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사준 까만 짜장면
목욕탕 짜장면 까만 음식
목욕탕과 짜장면 그리고 성대한 만찬의 대한 이야기다.
명절이 다가 올 무렵이면 아버지는 우리를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과 명절이 다가오는 날이면 난 목욕탕 보다 짜장면이 더 간절하게 생각이 났다. 한 겨울을 나기까지 제대로 씻지를 않아서 우리의 팔꿈찌와 무릎 그리고 관절이 꺾이는 신체 부위에는 까맣게 때가 끼여 있었다. 엄마는 가끔 빨간색 고무대야에 데운물을 받아 놓고 우리 형제들을 순서대로 불러 한 명씩 때를 벗겨 주었다. 첫째였던 형은 늘 깨끗한 물에서 몸을 불렸고 씻을 수 있었다. 그나마 누나도 둘째 여서 때국물이 덜 찬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고 난 물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그사이 물도 식어서 김도 올라오지 않았고 물 위로는 허연 때국물이 거품처럼 올라와 있었다. 싫다고 우는 나에 등줄기로 엄마의 세찬 손바닥이 날아왔고 두어 번을 더 맞고서야 한 팔을 붙잡힌 채 때를 벗겨내야 했었다. 그래도 빨간 다라에서 때를 밀고 나면 광대뼈가 불그스레 뽀해졌고 온몸이 상쾌했다. 우리가 다라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커버리고 나서야 아버지는 우리를 목욕탕으로 데려갔다. 나에게 목욕탕 가는 날은 이렇게 특별한 날이 되었다.
아주 오래된 목욕탕의 풍경은 빨간색 벽돌 굴뚝에서 밀가루처럼 새하얀 연기가 끊임없이 피어 올라왔다. 빨간 붓글씨로 남탕 여탕 글자가 뿌연 새시문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새시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목욕탕 냄새는 진하게 풍겨왔다.
"아 이게 목욕탕 냄새구나 "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안으로 들어가면 전신을 비춰주던 커다란 거울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아버지를 따라 주섬 주섬 옷을 벗어 사물함에 넣었다. 목욕탕 안은 뿌연 수증기로 꽉 차 있었다. 아버지는 문을 열고 우리를 목욕탕으로 들어 보냈다. 습한 공기가 빰에 와닿았다. 숨이 탁탁 막힐 만큼 목욕탕 안은 수증기로 덮여 있었다. 천장 위로는 동굴 고드름 마냥 물방울들이 몽실몽실 맺혀 있었고,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타일 바닥 물의 감촉과 작은 창문 틈으로 들어온 고속도로 같았던 햇살과 공기를 떠다니든 수증기, 한기가 피어올랐던 냉탕과 하얀 때가 떠다니던 온탕, 그 옆을 꽉 채우고 있었던 때밀이 침대, 형과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 온탕으로 들어갔다. 한 번에 깊숙이 목 울 때까지 몸을 담그는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해 보였는지 한참을 무릎만 넣어둔 체 몸이 데워지기를 기다렸다. 이상하리 만치 뜨거웠던 온탕은 몸을 비비 꼬일 정도였다.
아버지는 우리 몸을 정성스럽게 밀어주셨다. 빨간 때밀이 타월 하나로 남자 네 명은 돌아가며 때를 밀었다. 조르르 우리는 서로의 닮은 뒤통수를 쳐다보며 등판을 밀어주었다.
아직도 나에겐 아버지가 밀어주던 등판의 감촉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긴 시간이 지나도 몸으로 느낀 감촉과 후각으로 기억된 냄새는 사라지지 않은 채 박재되어 있다. 숙주 속에 남아 있던 이런 기억들은 어느 순간 늙은 아버지의 눈동자를 보며 떠오르기도 한다. 아버지는 목욕이 끝나면 특별한 외식을 사주셨다.
"세상에 이런 음식도 있었구나"
삼 형제는 짜장면이 나오기도 전에 짜장면집 춘장 냄새에 모든 감각세포는 마비가 되었다. 그 당시 짜장면집은 주방이 막혀 있었고 아주 작은 동그란 구멍으로 완성된 음식이 나오는 구조였다. 우리의 눈은 한 곳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 까만 음식을 처음 먹어 보았다. 지금까지 내 몸이 기억하는 가장 맛있는 음식은 아버지가 사주었던 짜장면이다. 별거 없던 까만 음식은 아버지를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목욕탕에서 나온 우리는 불그스레한 빨간 광대뼈와 쪼글쪼글해진 손가락으로 걸신들린 양 코를 박고 쩝쩝 소리를 내며 생애 만찬을 만끽했다.
잊을 수 없는 만찬 그 까만 음식엔
아버지와 목욕탕이라는 조연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난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그 시절이 통째로 소환되어 아버지와 목욕탕이 랑데부 된다.
까만 음식의 만찬은 늘 행복했고 언제나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