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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

장인어른이 좋아했던 술자리

by 둥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생각나는 술자리가 있다.


그런 술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각이 나고, 더 그리워진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런 자리는 원치 않는 자리도 있었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체 재미있는 자리도 있었다. 술자리의 모습은 시간과 장소와 사람만 바뀔 뿐, 언제나 술자리의 정경은 비슷했다. 살아오며 많은 사람들과 술자리를 했고,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술자리를 많이 했는데도, 술자리가 그리워지는 것은, 술을 잘 먹어서도 아니었고, 술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술자리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대화들이 오간다. 그런 것들은 평소엔 쉽게 나눌 수 없는 형태 없는 것들이었다. 술 한잔을 나눌 때, 손끝에서, 눈빛에서, 표정에서 그런 건들은 의도하지 않게, 계산되어지지 않은 언어로 전달이 되었다. 그런 건 술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술의 언어였다.


장인어른은 술을 좋아했다. 언제나 반주를 즐겨했고 자식들과도 때가 되면 술자리를 가졌다. 술을 맛있게 드셨던 장인어른은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도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았다. 같이 대작하는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는 재미있었다. 술자리를 띄우고 상대방의 말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장인어른한테는 쉬운 일이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장인어른은 또 거기에 맞춰갔다. 그만큼 술자리를 즐기고 좋아했다.


그런 술자리엔 오래된 친구도 있었고, 의무적으로 때워야 했던 직장 동료들도 있었고, 어느 순간은 친구의 친구들이나 동호회 회원들도 있었고, 그리고 내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귀인들도 있었다.


그렇게 좀처럼 잊히지 않는 그런 장소와 시간이 누구에게나 하나씩은 있다. 나에게도 그런 술자리가 있다.


나는 장인어른을 좋아한다.

그건 내 아내의 아버지라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주관적인 감정에 가깝다. 장인어른을 처음 뵙고 인사드린 지 이십 년이 넘었다.


장인어른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가끔씩 술자리를 가졌다.


장인어른과 나눈 술자리 중 잊히지 않은 술자리가 있다. 장인어른은 술을 즐겨 드셨다. 나와는 대작이 안 되는 주량이었다. 가족들과 먹을 때도 장인어른은 분위기를 주도하며 이끌었다. 아마 평소 지인분들과도 그러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그날은 김장하는 날이었다. 해마다 장모님은 김장을 거르지 않았다. 빨간 다라 안으로 다진 속이 쌓여 있었다. 빨간 고춧가루에 버무려진 채소들이 먹음직스러웠다. 멸치액젓과 마늘향이 배추 속으로 베어 들어갔다. 해보면 알겠지만 김장은 속 만드는 게 일이다. 그 외의 일들 즉 절여진 배추에 빨간 속을 무쳐가며 김장김치를 만드는 일은 고단하지 않았다. 장인어른의 임무는 속을 만드는 일이었다. 채를 썰고 고춧가루를 붓고 양념과 하얀 쌀죽을 넣는 것까지는 장모님의 몫이었지만,

골고루 비비고 섞어 주는 것은 장인어른 몫이었다. 이런 일의 할당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 일들로 정해져 버린다. 장인어른은 다진 속을 맛보며 멸치액젓을 더 넣어야 될지, 고춧가루를 더 넣어야 될지, 장모님께 말해 주었다. 그때쯤 장인어른은 주방에서 아까부터 끊고 있던 수육을 꺼내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먹기 좋게 썰기 시작했다. 수육처럼 쉬어 보이는 음식도 막상 해볼라 치면 불조절이며 조리시간등에 따라 그 육질이 달라지게 되는데, 장인어른이 내다준 수육은 흠잡을 때 없이 맛있었다. 장인어른은 수육 장인 있다.


그때부터였을까

막걸리 몇 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절여진 배춧잎과 빨간 김장 속 그 위에 부드러운 수육을 얹어 장인어른 입속에 한입 넣어 드렸다. 그리고 장모님과 아내에 입속에도 포개여 넣어 드렸다. 그리고 내입에도 그 맛있는 수육이 배춧잎에 쌓여 들어왔다.


막걸리 몇 잔에 이미 김장 만드는 일보다 술맛이 더 좋아져 갔다. 아내는 조금만 먹으라며 잔소리를 했다. 장인어른은 막걸리보다 소주를 더 좋아했다. 그것도 빨간색 진로소주, 장인어른에 비하자면 주량이 약했기에 조금씩 먹는다고 나름 반잔씩 먹던 술이 어느새 넙쭉넙쭉 원샷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술이 잘 넘어가는 날이 있다. 입안을 돌아 기도를 타고 내려가는 술맛이 물맛처럼 부드럽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짠 건배를 하고 술잔을 입술에 살짝 데었을 뿐인데 어느새 고개가 젖혀지며 빈술잔만 남는, 그런 술자리가,

어느새 소주와 맥주가 없어졌다. 아마 그때까지도 난 그래도 취하지 않고 말을 할 수가 있었다.

장인어른은 사위가 잘 먹는 게 좋았던지 농장에서 담근 복분자주를 꺼내왔다. 건강에도 좋고 남자한테도 좋아서 이 술은 꼭 먹어야 된다며, 난 장인어른 곁으로 바짝댕겨 앉아서, 장인어른이 따라주는 술을 먹었다.


복분자주는 소주보다 더 잘 넘어갔다. 달달해서 술 같지 않았다. 한잔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많아 보였던 복분자주가 바닥이 보였다. 이때쯤 이미 나는 조금씩 말이 꼬여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난 취기가 올라오면 말수가 줄어들었다. 술버릇은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날 난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비실비실 웃기만 한 체로, 말없이 술만 먹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장인어른에게 그만 주라고 말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완곡하게 말리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다. 장인어른과 허물없이 껴앉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남편이 싫지는 않은 듯했다. 어느새 술자리는 그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복분자주가 사라진 자리엔 양주 한 병이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긴 유리병 안에 호박색으로 채워진 양주가 술잔에 채워졌다.


콸콸콸 잔으로 내려오는 소리가 청아했다. 호박색 양주는 물처럼 부드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양주는 역시 양주답게 입안과 기도를 흩고 지나갔다. 진한 술향기가 입에 남았고, 난 두어 잔을 먹고 난 후 다리마저 풀여 그대로 누워야만 했다. 장인어른은 그날도 술 한잔 드시지 않은 듯 편안했다. 나는 실려가듯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난 엘리베이터 안에서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자꾸만 머리가 벽에 부딪쳤다. 그날 이후 난 자주 그때 장인어른이 해주신 부드러운 수육과 한없이 좋기만 했던 술자리를 생각한다. 살아오며 우리는 더없이 좋기만 한 시간들을 차곡차곡 나누며 살아갔다. 장인어른은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사위의 뒷모습이 보기 좋았나 보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난 장인어른 보다 더 빨리 취했고, 더 많이 비틀거렸다. 난 장인어른과 나누는 술자리를 좋아한다. 아무리 취해도 걱정이 없는 건, 나누고 싶은 말들이 아직도 많아서인지 모른다. 술의 언어로 나누는 술자리에선, 숨겨야 할 것들이 그리 많지가 않다.


그날 아이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됐는데 하는 생각은, 비틀거리는 내 몸을 통제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아빠의 그런 모습이 기억에 남았 나 보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이들은 그날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내 나이만큼 나이가 들었을 때 그때쯤 조금은,사위의 비틀거리는 뒷모습을 보고 미소 짓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아마도 장인어른과 나누는 이런 술자리는 살아가며 다시는 없을지도 모른다. 항암치료를 시작하신 장인어른에게 이제 술자리는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아닌지 모른다. 밥심과 술심이 없는 무료한 삶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장인어른은 식사도 잘하시고 치료도 잘 받고 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한 번쯤은 장인어른과 늦은 밤까지 술자리를 나누고 싶다.


장인어른이 좋아하는 술자리가 영원히 이어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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