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함에 대하여
"청량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청량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 어부사 굴원"
어떤 사람들은 사물을 대할때나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할때 자연스럽고 편안한 몸짓과 동선으로 대화를 이끌어간다. 아무렇게나 걸쳐 입었을 듯한 옷차림도 자세히 살펴보면 색상까지 그 사람과 잘 어울리는 옷잘입는 사람들처럼 우리 주변에는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그렇게 멋과 아름다움이 유연함으로 뿜어져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때론 단순해 보이지만 그만 그만한 무던한 일상을 윤기나고 찰기있게 만들어 준다. 유연한 사고는 생각의 다름을 다름으로만 접근할줄 알게 해준다. 주변분들과 관계가 좋으신 많은분들은 상황에 맞게 생각할줄 알고 유연하게 처신할줄 안다. 관계가 좋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유연한 사고는 그 이상을 판단하거나 재단하려 애쓰지 않도록 내 판단을 잡아준다. 다른사람의 언어와 표정을 먼저 보게 해주어서 양질의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유연함은 사람을 불러 모은다. 이상하리 만치 매력적 이다. 관계의 정점엔 공간과 빈틈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어가는 유연함이 있다. 아이들은 유연한 몸과 마음으로 사물을 대한다. 편향화 되어 있지 않는 중립적인 사고 감각은 그 유연함에 근간을 두고 있다. 유연함이란 김연아 선수처럼 체조 선수에게만 있는것은 아니다.
생각의 범위, 사고의 스펙트럼을 넓히려면 질문하고 생각하고 의심하여야 함은 마치 내연기관 자동차의 엔진과도 같다. 상대방을 대하는 자세의 유연함은 여유에서 나온다. 여유는 걷기와도 같다. 천천히 걸을 때래야만 볼수 있게 되는것들이 있다. 마음의 객관화가 그렇다. 마음을 보려면 그런 여유가 꼭 필요하다. 맹자는 이것을 구방심( 求放心) 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집나간 마음,방황하는 마음을 구하고 찾아보고 바라 보는것 그것이 공부의 시작, 즉 사물을 대하는 마음 가짐 이라고 맹자는 이야기 한다.
"맹자는 사람들이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사람들의 눈과 귀와 같은 감각이 외부세계에 있는 사물에 현혹되어 그것에 대한 욕망이 마음을 어지럽게 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어진 마음인 '인'과 의로운 길인 '의'를 버리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학문은 곧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 즉 물욕을 절제하고 인의를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학문, 즉 수양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사물을 보고 느끼고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놀라우리 만치 가볍고 텅빈 공간 모든것에 감동할줄 아는 빈마음, 유연함이 필요하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그 유연함을 잃어 버리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내가 보고 있는 현실만이 맞다고 생각한다. 안주하게 되고 어느새 배타적으로 변해간다. 일상은 우리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며 극한의 고통과 천상의 기쁨을 느끼게도 한다.
비바람에 몸을 맡기는 대나무의 마디 마디에도 유연함은 있다. 한여름 작물보다 웃자라 버린 들풀의 생존력에도 유연함은 있다. 사물 모든것에 유연함이 있다. 유연함 없이 삶이 지탱 될수가 없다. 곧게 자란 단단한 침엽수에도 한껍질만 벗기고 들여다 보면 뿌리에서 길어올린 땅속 물길이 하늘위 가지끝으로 퍼져 나간다. 부드럽고 유연한 나무 변재(심재 바깥쪽 나무껍질 바로 안수피) 그 나무를 살게 해준다. 나무 중심 심재로 들어 갈수록 나무는 유연함을 버리고 단단한 무기질로 변한다. 그 역시 나무의 유연함이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자 전략이다.
내가 가진 유연함은 삶의 보폭을 조절해준다.
우리 삶에 유연함을 심어주는 것들은 종교일수도, 멘토 일수도 있다. 때론 많은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삶의 보약 처럼 유연함을 만들어 나간다.
삶의 유연함은 우리 인생의 의미를 만들고 찾을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