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만 좋아하고 한 명은 덜 좋아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두 명 다 평균이상으로 좋아한다. 평균이상이라 함은 복사단원들이 이주에 한 번씩 모여 복사가능 일정을 본인들이 자원하게끔 되어있는데, 우리 쌍둥이들은 네 번씩 자원을 했다고 하니 이건 평균의 두 배나 되는 횟수이다.
물론 아내의 수고가 예상된다지만, 아이들한테 "왜 네 번씩이나 지원을 했느냐 엄마 힘들잖아" 이야기를 해도 별 소용이 없다. 아이들은 복사단뿐만이 아니라 성당에서 하는 대부분의 예식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열한 살의 마음이 이래도 되는 걸까 핸드폰도 좋아하고 책 읽기도 좋아하지만 아이들이 그것보다 더 좋아하는 게 성당이다. 가끔 아이들에게 "그게 왜 좋아" 물어도 보고, 곰곰이 생각도 해보지만 딱히 이거다 하는 정답을 찾을 수 없다. 그냥 좋다는 데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열한 살의 천진함과 순수함이 없는 것도 아니고, 또래 아이들만큼 적당히 좋아하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평균 이상으로 성당을 사랑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수정처럼 투명하고 순수하다. 표정과 말투와 행동에서 배어 나온다. 좀처럼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쌍둥이들이 좋아하는 성당은 아이들에겐 편하기 만한 놀이터 일거라고, 성당에 온 마음을 빼앗아 갈 만큼 좋은 게 있어서 그럴 거라고, 그래서 자다가도 성당 가는 날이면 벌떡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건 학교 가는 날의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깨워도 잘 일어나지 못하는 주완이는 성당 가는 날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 성가를 부른다. 장난꾸러기였다가도, 금세 차분해져 미사놀이를 한다. 마치 주임신부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오늘도 새벽복사가 있는 날이다.
새벽 다섯 시 알람이 울린다. 엄마보다 더 빨리 아이들은 일어난다. 혹시라도 엄마가 늦게 일어날까 봐 그 전날에도 여러 번 당부를 잊지 않는다. 아이들은 꿈지럭 대지도 않고 하얀 복사옷을 꺼내 입는다. 두 명이 같이 복사 서는 날이 아닌데도 자주 같이 따라간다.
누가 쌍둥이 아니 탈까 봐 성격은 너무 다르지만, 찾아보면 같은 것들이 많이 있다. 그냥 자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고 말하는 아빠를 뒤로 하고 쌍둥이들은 새벽길을 나선다.
12월 30일 현관문이 띠리리 열린다.
영하로 뚝 떨어진 찬 공기가 아이들의 얼굴로 덮쳐왔다.
성당으로 가는 길,
새벽은 먼 곳에서 오고 있었다.
눈앞은 짙은 어둠에 싸여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은 먼 곳에서부터 옅어져 갔다. 산본성당을 둘러쌓고 있는 수리산은 짙은 어둠에 가려 선명한 윤곽만 남아 있었다.
그 새벽을 거슬러 아이들은 성당으로 간다. 마치 신심 좋은 성도들처럼, 짙은 어둠을 뚫고, 열한 살 쌍둥이들의 새벽 복사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겐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