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에 대하여
원색과 무채색 그리고 형형색색
원색
그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미소가 얼굴에 머무르는 순간, 말보다 표정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생각이 그대로 묻어나는 사람, 그는 원색 튤립을 닮았다. 거짓이라는 고는 없을 것 같은 맑은 눈동자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 정제되어 순도 높은 위스키가 지닌 강한 향을 지닌 사람, 그런 사람은 대체로 자기 일을 사랑한다. 시간과 돈을 어디에 써야 되는지를 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현재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봄볕을 맞으며 서둘러 피는 꽃들은 대부분 원색으로 피어난다. 하얀 목련과 노란 진달래, 빨간 튤립, 이제 곧 만개될 벚꽃까지,
무채색
봄볕이 흩고 지나간 자리에 얼마 안 가 무채색 꽃들이 피어난다. 색이 없는 꽃들이 어디 있겠냐 마는, 원색이 아닌 색들은 무채색에 가깝게 보이는 건 역설일까,
눈에 보이는 색이란 사물이 태양빛을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한 빛의 파장 대라고 한다. 이 말이 지닌 빛의 파장과 색의 연관성을 정확하게 이해한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색은 인문학이 되어간다. 과학으로 백 프로 채워지지 않는 틈새에 색이 있다.
내가 아는 그 사람도 무채색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림으로 그리자면 우선 배경에 가까운 사람, 나 여기 있어 손짓하지 않아도 은은하게 존재감을 더해주는 사람이 있다. 나대지 않아도 되는 사람, 말수가 적은 사람, 질문하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람, 어딘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 말이다. 오랜 시간같이 있어도 대화가 이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편한 마음이 들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관계란 이런 데서부터 시작된다. 무채색은 어떤 면에서 보면 관계 맺기에 나쁘지 않은 색이어서, 다른 모든 색의 보색이 되어주면서, 자리를 양보해 준다.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다. 무채색의 사람들 말이다.
형형색색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냥 젊은 사람들을 총칭해서 명명하는 세대별 명칭으로 구분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범위를 훨씬 초월한 사람들도 있다. 극우와 극좌로 양 끝 대립점에 서있는 사람들이 어느 모임에 나 있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좀처럼 섞이진 않지만 묘하게 균형을 맞춰준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이 안정적인 균형감은 때론 건강한 여론을 형성해 주기도 하지만, 자칫 강한 대립으로 어떠한 합의로도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형형색색의 현란한 색상이 우리 마음속에 늘 존재한다. 어쩌면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으로 다스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내 몸속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마치 그게 나인 것처럼,
지난주 가평 근처 캠핑장을 다녀왔다. 내비게이션은 춘천 양양 간 고속도로를 지나 46번 국도로 우릴 인도했다. 양평 청평을 지나 가평까지 가는 길은 46번 국도가 강원도 초입까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46번 국도를 한참 달리던 중 저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상행선 하행선이 일 차선으로 붙어있는 도로라 양옆 도로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도로 옆으로 바짝 붙어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아 분명 이곳은 몇 번 와본 곳이란 걸 순식간에 알 수 있었다. 대성리 역이었다. MT 대학생들은 길게 줄지어서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모두들 같은 과점을 입고 있었다. 순간 형형색색 피어나는 꽃들이 생각났다. 한 가지 색으로만 피어나는 군무가 아닌 여기저기 널뛰면서 피어나는 다채로운 색상들, 색상도 크기도 향기도 다른 아름다운 꽃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