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고추밭
”올해는 힘들어서 안되겠어! 조금만 심자고!“
뿌연 안개를 밀치며 엄마와 아버지는 고추밭으로 일을 나간다.
물오르는 소리가 들려 올때쯤이면 농부의 발걸음은 바빠진다. 겨우내 숨죽인 땅의 기운이 흙위로 올라오는 때도 이때즈음이다. 보슬 보슬 해진 흙을 갈아엎는다.흙냄새가 봄바람에 일렁인다 꽃내음 만큼이나 향기롭다. 땅속의 흙이 마른 흙과 뒤섞이며 밭고랑을 만들어간다. 땅속의 갇혀 있던 젖은 흙은 싱싱했다. 두둑하게 고랑과 고랑을 이어 나간다. 마치 먼곳에서 밀고 오는 너울 물결 같다. 봉분처럼 올라간 긴 고랑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저 긴 고랑에 고추모를 언저 심어야 한다. 올핸 적게 심으신다고 이야기 했다. 심어야할 고추모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심어도 심어도 고추모는 줄지 않았다. 겨우내 볼품 없고 메말랐던 밭이었다. 밭고랑으로 이어진 밭은 그제야 아름다웠다. 일구고 심기에 적합했다. 까만 비닐을 덮어 쓴 고랑 위에 삼천포의 고추모는 등간격으로 심어졌다. 흙을 움켜 잡은 여린 고추모는 봄바람에 출렁이며 메말랐던 뿌연 밭을 녹색 풀밭으로 만들어 주었다. 녹색 풀밭에서 솨아악 바람 소리가 지나갔다.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곡소리를 날때즈음 고추모 심기가 끝나간다. 고된 일이다. 자식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져 가지만 엄마는 신이나 보인다. 늙수그레한 부모님의 잔소리가 짱짱하니 정겹다.
“ 비닐위에 흙을 잘 덮어줘야 고추모가 일어선다 ”
“ 좀더 깊숙히 심어라 고추모 넣어주고 젖은 흙으로 덮어 줘야 되”
“ 모가 힘들다 그래! 겨울 김장속에 이놈들이 들어 앉아야 제 맛이 나는거라구“
늦지 않게 내려준 빗물을 들이 마신 고추모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햇볕을 향해 무섭게 올라간다. 고추모의 밑단은 어른 종아리처럼 튼실해지고 나무결의 무늬를 띠어간다. 고추모는 과실나무 처럼 풍채가 커져간다. 땅의 기운이 무섭게 올라 갈때쯤 고춧대는 옆단의 고춧대와 경쟁하듯 주렁주렁 풋고추들을 만들어 낸다. 그 작은것들이 그 많은 고추들을 끝없이 길러낸다. 따도 따도 계속 열리고 익어간다. 여름 한낮 뜨거운 햇볕에 고추들이 익어간다. 한번 익어가기 시작한 고추는 따내는 속도와 익어가는 속도가 뒤바뀌어 간다. 한낮 햇볕과 밤 이슬과 하늘의 빗물과 바람과 아버지의 수고와 엄마의 잔소리가 합작해 만들어 놓은 예술품이다. 고추 안에 햇볕과 바람과 이슬과 땀방울과 엄마의 잔소리가 묻어 있다. 고추가 저리 큰데는 이유가 있을진저! 그때쯤 되면 아이며 어른이며 노인이며 고추밭에 불려 나간다.
해뜨기전 해보다 먼저 일어나 고추밭으로 간다. 이슬에 흠뻑 젖어 있는 고추 고랑길을 드다드는 일은 고된일이다. 군락으로 줄맞줘 서있는 자태를 보자니 움츠려 든다.한고랑씩 맡아서 헌 비료 부대에 빨간고추를 따 담는다. 아이키보다 커버린 고추밭이 마치 깊은 산속 같다. 앉아서 따다 보면 앞도 옆도 고추잎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다. 나무에 주렁주렁 빨간 고추가 달린듯 하다. 밑단 부터 익어가는 고추들인 지라 허리를 필 결이 없다. 그 빨간 고추를 찾아내 하나하나 딴다 옷단이 젖고 바지 밑단이 젖고 머리에 뒤집어쓴 수건이 젖는다. 속옷까지 다 젖는다. 고추밭 가장자리 둔덕으로 심어놓은 강낭콩이 콩깍지 안에서 익어갔고 제 멋대로 엉켜있는 호박넝쿨 사이사이 애호박이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어른키보다 커져버린 옥수수에 허연수염이 늙어갔다. 아직도 한참을 따야 된다. 새벽녂 땄던 그자리에 고추가 어느새 다시 익어갔다. 비료 부대 한가득 빨간 고추가 담긴다. 어깨에 지고, 두팔로 끌어, 고추밭 둔덕으로 옮겨 놓는다. 해가 뜨거워 지기전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에게 고추밭은 놀이터 이지 않았을까!
자식들에겐 힘든 노역 이지만 엄마에겐 신성한 성역 아니었을까! 아마도 노지에 심어 그나마 돈이 되었던 몇 안되는 작물이기도 했거니와 김치 나누시는걸 좋아하셨던지라 고추와 마늘을 극진히 돌보 셨으리라!
고춧대에 달려 익어가는 빨간 고추만 보면 어릴적 이슬에 젖어가며 따고 있는 푸른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도 엄마와 아버지는 그 고된일을 힘들다 마다 않고 웃으며 일하신다. 놀라울 뿐이다.
”건고추로 만들어 팔기도 하고 고춧가루로 내어 팔기도 하고, 고추농사가 힘은 들어도 재밌어!“
어쩌다 한번 품이 드는일을 도와 드리고 나선 고추밭 그만 하시라고 쏘아붙였다 제풀에 지쳐 우는 격이다 하는 일의 대부분이 회의인 내가 관계와 말들속에 부딪혀 갈때쯤.. ᆢ 고추밭의 고됨을 생각하며 반성 하곤 한다.고춧모을 더 줄이는 선에서 애교 섞은 잔소리로 보채봐야 할 것 같다.
엄마에게 아버지에게 고추밭은 놓지 못 할 일이었음을ᆢ 아마도 그것은 생계를 떠난 두 분 만에 소중하게 간직하고픈 일일 것이다. 그것은 바람이 불 듯 비가 오듯 시간이 흐르듯 산새가 울듯 그냥 자연스런 것이리라! 고랑을 일구고 거둬 들이는 것들이 두분 에게는 고됨이 아닌 살아 있다는, 살게 하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삶의 무게를 버티게 하는 농부라는 이름, 부모라는 이름의 아름답고도 막중한 정체성이 아니겠는가.
시절 탓이라고 해야할까! 척박 했을 세상, 믿을 거라곤 뿌리고 거둬 들이는, 땅을 일구어 땅의 소출로 자식을 거두고, 무한히 퍼주기 만한 했던, 지난했을 두분의 삶이 가여워, 곁을 지키는 것 말고는 해드릴것이 없어 마음 한편이 고추에 절인듯 애려온다.
갓따온 빨간 고추는 빨간 고무대야 안에서 씻겨 먼지를 털어내고 건조기 안으로 들어가 제 몸의 물기를 버리고 건고추로 만들어진다. 그래야 상품가치가 높아 진단다. 예전에는 가을 햇볕에만 말린터라 소낙비라도 오는 날이면 빨랫줄에 걸린 옷가지 보다 더 빨리 거둬 들여야 엄마의 잔소리를 피할수 있었다. 앞마당에 떨어지는 소낙비는 흙먼지 뽀얗게 굴리며 고추위로 튕겨 오른다.
”비온다 고추 거둬라 모하냐 고추 거두라니!“
”가빠 거둬 안채로 들여놔라 모한다니 “
앞마당으로 소마당으로 큰길가에도
지붕위에도 봉당 위에도 안방 사랑방 부엌 부뚜막위에도 널수 있는 모든 장소를 찾아 엄마는
고추를 너셨다. 온 동네 집안 구석구석 고추 내음이 떠나지 않았다.
허옇게 색이 바랜 파아란 가빠 위에 빨간 고추가 널려 있었고 내리쬐는 가을 햇볕에
몇주 몇달 동안을 바짝 말려야
잘마른 명태처럼 바사삭 부셔지는
검게 변한 자태를 만날수 있었다.
그때쯤 검게 변하지 못했던 고추들을 추스려
큰 검은색 재봉 가위로 고추배를 가르고 계신 엄마와 할머니는 늦은밤 새벽까지 가위를 놓지 못하셨다. 칭얼대는 아이는 초저녁 잠이 많았던 터라 엄마 곁에서 잠이 들었다. 두런 두런 ! 엄마와 할머니는 밀려 오는 졸음을 이야기로 쫒아가며 마당 가득 쌓여있던 고추배를 가르고 나서야 짧았을 한뎃잠을 주무셨다. 밤새 피오 오르던 푸른 모기향만이 두분을 지켜 주었다. 지금도 검은색 재봉 가위가 고추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사각 사각!
엄마는 고추밭을 떠나지 않으셨다.
엄마의 고추밭에서 고추가 빨갛게 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