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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

글쓰기 습관에 대하여

by 둥이


글이 잘 써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대부분 그런 날은 바람 부는 좋은 날도 있었고, 하늘이 흐린 날도 있었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도 있었다. 번개가 치는 날도 있었고 구름 한 점 없는 날도 있었다.


때때로 막힘없이 써지는 날도 있었지만, 어느 날은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도무지 문장이 힘을 받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억지로 이어 붙인 문장들은 가야 할 길을 잃었다. 어느 날 그렇게 비가 오듯, 바람이 불듯, 글이 잘 써지는 날엔 아무 방해도 받지 않은 곳으로 들어가 글을 모아 밥을 짓듯 글을 짓는다. 맛있는 밥이 되려면 불조정을 잘해야 되는데, 쌀알속으로 걷힌 밥물이 자자들 때쯤 불길을 꺼내 남아있는 화기만으로 마지막 뜸을 들여야 찰기 있는 밥이 된다. 글쓰기도 마찬 가지여서, 수사가 긴 언어들로만 이어진문장들은 찰기가 없어서 읽히지 않는다. 심플하면서도 강한 흡인력이 있는 문장들은 불길을 꺼내 남은 화력으로만 지어낸 맛있는 밥알처럼, 불필요한 언어들을 걷어내야 한다. 걷어내고 또 걷어내고 뼈대만 남겨둬야 한다.

근데 이게 쉽지가 않다.


글이 잘 써지는 그런 날이 그렇다고 특별한 날은 아니다. 대부분의 날은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여느 날이었다. 그러다가도 벼락처럼 우연이 찾아오는 어는 날일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은 회로 속에 얽혀 있는 언어들이 꿈틀거리며 스스로 문장 속으로 들어가 조금씩 글로 만들어진다. 한번 떠오른 생각은 어느 단어 어느 문장과 만나고 떨어지며 더 증식해져 간다. 수많은 줄기세포가 세포분열하듯 문장으로 이어져 간다. 글은 어느 순간 쏟아져 나온다. 소설을 읽다가도, 에세이를 읽다가도, 산책로를 걷다가도, 두꺼비집 전원 스위치를 팍 올렸을 때처럼, 온 세상은 순식간에 언어로 둘러싸여 있게 된다.


시간 속에 묻혀 있는 보물을 캐내듯 주제를 캐내고 언어를 캐내어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이고 거기에 의미를 더해준다.


장인어른의 병환도 어느 날 벼락처럼, 그렇게 피할 수 없는 소나기처럼 다가왔고, 장인어른의 항암 시간은 나에게 글 아닌 다른 것으로 담아낼 수가 없었다. 일상의 평온한 시간들과 아름답기만 한 풍경들과 울창하게 커나가는 나의 아이들을 온전하게 또렷한 질감으로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은 나로선 한 획 한 획 글자와 언어로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더 깊숙이, 더 세밀히 담아낼 수가 있었다. 글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를 보여줄 방법이 없었고, 삼십 년 전 외할머니를 보내고 고추밭에서 소리 내어 울었던 엄마의 슬픔을 찾을 수도 없었고, 아내의 입술 주위로 그날의 감정이 담겨 있음을 그래서 너무 사랑스럽다는 말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대부분의 풍경들이 우리 주변에 있었다. 계절의 변화와 해가 지고 밤이 오는 것과 긴 추위를 견디고 나면 곧 봄이 올 거라는, 어찌 보면 좀 싱거운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는, 사물을 관찰하고 감동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간다. 글쓰기는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는다.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게 하여, 관계를 가지게 해 준다. 어느 날 성찰을 해보면 글쓰기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 준걸 알아가게 된다. 얕은 것들에 담겨있는 소중함을 알게 해 준다. 감사할 일이다. 보이지 않은 것을 보게 해 주는 것 그건 또 하나의 마법이자 믿음이다. 삶을 윤택하게 살게 해 준다. 오감으로 자연을 맛보게 해주는 게 글쓰기의 혁명이다. 마치 꿀벌의 더듬이처럼,


신체 장기중에 사용할수록 튼튼 해지는 장기는 뇌조직과 근골격이라고 한다. 생각의 힘은 전두협의 뇌세포를 자극하여 뉴런증식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제자백가의 시대 즉 춘추전국시대였던 기원전 5~6년 세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까지도 그 철학의 가르침이 살아있는 스승이자 철학자들이 많이 존재했었다. 서양의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동양의 공자 맹자 노자 장자와 같은 철학자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많은 시간을 깊게 생각하고 서로 논쟁하며 진정한 삶과 가르침을 위해서 사유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깊게 생각했다는 점인데, 공교롭게도 이 시대의 평균수명은 삼십 세에서 삼십오 세 정도였지만, 이런 철학자들은 거의 평균수명보다 두세 배가 넘는 수명을 유지했다. 생각의 힘이 뇌조직을 활성화시켜 뇌를 건강하게 만들었고, 건강해진 뇌는 신체리듬과 혈액순환을 조절하여 장건강을 촉진시시켜 결국 팔구십 세까지 장수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인간은 오감으로 느끼고 판단하고 정보를 분석하여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에 비해 꿀벌은 그 작은 더듬이로 일곱 가지 감각을 느끼고 판단하고 정보를 분석하여 적을 구별하고 꽃과 꿀을 찾아낸다.


우리에게는 글쓰기와 책 읽기라는 훌륭한 더듬이가 있다. 쓰다 보면 보인다. 보이지 않던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윤택하고 풍성한 삶 글쓰기의 혁명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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