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함과 어색함 그 차이에 대하여
아침 일찍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새벽시간에 연락 올때가 없어서 별 신경을 안쓰다가 혹시나 아버지가 아프신가 걱정되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몇 안되는 친구의 부모님 부고장 이였다. 입춘이 지나가고 있는 이즈음 계절이 변하는 싯점에서 겨우내 움켜 잡았던 기력을 놓아 버리는 어른신들이 많은듯 했다. 모든 생명이 움트려 하는 시기에 또 어느 생명은 말라갔다. 움틈과 마름이 공존 한다. 그 경계에 구분이 없다. 꺼지지 않는 순환만이 존재 하는듯 하다.
왜 그럴까 그 본질에 대해 생각해봐도 알수가 없다. 알수 있는건 그 비슷한 시기에 두개의 본질이 공존한다는것 뿐이다.
지난주에 그 친구와 점심식사를 하면서 봄에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게 생각났다.
입춘이 지났으니 그나마 봄 소식은 듣고 가셨으려니 위안이 되려나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감고 옷장을 뒤졌다. 입고갈 검은색 정장과 바지를 몇개 골라서 입어 보았다. 몇년전에 사서 걸어놓은 검은색 정장바지를 입어 보았다. 그사이 나의 취양이 변한건지 몸매가 바뀐건지 정강이와 허벅지를 통과한 바지는 허리를 잡아주지 못하고 지퍼에 의지한체 몸에 걸쳐 있었다. 정강이 밑으로 넓게 퍼져 있는 바지 하단이 마치 이십년전 결혼식때 맞춰 입은 한복 아랫도리 만큼이나 넓게 느껴졌다. 걸을때 마다 펄럭이는게 아버지 옷을 입고 있는 중학생 같았다. 삼년전에도 꽤나 까다로운 눈매와 섬유 종류,색상, 박음질 디자인 하단품을 보며 몇군데 업체를 들락이며 발품을 팔아가며 고른 옷인데도 그사이 내가 선호하는 바지단의 품이 바뀌었고 그보다 더 결정적인건 허리치수가 늘어나 바지를 채울수 없다는데 있었다.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은 잡지나 인터넷 뉴스나 길거리패션에만 극한되는게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바지단의 품이 이렇게 넓게 느껴지는건 가진 신념과 좋고 싫음의 취사 선택 문제가 얼마나 부질없이 변한다는걸 실감할수 있었다.
서네벌의 바지를 입어보고 현정이가 골라준 바지와 검정색 터틀넥과 진한 밤색 양복상의를 걸쳐 입었다. 검정색 양말과 진갈색 구두를 골라 신었다. 검은색 터틀넥을 제외한 모든것은 평소에 입지 않는옷들이다. 툭툭 먼저를 털어내고 입고 나니 다른 사람이 서있는듯 했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네비게이션이 일러주는데로 차를 몰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하는 극심한 정체시간 그것도 가장 정체가 심한 곳으로 네비게이션은 나를 안내하는듯 했다. 양재대로 올림픽대로 동부간선도로 한강만 넘으면 풀리겠지 하는 도로가 목적지까지 꽉 막혀 있었다. 이런곳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도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막힌 도로에서 다른 생각을 쫒았다. 한강을 거실 화보로 걸어 놓은듯한 위치에 아파트와 고급빌라와 단독주택들이 즐지어 이어져 있다. 어떤집은 불이 켜져 있었고 어떤집은 꺼져 있었다. 누가 살고 있을까 식사는 어떻게 할까 한달 벌이는 얼마나 될까 밀려오는 생각을 막힘없이 그대로 떠올린다. 막히는 차안에서 조수석 방향으로 이어져 있는 한강을 보면서 운전을 한다. 마치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조금후에 저 불켜진 집으로 한강을 거실에 품은 저집으로 들어가 저녁을 먹을것 처럼 마냥 자연스럽게 올림픽대로를 지나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쟁반을 걸쳐 놓은듯한 커다란 붉은해가 땅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붉은색과 주황색 그리고 노란색을 섞어 놓은듯한 색감과 질감으로 느리게 천천히 사라져 가고 있다. 생각없이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어보니 보는것 만큼 아름답지가 않다. 아마도 저 정도의 빛을 담아 내려면 조리개가 달려 망원렌즈가 부착된 코닥 사진기로 찍어야 되나보다 생각 했다.
일곱시가 다 되서야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장례식장이 있는 회기동 주변에 30년전 드나들던 친숙한 건물이 그대로 그 장소에 버티고 서있다. 일층에 위치한 분식집과 이층 커피숍, 삼층 당구장은 완벽한 맞춤형 놀이터 였다. 스쳐가며 훌터번 그 건물들이 반갑게 인사하는듯 미소지어준다. 그 장소와 그 건물 어딘가에는 우리들의 청춘의 시간이 베어있다. 그 장소와 그 건물은 응축된 수분 분말이 물방울로 맺혀져 흘러 내리듯 기저속 청춘의 시간들을 불러 모은다. 거기에서는 시간이 온화한 바람처럼 느리게 흐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먼저와 자릴 지키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년만에 보는 승철이는 여전히 입담이 좋았다. 인생 한방을 꿈꾸는 승철이는 돈의 흐름과 인맥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금광을 쫒듯이 자기의 화려한 배경이 되어주던 형님들과 후배들이 얼마나 잘 나가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재벌 회장과 형님 아우 하는 사이라서 전화 한통이면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사기꾼 이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것과 같은 말을 해서 놀랍기까지 했다. 그런 승철이한테는 승철이만의 친근함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후 줄곧 대학 교직원으로 자릴 지키고 있는 혁이와 파일럿이 된 상호까지 언제 보아도 마냥 좋은 마음 편한 친구들이다.
기억속에 존재하는 시간들을 꺼내 이야기하던 중에 두명의 친구가 걸어왔다. 졸업후 삼십년만에 보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세네마디 인사후에 딱히 어떤말을 이어나가야 될지 서로들 어색해했다. 공백 속에 반가움과 어색함이 섞여 있어 있었다. 그 장소에서 보낸 시간들은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건만 오랜 공백의 간극은 나눌 말을 소멸시켜 버렸다. 이름만 알뿐 모르는 사람들로 자릴 함께 하고 있는듯 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유신이는 한참을 바라 보아도 다른이의 얼굴을 하고 있는듯 했다. 드문드문 새치가 보이는 그런 중년의 머리가 아닌 정수리까지 새하얀 노년의 머리색을 하고 있었고 얼굴 마져 분을 바른듯 하얗타 보니 얼핏 환자같아 보이기도 했다. 껑충한 키와 시니컬한 말투와 미소는 예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안경을 추켜 올린다. 안경 너머의 눈빛이 꽤나 멀게 느껴졌다. 삼십년 넘는 시간동안 아니 앞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소식도 못전하고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그건 당연하고 전혀 이상한게 아닐것이다.
그들의 무엇인가가 내의식의 밑바닥에 가라 앉아버린 부드러운 앙금같은것을 조용히 흔들어 놓은듯 했다.
주차정산을 한후 헤어지면서도 마치 연락하면 바로 볼수 있는 관계인것 처럼, 아니 내일 혹은 모래 교실에서 볼수 있을것 처럼 손흔들며 인사했다. 살아온 관행데로라면 저 친구들과는 이게 마지막 만남일수도 있으련만 아무렇치도 않게 수건 접듯 만남을 접었고 감정을 접었다. 접힌 감정은 엔진 소리만 횡횡하는 조용한 차안에서 짙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장소 시간 건물 기억 사람 친구 직업 사물 ᆢ
집으로 돌아오는길 막힘없이 뻥 뚫린 길을 운전하고 오면서 친근함과 어색함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는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리운것 같다. 엇비슷한 감정의 보폭으로 나란이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은 닮은꼴의 뒷모습을 감추지 못했는지 모른다. 같이 뭉갠 시간이 양은 아마도 그건 친근함과 어색함 그 감정의 공백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