람은 쉽게 사물에 길들여진다. 어느새 귀에 거슬리고, 따갑게 들리던 그 베개소리가 귀뚜라미 소리처럼 들려올 때가 있는데, 아마도 그때가 잠이 오려고 하는 순간 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삯바느질을 거쳐 길쭉하고 둥글게 각진, 마치 통나무처럼 생긴 베개가 만들어졌다. 목침처럼 제법 높이가 있는 베개는 분명 아버지 베개여서 무게도 꽤 무거웠다. 베개싸움이라도 하는 날엔 무조건 아버지 베개를 선수 쳐 잡아야 했다. 벽돌처럼 생긴 아버지의 베개는 휘드리기에 좋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그 베개를 다시 꺼내 사용한다면 그때 느꼈던 편안한 수면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딱딱하고 바스락거리는 베개가 좋을 리가 없다. 그 옛날 엄마가 만들어준 베개를 베고도 잠만 잘 잤던 건, 그 베개가 가진 소음과 불편함을 느낄 수 없어서 인지도 모른다. 온종일 놀다 집으로 돌아오면, 난 초저녁부터 몰려오는 잠에 취해 꾸벅꾸벅 고개를 까닥거리며 밥상머리에서부터 졸았다. 잠은 꿀맛처럼 자도 자도 좋기만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잠이 많았고, 그건 베개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머리 붙일 때만 있으면 잠이 오던 때가 있었다.
난 한때 해외출장을 자주 다녔다. 왕성하게 일할 나이인 것도 있었지만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의 결정권자였다 보니 중국과 일본 출장을 수시로 다녀야만 했다. 그것도 모자라 구미와 대구로 이어지는 지방출장도 하루가 멀다 하고 다녀였다. 그렇다 보니 한번 출장길에 이삼일은 호텔이나 모텔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나는 출장 중에 몇 가지 바뀌지 않는 습관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잠자리 습관이었다. 난 특히 중국 출장길에는 웬만해선 샤워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만 해도 중국 호텔의 수질은 좋지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난 호텔에 들어가서 손과 발만 씻고 침대에 들어가 마치 관짝에 들어가 있는 사람처럼 좌우로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잤다. 머리가 헝클어 지면 다시 머리를 감아야 되고, 그럴라 치면 스프레이와 왁스로 또 손질을 해야 되다 보니, 이런 걸 방지하려면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자는 방법 밖에 없었다. 대부분 호텔의 베개는 전혀 인체공학적이지 않아서, 그건 마치 호텔로비 소파에 걸쳐있는 허리 뒷받침으로 쓰기에 적합할 정도로 푹신하게만 만들어 놓은 거라, 그 높이도 상당했지만, 뒤척이는 머리를 편안하게 잡아주지는 못했다. 그렇다 보니 생각해 낸 건 호텔방에 쌓여 있는 두꺼운 면수건을 두세 개 접어 목선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베개를 만들어 사용하는 거였는데, 꽤 효과가 좋아질 좋은 수면은 아니더라도, 나쁘지 않을 만큼 눈을 붙일 수는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좌우로 뒤치닥 거리지 않고 관짝에서 잠을 잔 사람처럼 그 넓은 퀸 사이즈의 침대 중 아주 작은 한쪽 부분만 움푹 파여 있게 댄다. 누가 봐도 이상할 법한 정경이다. 왜 굳이 그 넓은 침대를 그렇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줄 수는 없었다. 오성급 호텔에서 비좁게 움직이지 못하고 잠을 잔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푹신한 베개를 놔두고 딱딱한 면수건을 베개 삼아 잠을 자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