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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삶에 대한 생각
그는 여유 있어 보였다.
회색재킷 안에 남색 캐시미어 니트 갈색 단화 옷장에 걸려있는 대부분의 옷들도 같은 브랜드의 옷 들일 것 같았다. 좋아하는 옷을 사고 고르는데 고민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여유 있어 보인다는 게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보인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삶의 공기는 대부분 이런 데서 결정되곤 한다. 그는 영어로 질문을 하고 일본어로 적곤 하였다. 상대방을 배려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을 영어로 물어보았고, 답변을 들으면서 일본어로 적어나갔다. 고려대 출신의 김 부장은 예비임원 대우를 받았다.
그는 부드러웠고 필요한 말만 골라서 했다.
그 시절 난 정확하게 그의 모든 것이 부러웠는지 모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사회 초년생을 거치면서 우리는 차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년으로 접어든다.
아마 그때쯤 삶의 궤도는 살아온 궤적의 결과물을 만들어 놓는다.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우린 그 궤도 안에서 삶을 바라보고 대면하고 살아간다.
속물 같아 보이지만, 난 누구나 꿈꿀 수 있던 그런 소박하고 단순한 소망이 있었다. 이루지 못할 허망한 꿈이 아니었다. 그냥 내 수준에 맞는 궤도 안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여기서 두 번 세 번 밑줄을 그어가며 그 안정적이라는 말이 지닌 범위를 생각하게 된다.
나에겐 그 안정적이라는 말이 종교적인 믿음이라던가 평안함 이라던가 실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변호사나 의사의 라이선스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 정확히는 능력 밖의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이 안정적이라는 삶의 공간은 다르다. 화학과를 졸업했던 1997년 그때 IMF 국가부도가 났다. 졸업 동기들은 대부분 학교 연장선을 선택해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나에겐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더 손을 벌릴 수가 없었다. 난 무조건 취업을 해야만 했고 취업문이 닫힌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들어가기엔 학벌의 높은 벽에 가로막혔다.
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마치 취업이라도 된 것처럼 좋아했다. 그나마 서류전형 합격이라도 한 것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누구가 알만한 회시에 들어 기고 싶었지만, 그런 회사는 나의 학벌을 선택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졸업하기 전 12월 난 나를 선택해 주지 않았던 무역회사를 찾아갔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난 그 회사의 사장님을 만났다. 어떻게 오셨느냐는 신원을 물어보는 질문에 난 주저 없이 며칠 전에 면접 본 사람이라고 말했다.
무턱대고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나의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회사는 반도체 장비를 수입해 판매하는 회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절실한 때였다.
나에게 안정적이라는 말은 아주 어렸을 때 정립이 되었는지 모른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가능하다면 쌍둥이를 낳고 (아마 사촌 형이 쌍둥이를 낳아서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집을 장만하고 웬만한 입출금 해도 영향을 받지 않는 적지 않는 예금과 한두 채의 부동산을 가지고 노년을 맞이하는 것, 한마디로 돈 걱정 없이 일 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을 다니고 한 달에 몇 번씩 골프 라운딩을 나가고, 늘어나는 예금 예치금으로 불어나는 예금이자를 즐겨가며 살아가는 삶,
물론 여기에는 읽고 쓰는 인문학적 베이스와 하루 7km 정도를 달리기로 시간을 보내는 루틴들도 포함되어 있다.
안정적이라는 말,
그 말은 어쩌면 돈 걱정이라곤 전혀 없는, 그래서 삶의 공기를 건강한 루틴들로 채워나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는 말 일 거라 난 생각한다.
가끔 난 안정적인가 자문해 본다.
물론 상대성으로 휘청거리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항상 기도한다.
무엇에도 휘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내게 평안을 달라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그때 생각했던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난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누구도 들어보지 못했던 작은 무역회사로 시작해서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중견그룹과 대기업을 이직하며 좀 더 내가 생각하는 안정적인 삶에 가까운 직장을 옮겨 다녔다. 물론 그 기준은 연봉과 처우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평가되는 근사한 직장이었다.
지금은 그때 생각했던 그 안정적인 범위를 초월했는지 모른다. 웬만한 지출 해도 끄덕하지 않을 예금자산과 벌려놓은 사업들이 그럭저럭 유지해가고 있으니,
하지만, 안정적이란 말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틈과 틈 사이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