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엄마- 나의 할머니
아버지는 아픈 무릎으로 대파를 뽑았다.
강추위가 온다는 예보를 듣고 아버지와 엄마는 텃밭에 심어놓은 대파와 무를 부지런히 뽑았다. 꼬박 며칠을 찬바람을 맞아가며 그래도 반이상은 뽑아 창고로 옮겨 두었다. 미처 뽑지 못한 대파가 한파에 꽁꽁 얼어 붙었다. 가을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던 철없던 한낮 더위는 찾아 볼수가 없다. 어제 까지 가을 이였다는게 믿겨 지지 않았다. 추워지니 겨울이 실감 났다. 하루 사이에 계절이 바뀌었다.
아버지와 병원을 오갈때 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버지는 엄마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씻는게 싫었거든 잘 안 씻었어 "
" 엄마한테 많이 혼났지"
"말로 몇 마디 하다가 안들으니까 부지갱이를 들고 혼내셨지"
내가 넷째 였는데 막내만 좋아 하고 난 찬밥 신세였어!
"왜 안씻으셨어요 아버지"
"씻는게 그렇게 싫었다. 더운물도 없었고 천성이 그랬었나 봐"
"아버지 주완이도 잘 안씻으려는걸 보면 손주가 아버지 닮았네요"
오고 가는 차안에서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잡을수 없는 날들에 얽혀 있던 아버지의 시간들이 뿌연 먼지를 털어 내듯 공기속으로 퍼져 나갔다.
열네살이 되던해 엄마는 소쿠리 장사를 나갔다가 그대로 병이들어 돌아 가셨다고 했다. 소식을 접한 열네살 소년은 그 먼거리를 리이카를 끌고 가 엄마를 실고 집으로 왔다. 엄마가 돌아 가신후 형수가 해주는 눈칫밥을 먹으면서 배를 골았다고 한다.
구순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엄마 이야기는 동화속 이야기 처럼 멀게 느껴졌다. 열네살 소년은 구순을 바라보는 아버지 표정속에 살아 있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의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았기에 혈육 관계 이전의 개체의 인간으로써 애잔함만이 남는듯 했다. 굶주리고 헐벗은 소년의 시간들이 안타까웠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엄마는 동생만 사랑해주던 엄마였다. 그나마 엄마의 울타리가 없어지자 밥 한끼 제대로 얻어 먹을수 없었다. 아버지는 열네살부터 쟁기질을 해가며 논일 밭일을 도맡아 했다. 살기위해 소처럼 일을 했다. 열네살 아버지가 견뎌 내어야만 했던 시절의 파고가 안쓰럽다. 사형제의 셋째로 할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을 떠나지 않으셨던 아버지에게 물어 보았다.
"아버지 왜 그때 고향을 떠나지 않으셨어요?"
"어딜 가든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농사 밖에 없었으니까! 그 일밖에 할줄 아는게 없었으니까 ! 어디서라도 그일을 할바엔 고향에서 죽을때까지 해야 겠다 생각했지"
"니 엄마가 이런 나를 만나 고생 많았다"
"큰집 식구들 술주정 받아 내느라 큰집 큰형수와 조카들까지 모두 제대로 된 사람이 누가 있냐 ! 사람 노릇 하고 사는 사람이 없다. 그게 다 큰형수가 술만 취하면 위 아래 사람 분간도 없이 욕하고 오죽하면 종친들이 쫒아 내려고 했겠어"
"시동생인 나 한테도 못되게 굴었지만 니 엄마한테 더 했어 "
"엄마가 돌아가신후 내가 열네살부터 큰형수 눈치밥 얻어먹고 사느라 여간 서러웠던게 아니다"
"아버지 언제가 가장 행복 하셨어요 "
"젓소 키울때가 좋았던것 같아"
"그 힘든 일이 뭐가 좋았데요 "
"그보다 더 힘든 일을 겪으면 어지간히 힘든일도 힘에 부치지 않는다"
"밥만 배불리 먹을수 있다면 남의집 일도 여러해 했으니까 사는게 단순했다"
"그리 복잡한게 없었어 일해야 살수있었으니까
논일 하고 들어와서 젓소 젓짜고 자정 다되서 잠이들면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다시 하루를 살았다"
"힘들지 않았나요? 보는것 만으로 힘들던데요"
"아냐 힘든게 없었어 왜냐구 ! 일하는데로 돈이 돌았으니까 처음으로 돈 걱정 없었다"
"너희들 가르킬때 젓소 유대값이 보름 마다 현금으로 들어왔으니까 " " 그러니 뭐가 힘들겠어 아주 신이나서 일했지"
"아버지"
" 할머니 그러니까 아버지의 엄마 보고싶은적 있으세요 "
"그럼 지금도 가끔 생각나지 보고 싶어"
"지금 니 엄마랑 결혼해서 니 엄마가 엄청 깔끔쟁이라 엄마 못찌않게 나를 씻으라고 보챈다고 ! 그런걸 말해 주고 싶어 "
아버지는 병원에서 무릎 관절 주사를 맞았다.
무릎Xray 사진을 보며 60대 무릎이라고 아직 창창 하다며 담당 의사가 칭찬을 한다. 보건소에 들려서도 담당 보건의는 삼십여분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에게 어른신은 안경도 안쓰고 허리도 굽지 않고 피검사 수치도 워찌 이리 좋은가요 젊은 오빠 같아요 환한 웃음으로 이야기 한다.
아버지가 들려준 할머니 이야기를
늦은 점심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흘러간 시간들을 바라보았다.
시간을 늘린 다거나 천천히 흐르게 하는 장치가 어디엔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토끼가 불쑥 튀어 나오는듯 했다. 내가 여기에 있으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에서 벗어나 있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글 처럼 읽혀 지는듯 했다. 지난한 삶속에 숨겨 있는 소년의 행복이 읽히는듯도 했다. 프란체스코 교황 말씀처럼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것만이 인간이 할수 있는 행복의 첫째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시간안에서 자신의 삶을 이끌고 꾸려 나갔다.
" 둘째야 니 아버지가 얼마나 씻기 싫어 하는지
일하다 들어오면 양말을 벗고 옷을 벗고 거실로 들어와야 되는데" " 꼭 거실에 앉아 양말을 벗는다 그것도 발가락 끝을 잡고서 잡아당기니 그게 잘 벗겨질리 있니 길게 늘어지다가 탁 하고 벗겨지면 양말에 묻어있는 온갓 먼지가 거실에 나부끼고 냄새까지 난다" " 애들도 그렇게 안벗는다고 소리질러도 여태 저리 벗어 던진다"
"형님이 이야기 했던게 맞는말 이야"
"서방님과 살아봐" "어머님 한테 어렸을때 안씻는다고 많이 맞았어"
"큰집 큰 형님이 이야기 하던 말중에 다 틀리고 그거 하나만 맞더라고"
아버지를 이야기 하는 엄마의 말들이 정겨웠다.
칭찬 이라곤 찾아볼수 없는 말들만 오갔지만
노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걸 채워주고 있는듯 했다.
아버지의 엄마와 나의 엄마가 씻으라고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한다.
두 엄마 덕분에 아버지는 냄새 덜 나는 할아버지로 늙수구레한 어르신으로 엄마 곁에서 늙어가고 있다. 아버지의 남은 시간이 좀 더 늘어난다거나 조금은 천천히 흐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