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부뚜막

엄마 아빠의 사랑 이야기

by 둥이

엄마는 한 시간째 통화 중이다

수다를 좋아하시는 엄마는 전화기를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신다 얼핏 만 들어 보아도 그리 중요한 내용은 없는 듯한데도 방금 전에 했던 얘기를 다시 꺼내 이야기하다가 ᆢ그새 생각이 났던지 누구네 소식 들었냐며 화젯거리를 만들어 통화를 이어 나간다 그쯤 되면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는 대화를 지레 포기하며 가던 길 가라는 양으로 뚱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시곤 하신다 전화 통화만큼 좋아하시는 건 잠이다 집안 내력인 듯하다 몸이 좀 찌뿌둥하다거나 욱신거린다거나 체기라도 있다 싶으면 이불 펴고 우선 눕고 보는 게 베인 습관이다 엄마 성격은 다혈질적이고 급하고 화가 날 땐 거침없이 소리도 지르고 잔소리도 많이 하신다 말수가 적으시고 조용하신 아버지와는 천양지차였지만 서로의 다름에 기대어 그렇게 긴 세월 해로 하며 지내고 계신 듯하다



가난했던 우리 집엔 언제나 동네 아주머니들과 할머니 그리고 또래 아이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았다 인심 좋고 퍼주기 좋아하는 엄마는 엄마의 가난으로 다른 사람의 가난을 챙겨 가며 사셨다 고구마 하나 옥수수 하나 밥한술 나누어야 적성이 풀리신 듯했다 집안 수돗가엔 항상 두세 명의 동네 아줌마가 교대하며 온 동네 소식을 물어다 주었고 누구네 아들 며느리와 손주의 소식을 먼저 듣고 다른 이와 그들의 소식으로 이야기하곤 하셨다 흉어웠고 막역한 그런 모습이었다



식성이 좋으셨던 엄마는 꽤 오랫동안 식탁 앞에 앉아서 남은 잔반을 해치우셨고 그 덕분인지 작은 체구에도 배가 많이 나온 체형으로 변해갔다


아버지의 우성 유전자를 물려받았어야 되거늘 작은 키와 짧은 팔다리 가느다란 발목은 어찌 그리 외탁을 했는지,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위대한 유전자의 힘 아니겠는가!!



엄마의 부뚜막은 항상 깨끗했다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는 적이 없으셨다 마치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 쓸고 닦고 하는 사람처럼 행주와 도마는 반짝반짝 윤이 났고 수저와 국자는 제자리를 벗어 있지 않았다 녹슨 양철대문 안쪽, 까만 두 개의 솥단지와 시멘트로 발라댄 부뚜막은 그렇게 먼지 쌓일 일 없이 일 년 열두 달을 살아냈다 지금도 엄마의 부엌과 싱크대는 국물 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아 며느리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엄마는 물 장난 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한마디로 물을 물 쓰듯 수도꼭지를 잠그시는 법이 없다 설거지 할 때나 빨래를 할 때나 김치를 담그실 때도 빨간다라 가득 물이 넘쳐 나는데도 잠그지 않으신다 옆에 보고 있노라면 대반 엄마에게 목청을 높이기 일쑤다 물속을 손으로 휘젓고 이리 휘청 저리 휘청 ᆢ엄마의 물 욕심은 그렇게 유별 났고 아버지는 그런 엄마의 물욕심을 고쳐 보려 평생을 잔소리하셨지만 여전히 싱크대의 수도꼭지는 잠그지 않은 채 설거지를 하시는 걸 보면 나라법으로 금지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욕심 다음으로 엄마가 공을 들이는 거는 김치 담그기이다 아버지가 길러낸 갖가지 푸성귀들로 사계절 시절에 맞게 김치를 담가 내신다 제철에 맞게 소박이, 물김치, 알타리 김치, 동치미, 오이지, 열무김치, 배추김치, 김장김치 일 년 내내 김치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봉당에서 거실에서 수돗가에서 마당에서 김치를 담그는 어디 곳이 든 , 가득히 빨간 다라에서 버무려지는 제철 김치들은 이웃과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 맛없어도 잡숴봐


- 맛없어도 먹어봐라 며느리가 좋아할지 모르겠다


- 나누니 더 맛있지 모냐


김치 속에 버무려진 후한 인심이 입속으로 들어간다 받는 것 만으로 배가 불렀다 안 먹어도 행복했다



아버지가 벌려 놓은 바깥 농사일을 거드는 일은 엄마에겐 늘 힘들고 벅찬 일이었지만 엄마의 근력이 허락하는 수준에선 최선을 다하셨다 그 덕분인지 대부분의 농사일은 아버지 몫이 되었다 여러 작물 중에 마늘과 고추는 그래도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랄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 김치 만들어 주위에 나눠 주기를 좋아하셨던 지라 김치 양념에 절반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마늘과 고추는 엄마가 힘들 때도 정성을 다해 돌보고 키우셨다 마늘과 고추에 대한 극진한 대우가 다른 작물에 비해 어찌나 다르던지, 그것들을 씨부리기 위해 땅을 뒤 업고 고르고 밭고랑을 만들 때부터 어느 땅에 심을 것인지, 고랑의 너비와 모종의 종류 등 그 토질과 태생부터 엄마의 잔소리는 더해져 간다 단지 심는데서 끝난다면야 극진한 대우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심고 난 이후부터 밭고랑으로 올라오는 풀 한 포기와 땅의 마름정도와 작물의 성장 주기 김메기등 성장 발육단계의 모든 농사일을 일일이 체크하고 최상품의 마늘과 고추 수확을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밭일을 해나가신다 아버지는 이런 엄마를 보며 고추와 마늘은 나보다 더 대접받으며 살아간다며 자주 이야기 하신다 그 외 모든 작물은 아버지의 몫이다



엄마는 화가 나시거나 꾸짓으실때면 말과 손이 동시에 우리를 향해 돌진했고 가까운 곳 손에 잡히는 데로 ᆢ부짓깽이와 빗자리로 볼기짝을 때리셨다


딱 한번 아버지는 공부를 게을리한 우리를 불러 회초리 만들어 오라고 하신 적이 있었고 그 회초리로 한번 종아리를 때리신 적이 있었다 손에 잡히는 데로 부지깽이와 빗자리로 훈계하셨던 엄마에 비해 딱 한번 이었지만 아버지의 회초리는 우리 형제들을 옭아매는 서슬 퍼런 법령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마디로 아버지의 딱 한 번의 회초리는 가성비가 좋았다



형제들 중 맏이 셨던 엄마는 3명의 남동생이 있었다 큰 삼촌을 제외한 두 명의 삼촌들은 고향을 떠나 엄마 곁으로 이사를 오셔서 엄마 그늘 아래서 살게 되었다 이후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장녀가 사는 곳 막내 외삼촌이 마련해둔 집으로 거처를 옮기셔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딸에 기대어 살아가셨다



내가 군인 이었을 당시에 엄마는 큰 수술을 하셨다 당시 부모님은 우리들에게 엄마의 수술에 대해서 알리지 않으셨다 그냥 병원에 몇 달 다녀오신다고만 했다 작은 수술이라고 했던 듯하다



당시 엄마는 오십 대 접어들 나이었었는데 어느 날 아랫배에서 커다란 혹이 잡혔다고 한다 예전 동네를 돌며 옷장사를 하셨던 아주머니 말을 듣고서야 병원엘 서둘러 갔다고 한다



- 죽을병은 아니니까 얼른 수원 큰 병원 가봐!! 내 딸도 자궁에 혹 나서 걷어 냈어!! 늦으면 안 좋다니까 아저씨한테 이야기하고 빨리 다녀와!!



외할머니는 소식을 듣고 하나뿐인 딸이 당신보다 먼저 갈까 봐 걱정하며 병원을 따라나섰고 진찰결과 자궁을 걷어내면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안심이 되셨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는 그 당시로는 큰 수술축에 속했던 수술을 감내하셨다


최근에 두 번에 걸친 허리 디스크 수술과 무릎 연골수술을 받으셨던 터라 거동이 편치 못하지만 여전히 말하고 듣고 지끼시며 수다가 만들어주는 행복을 놓지 않고 그것들을 움켜쥐실 줄 안다 무릎 연골 수술로 넉 달간 병원에 입원을 하셨었고 코로나로 인해 부지불식간 넉 달 동안 떨어져 지내셨던 엄마 아빠는 당신들이 서로의 눈에 밟혀 눈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셨다고 한다


퇴원 수속 후에 집으로 엄마를 모셔 오던 날 ᆢ


거실에 누워있던 아버지는 차소리에 현관문을 박차고 달려 나가 뒤뚱뒤뚱 걸어 들어오시는 엄 마를 꼭 껴안으셨다 두 분은 서로 눈물을 흘리셨다



-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마워


- 고생 많았어


- 당신이 더 고생 많았어



아버지는 코로나 때문인지 엄마입원 중이던 넉 달 동안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119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 소식을 들으신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며 병원 안에서 많이 울으셨다고 한다 자리에 몸져눕고 서로 떨어져 생이별하다 보니 생각나는 건 아버지 밖에 없었다고 엄마는 이야기하셨다 아버지 역시 엄마 병원 면회 데려다 달라 몇 번을 말씀하셨다 코로나 때문에 방문도 면회도 보호자도 허락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평생을 서로에게 기댈 어깨를 내어주고 서로의 다름으로 서로의 다름을 채워 주셨던 분들ᆢ그렇게 해로한 엄마 아빠는 늙어 여의여 가시면서 더 뚜렷하게 서로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보여주신다



가난했지만 궁핍하지 않았던 엄마!!


아버지의 부지런함에 묻혀 가며 살아가셨고,


아버지를 살뜰히 챙겨 가며 살고 계신 엄마!!


가난한 인심으로 가난한 동네 이웃들을 품으며 살아오신 엄마!!


그 작은 체구로 많은 것을 품어내고 길러내신 엄마!! 그 품 안에서 단단해졌을 우리들!!


그 연세에도 자식들을 품어주는 엄마!!


그 연세에도 자식들과 손자들과 며느리와 남편을 품어주는 엄마!!



하나님!!


우리 엄마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엄마를 부탁해요


아멘!!!!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시네마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