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가 만들어 주는것들

마음 청소 하는날

by 둥이

냉장고 청소 하기 좋은날 그러날에 대하여

냉장고를 청소 하고 싶은날이 있다.

하지 않으면 안될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어서 무엇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날이 있다. 그런 하루가 있다. 어느날 비가 오고 갑자기 바람이 불듯이 그런날들이 여느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 봄 햇볕이 거실안으로 긴 그림자 지우며 들어온날 그런 나른한 어느날은 밀물처럼 쓸려 들어오는 생각들을 쫒아간다. 이런 생각들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때론 아름다운 언어와 문장들이 장마 구름 밀려오듯, 때론 소낙비 그친 하늘위로 표백된것처럼 새하얗고 윤곽이 또럿한 흰구름이 뭉개뭉개 모양이 바뀌어 가고 어느새 다른 구름에 밀려 사라져 갈때, 내가 잡고 있는 생각들 속에 먼 옛날 잃어버린 감정과 언어가 밀려 올때, 그런날 그럴때 난 냉장고 문을 연다.

투명한 물속으로 검은 잉크 방울 퍼져가듯 스르륵 밀려 드는 생각들을 쫒아내려 청소를 한다.

그 생각들은 하루해가 짧아 질즘 순식간에 들녂을 삼키는 칧흙같은 어둠처럼, 그 주위의 모든 사물과 소리가 순식간에 어둠과 침묵속으로 흡수되어 소멸되는 것처럼, 생각은 그처럼 균일하지 않게 압도적인 속력으로 나를 갉아먹고 침식해 들어온다. 그 생각은 때론 불안이기 했고, 때론 집착이기도 했고, 때론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쯤 이거나 그 이전에 난 청소를 한다.


오른쪽 왼쪽 양문을 열어 젖힌후 오래된 반찬통 부터 꺼내 놓는다.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자존감 강한 스텐레스 김치통 두개를 꺼내 놓는다. 제법 무겁다.


냉장고안을 그 향기로 가득채운 김치향의 자존감은 무뎌지는 법이 없다. 김치냄새 안나는 냉장고를 꿈꾸지는 않는다. 일곱개의 반찬통을 꺼낸다. 아이들 반찬인 콩나물 반찬과 보름날 먹다 남은 나물반찬과 김치반찬 두개와 한살림표 고추무침과 무말랭이 어제 먹다남은 김봉지를 꺼내 놓는다. 그 옆으로 성당에서 구매한 된장과 한살림표 유기농 된장과 고추장을 꺼내 놓는다. 바구니에 정리해둔 도라지청 4병과 귤청 두병과 생강청 두병과 갈비양념 네개와 딸기쨈을 꺼내 놓는다. 아이들 쥬스와 탄산음료와 캔맥주와 2리터 카스맥주도 꺼내 놓는다. 꺼내 놓은 냉장고 안 물건들이 식탁위를 가득 채워간다.

냉장고안 서랍장 열어 봉다리에 묶어둔 반쪽남은 무우와 반쪽남은 당근 반쪽남은 양파와 풋고추를 꺼내 놓는다. 유통 기한이 지난것부터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다. 흐물흐물 해진 수분을 잃어버린 오이부터 버린다. 끝부분이 짙물려진 풋고추를 버리고 남아있는 상추와 깻잎도 버린다. 씻어서 먹을까 고민하다 사서 먹자 생각한다. 서랍장 안에서 익어가는 사과와 배를 꺼내 놓고 손으로 눌러본다. 싱싱함과 탱탱함이 없어진것들 부터 골라낸다. 야채와는 달리 버려지는것이 드물다. 한두개 골라내고 새로 봉지에 담는다.

돌처럼 딱딱해진 떡들을 꺼내 놓고 나면 심란해진다. 버릴수도 먹을수도 없는, 언제 넣어둔것지 생각나지 않는것들로만 골라낸다. 유기농 냉동식품들의 유통기한을 확인한다. 마트식품코너를 그대로 옮겨 놓을듯한 다양한 먹거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몆달전에 끓여 쟁겨 놓은 미역국과 아욱국도 있고 즉석죽과 갈비탕과 조기 잡채와 동태전 호박전 ᆢ 냉동고 손이 닿지 않은 깊은곳은 남극 심해 수준이다. 땅속 깊은곳에 매장되어 있는 천연광물 케내듯 고개숙여 하얀 서리가 내려 앉아 누군가 버린듯한 음식들을 케어낸다. 품을 들이면 먹을만한 음식이 쏟아진다. 이런 노다지가 따로 없다. 광산이다. 족히 며칠은 먹을만한 양이다.


냉장고 안을 열어 보면 내 위장을 보는것 같다. 수분을 잃어가는 과일과 야채가 마치 전두엽에서 영감을 잃어가는 홍채 같다. 버릴것을 버리지 못한채 잡고만 있는 몹쓸 내가 그안에 있는것 같다. 하나씩 하나씩 꺼내 버린다. 냉장고 속이 깨끗해진다. 내 마음속도 깨끗해 진다. 내 머릿속어느 귀퉁이를 붙들고 있을, 살아가며 쑤셔놓은 집착과 사물들도 냉장고 속 정리하듯 주기적으로 버릴수만 있다면ᆢ마음의 평화가 먼데 있을수가 없을듯 하다. 위장속 처럼 투명하게 보여 지는게 아니기에 두부속 처럼 생긴 투박한 머릿속의 번뇌를 생각해보면 측은한 마음도 든다.

버리고 다시 채워지는 리듬감의 스텝이 엇박자가 아닌 정박자 같다.


쿵짝 쿵짝 쿵짜자 짝짝 네박자 인생


비우고 또 채워 가는게 먹고 사는 인생같다.

냉장고 속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어 내부를 깨끗이 닦고 식품을 점검하고 정리한다. 가스레인지를 닦고 행주로 주방을 문지른다. 그릇을 닦고 접시와 냅비를 닦고 수저와 젖가락을 닦고 설걷이를 한다. 더러워진 환풍기를 손질하고 바닥을 닦고 창문을 닦고 쓰레기를 한데 모은다. 침대 시트와 베갯잎을 갈아 끼운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청소기로 침대밑 거실 서재 먼지를 쓸어 담는다. 공기청정기를 돌린다. 세탁기를 돌린다. 건조기를 돌린다. 빨래를 넌다. 빨래를 갠다.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소리, 그릇 닦는 소리, 공기 청정기 돌아가는 소리, ᆢ 먼지와 얼룩과 오염된 것들이 지워 지는소리.. 몰입 그 순간 조금씩 충전 되어간다.

그리고 살게 해준다. 삶의 윤기와 찰기가 살아난다.


우울한날 청소하기는 그렇게 나를 감쪽같이 소생시켜 준다. 그래서 긴 장마 걷힌후 쨍하게 내리쬐는 어느 오후의 파란 하늘을, 그 흰구름을, 손등을 스쳐갔던 수줍은 그 바람을, 그 냄새와 싱그러움을 느낄수 있었다. 그런건이 나를 살게 해준다.


청소는 내겐 그런 것이다.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그런 것 ,

살아가게 해주는것 힘을 주는것 ,

힘들었던 하루에 쉼을 주는것

그래서 지금도 하는것 그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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