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

아버지 이야기

by 둥이

아버지의 집


푸른색 양철 지붕의 아버지의 집은 정겨웠다.


아버지는 평생을 부지런하셨다


아버지는 아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다 땅을 놀리는 법이 없으셨다. 밭이며 논이며 소작으로 나오는 많은 땅들을 아버지는 심고 길러냈다. 밭작물 중 유일하게 마늘과 고추는 엄마의 사랑을 받고 커나갔고 그 외 모든 작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논농사는 수월하다며 심어놓고 물만 잘 넣어주면 된다며 벼가마 쌓아두는 만 섬지기 재미 또한 놓지 못하셨다. 그야말로 소처럼 일하셨다. 마실 오신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의 부지런함을 늘 이야기하곤 하셨다. 동네 이웃들의 칭찬을 듣고도 마냥 좋아할 수 없었던 엄마는 일 좀 줄이자며 역정을 내셨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쉴 수 있었던 시간은 교회 가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교회 일과 집안일에 늘 열심히 하셨다.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시고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큰소리 한번 내적이 없었다. 어딜 가나 말 걸기를 좋아하셨던 엄마는 한 시간씩 전화 통화를 하셨고 마실 오시는 온 동네 할머니들을 챙기셨고 서로들의 가난에 기댄 채 삶을 꾸려 나가셨다. 아버지의 넉넉함과 엄마의 살가움은 지난했을 두 분의 세월을 잡아준 지팡이였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일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일이 좋으셨을까! 타고난 천성이 아니면 감당 못할 일 량을 무던히 해나가셨다.


땅의 소출과 땀방울의 정직함을 쫒았던 아버지의 시간들이 자식들에게 온전히 심어지기를 기대해 볼 뿐이다.


그것뿐이랴 ᆢ


아랫집 선호네가 젖소 농장을 했던 터라 선호네 일을 한동안 봐주신 삯으로 암송아지를 받으셨고 아버지의 젖소 농장은 이렇게 밭농사 논농사와 더불어 아버지의 이십사 시간을 늘 부족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어요?”


아버지의 눈가에 눈물꽃이 어른거렸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창밖 하늘을 쫓았고,


여윈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번져갔다. 행복을 찾고 있는 듯했다.


“행복”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젖소가 있어서 돈 걱정 없었어!”


” 젖소 키울 때가 제일 재미있었고 행복했어! “


”잡념이 없었거든 뭐든 자신 있었고 하는 일마다 잘됐어! “


“암송아지 태어나면 정말 행복했어! 쌍둥이 송아지도 여섯 번 정도 낳았지! “


젖소 농장은 일이 고됐다. 밥 주고 똥만 쳐주는 육우와는 달리 하루 세 번 꼬박 젖을 짜주어야 됐다. 하루라도 걸리게 되면 젖이 불고 병이 생겼다 늦은 저녁이나 이른 새벽에 젖을 짜며 부르시던 아버지의 노랫소리는 흥겨웠다. 쏟아지는 하얀 우유가 아버지의 고단함을 잊게 했다. 아버지의 젖소는 순하고 착했다 아버지는 젖소를 기르기 위해 온 동네 밭농사와 논농사를 맡아지으셨다. 소들의 겨울 양식으로 옥수수와 볏짚 만한 게 없어서였다. 그 당시 우유는 있는 집 자식들만 먹는 음식이었고 해태 우유에서 하루 한 번씩 우유를 걷어갔다 젖을 짜자면 손이 많이 갔다. 젖을 씻어주고 풀어줘야 돼서 따뜻한 물이 필요했던 터라 아버지는 동트기 전 해보다 먼저 떠올라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다.


까만 무쇠솥이 걸려 있던 사랑방 아궁이 속으로 ᆢ관솔불에 타닥타닥 마른 장작들이 타들어 간다. 청솔가지 한가득 소리 내며 불꽃들이 번져간다. 아궁이 밖으로 솟구치는 장작불을 안으로 밀어 놓는다 희푸른 연기가 방안 공기를 밀어내며 새벽 단잠을 흔들어 깨운다. 밑단이 까만 키 작은 부지깽이로 이리 글씨도 저리 글씨도 불길을 터주면 잘 마른 장작 위로 노란 불길이 활활 올라탄다 젖소를 키우셨던 아버지의 새벽은 고단했다 무쇠솥이 얹혀 있는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소리가 들려온다. 타닥타닥 청솔가지가 기분 좋게 타들어간다. 뜨거워진 물을 바가지로 퍼내 담았다. 좌 아악~ 좌 아악 ~ 뜨거워진 물소리는 차가운 물소리와는 다른 소리를 내며 검은색 고무대야에 담겼다. 뜨거운 물을 퍼 담을 때 나는 소리와 아궁이에 불 들어가는 소리와 방안 가득히 장작향 먹은 푸른 연기가 자욱하게 스미는 소리가 고단함이 묻어올 때면 스르르 내게로 찾아오곤 한다. 어디서라도 장작을 패는 소리와 불을 지필 때 올라오는 관솔 향을 맡게 되면 아버지의 푸른 새벽과 고단함이 내게로 스며 왔다.


오후 해가 붉어지기 전 뒷산 솔가지를 긁어 묶은 낟가리 몇 단이 뒤란에 쌓여 있고, 햇볕 좋은 날 패 놓은 잘 마른 장작더미가 배부르게 포개져 있었고, 대문 옆 헛간 안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벼가마와 처마 밑 고드름처럼 길게 걸려 있었던 시래기와 매주 덩어리들이ᆢ 그분들의 시름을 놓게 했던 그런 때였다.


아버지의 집은 방이며 부엌이며 아버지가 박고 자르고 이어서 만든 파란 페인트로 칠해져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소박한 집이었다. 가을이면 밤알이 슬레이트지붕 위로 소리 내며 떨어졌고 쏟아지는 비와 눈은 스르륵스르륵 장단과 화음을 고루 실어 눈꺼풀을 무겁게 만들어 주었다 녹이 슨 파란 양철 대문, 기울어져 대문에 매달려 있던 아버지의 문패와 봉당 앞 수돗가 옆으로 엄마의 장항아리들, 그 속에서 익어가며 진한 내음을 풍겼던 된장과 고추장 간장들, 장항아리 뚜껑을 물을 묻혀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닦아주시던 엄마의 정성과 장하아리 옆으로 제철마다 알아서 피어나던 채송화와 금잔화 코스모스 여러 한해살이 꽃들과 키 큰 해바라기와 그 위를 가로지르던 기다란 빨랫줄, 그 위에 널려 있던 남루한 옷가지들과 햇볕 사이를 널뛰고 있는 잠자리들, 윗집 잇거나 할아버지 (모든 추임새가 잇거나로 말씀하셨던 고집불통의 스쿠루지 할아버지였던) 집둘레를 둘러싼 가시 달린 탱자나무 울타리와 감나무 밤나무들, 담이라고 해봤자 안채 살림이 훤히 들여다 보였던 기다란 벽돌담까지, 가지런히 아버지 집의 모든 시간들은 그렇게 우리의 더듬이에 닿아 있었다.


농익은 감들은 새벽이면 후드득 땅으로 떨어져 벌거 언 속살을 드러냈고, 성개가시 벌어지듯 헤벌쭉 입 벌린 밤송이는 토실토실 살찐 밤알들을 품은 채 지붕 위로 쏟아졌다 밤이슬과 가을 햇볕은 대지를 적시고 말려 가며 뿌린 것을 거두어 갔다.


마루 앞 봉당으로는 물뿌리개와 빗자루, 질서 없이 짝을 잃은 아이들의 신발들이 나뒹굴었다. 젖소를 키우기 시작한 이후로 축사와 집은 따로 구분이 되지 않았고 축사와 방들은 붙어 있었다. 소의 되새김질과 철퍼덕 똥 퍼지는 소리, 쏴아아 오줌 떨어지는 소리가 붙어 들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젖소들과 붙어 자고 먹으면서 젖소들이 품어내는 냄새에 익숙해져 갔다. 지금도 젖소농장이나 황소를 키우시는 축사를 지날 때면 어릴 적 맡았던 향긋한 추억의 내음에 아버지의 고단했던 삶이 같이 소환된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가끔 형과 함께 풀을 베러 다녔고 한 경운기가 꽉 찰 때까지 낫질을 해야만 했다. 낫으로 풀을 벨 때면 향기로운 풀내음이 올라온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풀내음을 맡을 때면 한경운기 가득 풀을 베던 기억이 떠오르고 매일매일을 풀을 베고 집으로 오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향기로운 품냄새가 생각난다 그때 익힌 현란한 낮질 솜씨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손에 손목에 손가락 마디에 남아 있다.


아버지는 해가 지고도 깜깜해진 밭고랑을 갈고 심어 나갔다. 밭의 긴 고랑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젊은 아버지는 쉼을 모르고 일을 해나갔다. 늦은 밤 들어오셔서 삽 한 자루 어깨에 메고 다시 논으로 물길 데로 나가시는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밭과 논과 젖소는 아버지의 허기를 채워 주었고, 채워진 뱃심으로 다시 일할 수 있었고, 그렇게 식솔들의 밥줄이 되어주었다. 농번기에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젖소를 재울 수 있었고, 먼동이 트기 전 소보다 먼저 일어나 젖을 짰다. 하얀 우유로 쏟아지는 젖소의 젖은 그 당시 보름마다 한 번씩 현금으로 입금이 되었고 우리 식구들의 든든한 생명줄이 되었다. 고단하고 힘겨운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그 힘든 일로 우리들의 학비며 생활비를 마련하셨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집을 세 번 헐고 세 번 지으셨다. 남의 터에 지은 집이었던 터라 마지막 집은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냇가 옆 양지바른 땅을 사셨고 그 위에 빨간 벽돌집을 이쁘게 쌓아 올리셨다. 그 당시 그 집은 그 마을에서도 별장 같은 멋진 자태를 갖추고 있었다.


아버지는 새집으로 이사하신 후에도 동네 많은 소작을 놓지 않으시고 부지런히 밭과 논으로 발 거움을 재촉하셨다. 밭과 논으로 가는 길은 발목까지 올라오는 풀들의 길이였다. 발길이 닿지 않은 길 가운데와 양쪽은 우묵장성으로 올라온 풀들이 늦은 저녁과 새벽녘의 이슬을 품어냈다. 그 이슬들은 아버지의 바짓단을 적셔 주었고 들에서 들어오는 아버지의 바지는 항상 젖어 있었다. 천성이리라 이 정도의 고단함을 놓지 못하시는 거는 좋아서 이리라 ᆢ


” 아버지 이제 일 좀 줄이세요 힘드시잖아요 “


” 애야 ᆢ 난 일이 좋아서 하는 거야 땅 일구고 씨 뿌리고 그것들이 커나가는 게여간 재밌지 않아 사람 키우는 거나 저것들 키우고 돌보는 거나 똑같아 ᆢ 물이라도 제때 안 줘봐 풀도 그렇고 다 때맞춰 물 주고 풀 뽑고 김매줘야 돼ᆢ“


”그게 힘들다고 하면 힘든데 “


”어찌 나한테는 마냥 기대되고 재밌어 “


여든이 넘으신 이후로 아버지는 로컬푸드라는 농협 판매망을 이용해 한해 작물을 소분해서 내다 놓는다. 집에 들를 때면 한편 지어놓은 막사에서 늙으신 아버지는 양파며 대파며 마늘이며 밭에서 길러낸 모든 것을 정량하여 포장지에 넣으신다.


”안 힘드세요 아버지“


” 모가 힘드냐 재밌어 요게 내다 놓으면 이틀 정도 후에 핸드폰에서 돈 들어오는 소리가 띵똥 하고 오지 모냐 돈 들어오는 소리는 지금 들어도 재밌어.. 다 재미지 푼돈이라도 푼돈 들어오는 재미가 ᆢ재밌어! “


땅을 일구어 밭고랑을 만들고 그 위를 검은색 비닐로 덮어 씌운다 열을 맞춰선 밭고랑 위로 푸른색 고추모를 일렬로 심어 나간다. 힘없던 고추모가 새벽이슬과 부슬비를 받아 마시고 허리를 곧게 펴고 무섭게 피어오른다. 빨간 고추로 익어가는 아침저녁으로 빨간 고추를 따주어야 하는 아버지의 고단함이 시작되었건만 익어가는 고추를 보며 함빡 미소를 지으신다.


푸슬푸슬 굳어진 땅을 다시 일구고 제철 작물로 길러내고 땅의 기운이 올라갈 때쯤 아욱과 상추와 부추와 풋고추와 가지와 오이로 풋내 나는 것으로 찬을 만들어 낸다. 작년에 심어 놓은 마늘을 캐고, 햇감자와 양파와 고구마를 캐낸 자리 다시 땅을 일궈 배추와 무를 심어낸다. 아버지도 땅도 쉼을 잊었. 다 땅의 소출이 허락하고 아버지 기력이 다하는 닿은 날까지 그렇게 들로 나가실 것이다.


땅은 쉬지 않고 아버지의 씨앗을 품고 길러낸다.


아버지의 씨앗을 길러내는 아버지의 땅이 기특할 뿐이다.


손등 위 푸른 힘줄과 손마디 위로 검게 바래진 검버섯들 ᆢ늙은 아버지의 손을 찾아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노인의 손이 아니었다. 거칠고 투박해진 아버지의 손은 예나 지금이나 고되어 보였다. 거친 질감이 손안에 닿았다. 마디마디 옹이 깊이 파인 아버지의 손이 가여웠다.


손끝이 떨려와 손아귀에 힘을 더 주었다.


지난한 세월을 품고 있는 아버지의 손은 허무함을 잊으려는 듯 일거리를 놓지 않는다.


주름 골이 파여 늙어 샤워 지는 아버지에게 땅을 일구고 씨 뿌리고 거두는 일은 행복이리라.


늙은 농부는 뿌려진 것들은 거둘 시기가 있음을 알고 있다.


아버지의 집 낡은 소파에 아버지가 누우셨다.


낡은 소파는 지친 아버지의 몸을 쓰다듬듯 감싸 안았다. 평안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집은 늙고 여윈 아버지를 안아주고 품어 주었다.


아버지의 집 한편, 녹슨 쇠붙이에서 풍겨내는 쇠비린내가 잔바람에 출렁였다.


아직은 거동이 괜찮아 보이는 오래 써 닳아버린 녹슨 트랙터가 아버지에 곁을 지키고 있었다.


힘 빠진 녹슨 트랙터는 아버지의 순장조가 될 운명 인듯하다.


안장 위에 얹혀 있는 목장갑 한쪽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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