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옷
계절이 바뀌어 간다.
시월에 어느 좋은날, 온 산과 들녁은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가을 밤이 제법 쌀쌀 해진다. 두꺼운 옷으로 꺼내 입는다. 여름내 입던 얇은 옷들을 빨아 가을볕에 말린다. 때에 맞춰 옷들은 입혀지고 벗겨진다. 집으로 들어오면 편안한 옷으로 갈아 입는다. 외출을 할때나 초대를 받거나 음악회를 가거나 잠을 자거나 우리는 때와 장소에 알맞은 옷으로 갈아 입는다. 교회나 법당 성당을 갈때면 깨끗한 옷으로 찾아 입는다. 교복과 군복, 종교지도자의 제복, 의사가운, 혹은 회사사복까지 모든 제복은 우리에게 규율과 통제된 시간안에 살아가게 만들어준다. 장소와 모임에 맞는 옷으로 갈아 입고 나서야 의식과 생각 그리고 언행까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아기는 하얀 강보에 감싸여져 세상과 만난다.
엄마의 자궁보다 넓은 공간을 느껴보지 못했을 아기는 강보에 감싸여져 부모와 조우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의복과 제복으로 죽어서는 수의로 옷을 갈아입는다. 수많은 옷을 입고 또 벗는다. 육신을 감싸 안은 옷은 삶과 죽음에 맞닿아 있다. 나름의 질서로 연결되어 있다. 강보와 수의는 스스로 입혀지지 못한채 삶과 죽음을 맞이한다. 어쩌면 태어나 한순간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내면의 본질과 대면 하지 못한다.
삶과 죽음은 옷의 옷을 입고 있는듯 하다.
태어나 죽을때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옷을 입고 벗는다. 옷을 입고 벗을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성장했고 단단해져 갔다. 앞으로도 입어야 할 옷들이 많은듯 하다. 때론 우리는 너무 많은 옷을 입으려 하기도 하고 내게 맞지 않은 옷을 입으려 하기도 한다. 강보여 쌓여 세상과 조우하고 수의를 입고 세상과 작별한다. 오고 감에 필요한옷은 단촐하다. 중요한건 내몸에 맞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함이다. 울면서 강보에 쌓여진 인생이지만 하늘이 부르는 그날 홀연히 낙화하는 꽃잎처럼 웃으며 마지막 옷을 입고 싶다.
나무의 옷
나무는 지난 봄볕에 하루 해를 품어내어 힘써 길러냈던 푸른 옷들을 벗고있다. 나무 밑둥으로 수북히 옷들이 쌓여 간다. 나무의 의연한 본질을 대면 하는 순간이다. 겨울 나무는 스스로 달여 입은 고운 옷을 시기에 맞춰 스스로 벗는다. 입고 벗음에 무리가 없다. 색상이 다른 여러 종류의 옷을 걸진채 계절을 타고 넘는다. 고요하게 침묵하며 뿌리에 집중하며 준비를 해나간다 . 긴 생을 이어 나가기 위해 본질에 충실하다. 나무에게 근력을 만둘어 주었던 자기힘의 근원을 버림에 주저함이 없다. 힘들게 움트고 싹튀운 푸른잎들을 버린다. 옷을 벗고 초연하게 겨울을 기다린다.
식물과 나무들은 잎을 통해 말한다. 잎의 모양과 길이와 넓이를 통해 삶을 존속하고 이어나간다. 들풀과 잡초 채소들도 잎을 통해 말한다. 이슬을 받아내고 햇볕을 들여 마신다.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옷을 입고 있다. 마름과 움툼의 시기를 옷들은 알고 있다. 스스로 옷을 갈아 입는다. 언제 옷을 벗어야 되는지 알고 있다.
나무는 스스로를 소유하며 살아간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해와 달의 기운에 의지한다. 해와 달의 주기는 그들만의 화풍으로 캔버스 위를 적시고 물들인다. 그안에 가벼움과 무거움을, 밝음과 어두움을, 수채화와 유화의 색감을 생과 사를 질서있게 품어 낸다.
어느 화가도 흉내 내지 못할 색감과 질감을 일필휘지로 그려 간다. 붓가는 데로 그려지는 풍경들의 변화는 이게 섭리로 구나 감탄을 불러온다.
기도를 불러온다. 겸손함과 감사함을 불러온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한채 살아간다.
너무 많은 옷을 입기위해 저당 잡혀 살아간다.
버리고 비우지 못하는 삶의 캔버스는 자기만의 색감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고운 빛깔로 익어갈수가 없다.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자세는 사뭇 다르다.
두터운 옷으로 겹겹히 껴입는 우리와 달리 나무는 두터운 옷을 벗어 던진다. 본질로 맞선다. 나무들의 옷을 보며, 내가 입고 있는 옷들을 생각했본다. 버리지 못하고 입으려고만 하는 옷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남은 생이라도 내면 까지도 투명하고 밝게 빛내줄 단촐한 옷을 입어야 겠다.
나를 감싸고 길러준 수많은 옷들에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