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에 의한 판단이 주는 의미.

과연 그 판단은 좋기만 한 것일까?

by 스토미

우리가 태어나 흙에서 멀어지는 순간부터


다시 흙으로 가까워지는 모든 여정이 석양 부근에 다다랐을 때.


무엇이 남아있고 무엇이 의미 있었는지


마음속에 그려 봅니다.




삶을 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 여행이 무척이나 기쁘고 감사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온통 후회와 아쉬움으로 점철될 것입니다.


그 삶의 양 갈래길을 결정하는 것 중에서 판단과 결정의 오류가


아마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린 선악을 판단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나에게 이익인지 손해인지를 두고


결정할 때가 참 많지 않은가 싶습니다.


겉으로는 선악의 명분을 들이댈 수 있지만


그 본질 속에는 우리의 욕망이 녹아들 수밖에 없죠.




손해를 보더라도 공공의 선에 가까운 결정을 한 사람들.


요즘 세상에는 바보취급을 할 때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근시안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인생의 전반을 두고 깊이 들여다보면 그 선한 결정은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내가 베풀었던 사람에게서 반드시 되돌아오는 것도 아니요,


때론 나에게 오지 않더라도 나의 가족에게 오기도 하죠.


또한 내가 원하는 순간이 아닌 긴 시간을 돌아올 때도 있습니다.


카르마라고 칭하든 황금률이라고 부르든


그 모든 실타래의 매듭이 잘 지어질 때까지 우리에겐


우리의 결정이 원인이 된 문제들을 해지하기 위한


여정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그 순간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인 판단.


그 이성이 이해타산의 계산기 역할만 한다면


그 판단에서 나온 결과는 과연 우리에게 좋기만 한 것일지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상황들은


정량적인 것보다는 정성적인 것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고 판단할 능력과 기준이


우리에게 있는지 다시금 돌이켜 봅니다.


선입견을 가지고 나에게 잘해주는지에 대한 주관적 기준으로


우린 섣불리 판단하고 결정하며 왜곡시킬 때가 많죠.




예수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정죄와 심판의 권능이 없다 하셨습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정죄하려는 마음이 어찌 없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그 의미를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죠.


네가 판단하는 그 잣대 그대로 네가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말씀은


우리 인간이 저지른 원죄의 깊은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바라보고 존중할 줄 아는 마음.


비록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판단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그 왜곡됨과 부족함을 인식하고 놓아버리는 마인드.


어쩌면 그것이 우릴 현명하게 이끄는 삶의 길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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