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라히리의 소설이 심장을 뛰게 하는 이유

심장을 뛰게 하는 소설

by 둥이

줌파라히리의 소설이 심장을 뛰게 한다.

오랜만에 심장을 뛰게 하는 책을 만났다. 육백 페이지에 가까운 벽돌 책이 순식간에 읽혀 나갔다. 임경선 작가의 책을 읽다가 줌파라하리라는 작가를 알게 된 후 저지대와 내가 있는 곳 두 권을 대여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톨리 클럽의 동쪽, 데파스란 사시 말 로드가 둘로 갈라지고 나면 조금만 회교성원이 보인다. 회교성원을 돌아가면 조용한 주거지가 나온다. 좁은 길과 주로 중산층이 사는 집들이 빽빽이 들어선 곳이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강렬하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독자로 하여금 거부감 없이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회교성원에 대한 풍경을 이야기해 나간다.



줌파라히리에 문장은 이야기가 활어처럼 펄떡였다. 언어는 꿈틀거리는 생물이 되어 심장 속을 파고들었다. 수바시와 다얀 형제의 이야기는 폭풍이 몰아치듯 눈앞에 펼쳐진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수바시의 생각 속으로 의식은 밀려 들어간다. 강한 자기력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어느새 100페이지, 200페이지 두꺼운 소설책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인다. 가끔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마음은 혼란스러워진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런 시간은 블랙홀처럼 사라진다. 그곳에 나의 존재란 없다.



문장과 문장이 이어져 한 단락과 다음 단락이 이여 져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긴장감과 몰입감,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현실은 사라져 간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행복해진다.


내게 걸려오는 핸드폰 진동음도 무음으로 돌리고, 문 다음으로 깜박이는 신호를 책으로 가린다. 더 깊은 심연으로, 수바시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이것이 그녀가 비행기 안에서 준비하고 전날 밤에 침대에 누워 검토하고 그날 아침에 운전을 하며 머리에 그린 시나리오였다. 그녀는 차 안에 앉아 집을 바라보았다. 수바 시가 안에 있을 거라 믿었으며 그녀를 보면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몹시 당황하며 언짢아할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그가 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되는 입장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저지대> P488



딸과 남편을 버리고 스스로 유폐된 삶을 살아가던 가우리는 삶이 황혼기에 접어들던 어느 날 딸과 남편이 살고 있는 옛날 그녀가 살던 집으로 찾아간다. 연락도 없이 주변을 서성이던 그녀는, 렌터카 기사한테 집 앞에서 기다려 달란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장면을 읽을 때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마치 가우리와 벨라의 그 만남이 내 일이라도 된 것처럼, 두 모녀가 조금 있으면, 초인종을 누르기까지, 문 앞까지 걸어가기까지, 가우리의 생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왠지 낯설지 않은 소설 속의 장면은, 우리가 살아가며 수도 없이 만나게 되는, 긴박한 장면들과 묘하게 겹쳐있다. 나의 시간과 수바시의 시간이 이상할 정도로 겹쳐있고, 나의 선택과 수바시의 선택이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데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매력적인 동생 후 데얀은 우리가 동경했던 시대의 부조리를 앞장서 선도했던 여러 민주화 투사들과 겹쳐있다. 나라면 절대 그렇게 살지 못했을 시간들을 동생 후 데얀은 살아간다. 평생 동생의 딸인 벨라를 자신의 딸로 키워나가는 수바시는, 자신만을 위한 선택 같지만, 그 선택이야말로 일상을 꿈꾸는 우리의 선택과 닮아있다.



동경하는 삶과 살아지는 삶은 그렇게 다르다. 동경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삶을 살아갔다 동생 후 데얀과 후 데얀의 부인이었던 가우리, 그리고 동생의 부인과 그의 딸을 아내로 그리고 자기의 딸로 받아들이고, 동생에게 가졌던 다름과 차별을 떨쳐 없애려고 했던 수바시의 시간들,



수바시의 시간 속으로, 가우리의 선택 속으로, 이야기 속으로, 내 의식은 아직 거기에 있다.



심장을 뛰게 하는 소설을 읽는다. 문장과 문장은 혈류의 흐름을 빠르게 한다. 심혈관에 이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